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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문화기획-도내 대안공간 현재와 미래] 간판 내린 대안공간, 어떤 새옷 입을까

  • 기사입력 : 2017-03-21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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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내 유일한 대안공간이던 ‘마루’가 지난해 말 문을 닫았다.
     
    이로써 도내에 대안공간은 완전히 자취를 감추게 됐다. 대안공간 마루의 역사를 통해 도내 대안공간의 현재와 미래를 짚어본다.

    ◆대안공간이란

    대안공간(alternative space)이란 미술관의 권위주의와 화랑의 상업주의에서 벗어나 미술가의 제작 활동과 유기적으로 결부된 비영리적인 전시공간을 말한다. 1970년 미국 뉴욕의 그린 스트리트, 애플 스트리트에 최초로 등장했으며 미술관과 상업화랑에서 받아들이지 않았던 실험적인 작품들이 확산되면서 탄생했다. 1970년대 북미 전역에 걸쳐 설립됐고 1980년대 초에는 재단이나 시, 국가로부터 기금을 지원받는 조직적인 기관으로 발전했다. 최근에는 대안공간보다는 ‘미술가 조합’이나 ‘미술가가 운영하는 조합’과 같은 협동조합 형태로 발전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1990년대 후반부터 활발히 생겨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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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원시 용지로 289번길 1에 자리 잡은 도내 최초 대안공간 마루.

    ◆도내 1호 대안공간 마루의 궤적

    도내 최초의 대안공간인 마루는 1995년 3월 탄생한 ‘미술가 공동화랑 창원갤러리(이하 공동화랑)’에서 출발한다. 공동화랑은 당시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이던 지역의 젊은 미술인들이 뜻을 모아 설립했다. 창립멤버는 황무현(현 마산대학교 아동미술학과 교수), 정종효(현 경남도립미술관 학예팀장), 김학일(한국화가), 하춘근(현 경남문예진흥원 부장), 이경태(현 경남문예진흥원 차장) 등 총 6명으로 이들은 도립미술관 바로 맞은편인 창원시 용지로 289번길 1에 공간을 꾸리고 개관전을 열었다.

    공동화랑이 설립된 것은 당시 도내에 젊은 미술인들이 작품을 전시할 공간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1995년은 도립미술관, 성산아트홀 등 주요 전시공간이 설립되기 전이었고, 비영리형 갤러리도 전무했던 시절이다. 공동화랑은 청년들의 전시공간을 확보하고 지역 미술계의 다양성, 발전을 위해 협동조합 창립을 목표로 출발했다.

    공동화랑의 출범은 전국적으로도 매우 이른 편에 속했다. 국내 1세대 대안공간으로 꼽히는 서울의 ‘프로젝트 사루비아 다방’과 ‘대안공간 루프’가 설립된 것이 1999년임을 감안하면 마루는 사실상 국내 최초의 대안공간인 셈이다. 마산대 황무현 교수는 “설립 당시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에도 대안공간을 표방한 곳은 없었다”고 말했다. 공동화랑은 1999년 사단법인 등록을 완료하고 2000년 ‘대안공간 마루’ 명칭을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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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루 내부 전경


    마루는 지역미술계에서 다양한 역할을 해왔다. 가장 손꼽을 만한 것은 ‘용지야외미술제’다. 마루는 1996년 창원시민의날 기념축제 일환으로 용지야외미술제를 기획·추진했다. 당시 청년작가들이 실내 전시공간을 벗어나 야외에서 대규모 전시를 열었다는 점은 시민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겼고, 미술제는 연례 행사로 확실히 자리를 잡았다. 용지야외미술제는 현재 창원아시아미술제로 이어지고 있다. 용지야외미술제는 관(官) 주도가 아닌 민간에서 자발적으로 시작된 미술제라는 점에서도 특별하다. 창원미술청년작가회도 용지야외미술제의 구심점 역할을 하기 위해 마루에서 처음 생겨났다.

    지역작가를 위해 오랫동안 전시 기능을 수행한 점도 의미가 있다. 마루는 전시공간이 전무하던 시절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연중 쉬는 날이 거의 없이 전시를 운영해왔다. 공모를 통해 작가를 선정해 작가마다 약 2주씩, 연간 23~25회의 전시를 개최했고 지금까지 거쳐간 작가만 해도 400여명에 이른다. 대학을 갓 졸업한 신진 작가와 중견 작가 등 개인전부터 한일 청년작가교류전 등 그룹전까지 프로그램도 다양했다.

    이 밖에 토요문화학교 운영, 한중일 작가 교류를 위한 레지던시, 창원지역 내에 있는 미술조형물 지도를 제작하고 현황을 분석한 ‘공공미술과 통하다’ 프로젝트 등 지역 미술을 위한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과 프로젝트 활동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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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말 문 닫은 대안공간 마루.

     

    ◆마루, 왜 문닫았나

    마루는 지난해 말 공식적으로 문을 닫았다. 사용하던 공간을 비웠고 간판도 내렸다. 남아있던 자료는 현재 황무현 교수의 작업실에 모두 보관돼 있지만 공간이 없어져 사실상 20여 년간의 역사에 마침표를 찍은 셈이다.

