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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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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파] 달변과 눌변- 이학수 정치부 부장대우

  • 기사입력 : 2017-03-21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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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 혀를 붙잡아 줄 이 없으니 함부로 말을 내뱉지 마라.’ 시경 ‘대아(大雅)·억(抑)’의 한 구절이다. 주자는 이렇게 해석했다. “말은 나 자신에게서 나오며, 실수하기 쉽기 때문에 늘 잡도리해 제멋대로 나오도록 놓아두어서는 안 된다. 말을 조심하라는 훈계가 깊고 절실하다”고 했다. 주역 ‘계사전(繫辭傳)’에도 ‘말과 행동은 군자에게 지도리와 방아쇠 같은 것, 영광과 치욕이 결정된다. 하늘과 땅을 움직이는 바탕이니 삼가라’고 했다.

    ▼공자는 특히 말 잘하는 사람을 경계했다. 논어 ‘공야장(公冶長)’편을 보면 어떤 사람이 공자의 제자 중궁(仲弓)에 대해 말재주가 없다며 공자를 떠본다. 공자는 중궁의 눌변(訥辯)을 감쌌다. 그는 “말재주가 좋은 것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약삭빠른 말재주로 남과 상대하면 오히려 미움만 사게 될 뿐이다”고 반박했다. 공자는 청산유수처럼 말을 잘해 다른 사람의 입을 얼어붙게 만드는 달변가인 영인을 좋지 않게 보았다. 중궁은 말은 어눌해도 덕행을 쌓아 공자의 10제자에 들었으며, 스승으로부터 임금감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사회학자 김찬호는 ‘눌변’이란 책에서 눌변의 가치를 재발견한다. 소란하고 난해한 한국 사회의 복잡하게 얽힌 실타래들을 풀 열쇠로 본다. 저자는 지금의 한국사회를 언어의 격조가 사라졌다고 진단한다. 상황을 일방적으로 규정하며 내뱉는 극언, 해괴하고 허황된 논리로 점철된 망언, 근거가 분명하지 않은 괴담, 끼리끼리 모여서 부풀리는 험담 등을 예로 들었다.

    ▼대선 레이스가 시작됐다. 말 많은 곳이 정치판이다. 민심을 얻으려는 후보들의 말의 성찬이 이어진다. 또 경쟁후보를 깎아내리는 말도 거침이 없다. 독설은 상대의 말문을 닫게 하므로 통쾌해 보이지만 결코 합의를 끌어낼 수 없다. 말을 함부로 하지 말라는 옛말은 역으로 상대의 말재주를 유심히 보라는 주문이다. 시대가 흘러도 달변 영인보다 눌변 중궁 같은 사람이 보배다. 말은 마음의 소리이기 때문이다.

    이학수 정치부 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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