    마루가 문을 닫은 가장 직접적인 문제는 자본이었다. 마루는 그간 운영위원과 상임위원들이 수십만원씩 사비를 부담해 임대료 등 운영비를 충당해왔다. 마루의 운영위원은 시간이 지나면서 계속 바뀌었지만 주요 활동 멤버는 변동 없이 유지된 까닭에 위원들의 금전적 부담이 커져 2015년부터 공간 폐지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자본은 대안공간이 문을 닫게 되는 가장 직접적인 이유다. 대안공간은 대부분 지자체나 국가의 보조금, 기업의 후원금으로 운영되지만 이는 인건비에도 못 미치는 경우가 많다. 실제 1990년대 후반 다수 설립됐던 국내 다수의 대안공간이 2010년을 고비로 문을 닫았고 이때부터 대안공간은 전국적으로 입지가 크게 줄었다. 1998년 개관해 국내 대안공간의 상징처럼 여겨지던 서울의 쌈지 스페이스가 2008년 폐관을 선언했고, 1999년 개관해 특색 있는 전시를 열며 전국적으로 이름을 알렸던 부산의 대안공간 반디도 2011년 문을 닫았다. 도립미술관 김재환 학예사는 “전국의 대안공간이 대부분 상황이 비슷하다. 매달 운영비를 걱정하는 처지”라고 말했다.

    대안공간으로서 뚜렷한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한 채 도내 전시공간이 다변화된 점도 원인이 됐다. 그간 도내에는 공·사립미술관과 지자체 문예회관을 비롯해 병원, 기업 등에서 운영하는 다양한 비영리 갤러리들이 생겨났다. 도립미술관 정종효 학예팀장은 “지금 도내의 전시공간이 충분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예전에 비해 전시를 열기가 훨씬 수월해진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일반 전시 기능뿐만 아니라 대안공간이 맡고 있던 청년작가 발굴, 지원의 역할도 일정부분 흡수했다. 이런 상황에서 핵심 디렉터(책임운영자) 없이 확고한 방향성을 제시하지 못하자 존립 근거가 갈수록 약해졌다. 한 미술 관계자는 “대안공간 마루라고 했을 때 특별히 떠오르는 활동이 없다. 때문에 문을 닫았을 때도 크게 이슈가 되지 않았다. 대안공간 반디가 문을 닫을 때 여러 언론이 조명하고 부산미술계의 움직임이 있었던 것과 대조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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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루 레지던스 작업실


    가장 본질적인 문제는 인력이다. 당시 창립멤버들은 20대에서 30대 초반이었지만 20년이 지나도록 새로운 운영진으로 젊은 작가를 영입하지 않아 세대교체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마루는 2010년 레지던시 프로그램 등 새로운 시도를 하며 청년작가를 영입하려고 했지만 불발됐다. 당시 참여했던 한 작가는 “마루의 운영주체와 세대차이가 심해 융합되기가 어려웠다. 중간에 완충작용을 할 만한 사람도 없었고 운영위원이 각자 목소리가 강해 시간이 지날수록 그 안에서 뭔가를 하기는 어렵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마루 내부에서도 세대교체 실패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나온다. 한 운영위원은 “다음 세대의 작가들에게 완전히 모든 것을 넘겨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이 부분에 대한 합의가 안 됐다”고 말했다. 또 다른 운영위원은 “출범 후 5년 정도 주기로 계속 새로운 것을 추구했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고 그저 안주해 버린 탓이 큰 것 같다”고 말했다.

    마루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창원청년작가회와 창원미협 등 주요 단체장을 역임하면서 마루 자체를 하나의 권력으로 보는 부정적인 시각도 생겨났다. 황무현 교수는 “일부에서 자기들끼리 다 해먹는다는 말들도 나왔다. 마루로 사익을 취한 사례는 없지만 이런 논란들이 제기돼 마루의 원래의 의도가 희석돼 버린 점이 많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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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루 10주년 기념행사


    ◆도내 대안공간의 미래

    도내에 미술관, 갤러리가 많아졌어도 미술과 관련된 공간에 대한 필요성은 유효하다. 여전히 기존의 미술관과 갤러리에서 수용하지 못하는 욕구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대안공간이 미술계 전반에서 하락세를 겪으며 점점 퇴화되는 상황에서 작가를 포함한 미술관계자들은 대안공간을 넘어선, ‘포스트(post) 대안공간’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포스트 대안공간은 큰 틀에서 ‘전시에 한정되지 않고 활발한 미술담론이 오가는 곳’으로 수렴된다. 장건율(26) 작가는 “꼭 정식으로 전시의 형태를 갖추지 않더라도 자기 작품을 편하게 걸어두고 피드백할 수 있는 공간이 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장두영(30) 작가는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자유롭게 생각을 주고받고 생산적인 이야기가 나올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최근 창원지역 청년작가, 미술 관계자들이 꾸린 비평교류모임 ‘사림 153’은 그런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비평교류는 작가가 자신의 그간의 작업내용을 모두 모아 PPT 형식으로 발표하는 것이다. 전시에 드는 비용 부담이 없고 공간의 제약이 없다는 점, 작품 비평을 비롯해 여러 가지 이야기를 자유롭게 나눌 수 있다는 점에서 기존 대안공간의 한계를 보완할 수 있다.

    마루도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대안공간의 한정된 프레임에서 벗어나 새로운 역할을 고민한다는 것이다. 마산대 황무현 교수는 “공간은 사라졌지만 사단법인 체제는 아직도 유지되고 있다. 현재 마루는 남해바래길작은미술관의 전시 기획을 맡고 있다. 직접 전시를 하는 것이 아니라 전시가 필요한 곳에 컨설팅을 하거나 교육 기능 강화, 아카이브(기록보관) 구축 등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세정 기자 sjkim@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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