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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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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다시 봄- 이경순(동화작가)

  • 기사입력 : 2017-03-17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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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생 때 방학을 이용해 서실에 다닌 적이 있었다. 학원생들이 돌아간 오후가 되면 대부분 일반인만 남았다. 그 가운데에 비녀를 꽂은 할머니 한 분이 눈에 띄었다. 넌지시 다가가 살펴보니 나보다 진도가 앞서 있었다.

    어느 날, 한 아주머니가 그 나이에 뭣 하러 붓글씨를 배우느냐고 물었다.

    “죽을 날이 다 된 늙은이가 배워서 어디다 쓰냐는 말인 것 같은데, 왜 잘못됐소?”

    되묻는 할머니의 말투가 너무도 단호했다.

    “젊어서 못 배웠으니 늙어서라도 배우고 싶어 이러는 거지. 관에 들어가기 전에 알고 싶었던 것 하나라도 더 배우고 싶어서.”

    할머니 말에는 배움에 대한 절절한 마음이 담겨 있었다. 질문한 아주머니는 미안해하며 진심으로 사과했다.

    가끔 붓글씨 쓰기가 지겨워져서 고개를 들면 할머니는 여전히 집중해서 쓰고 있었다. 할머니 모습을 보면 함부로 게으름을 피울 수가 없었다. 덕분에 한 달간 나도 참 부지런히 글씨를 썼다.

    배우고 싶은 한이 오죽 깊었으면 관에 들어갈 때까지 배우겠다고 했을까? 배움은 끝이 없다느니 평생교육이라느니 하는 시쳇말보다 더 강한 메시지를 주었다. 30년도 더 지난 일이니 할머니는 이미 배움을 마감했겠지만, 여전히 나를 일깨워주는 기억으로 소중히 남아있다.

    당신은 죽기 전까지 어떤 일을 하고 싶은가?

    언젠가부터 버킷리스트란 말이 널리 쓰이며 목록을 작성하는 이들이 늘어났다. 옛날 말에 책상을 짊어지고 가서라도 스승을 찾아 배운다고 했으니 사람마다 하고 싶은 일은 다를지라도 원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찾아보고 도전해 보라는 의미로 해석하고 실천하면 이룰 수 있지 않을까?

    현대인은 바쁘다. 너무 바쁘다. 학생은 학생대로 직장인은 직장인대로, 주부나 사업가는 또 그 나름대로. 이럴 줄 선인들은 미리 알기라도 한 것처럼 누구에게나 여유가 주어져 있다고 말했다. 겨울에는 한 해의 여유가 있고, 밤에는 하루의 여유가, 비가 올 때도 시간의 여유가 있다고 했다. 물론 지금에 꼭 맞는 말이라고 할 순 없지만, 그렇다고 폐기할 말도 아니다.

    나는 시간을 어떻게 보냈던가? 별 영양가 없는 TV프로 앞에 앉아 시간 죽이기를 하지 않았던가. 휴대폰 게임에 빠졌던 적도 있었고, 읽겠다고 펼쳐놓은 책이 며칠이나 같은 페이지에서 머문 날도 많았다. 해야 할 일을 미루었던 적은 어디 한두 번이었나.

    하는 일 없이 빈둥거린 사람에게 시간은 빨리 흘러간다. 하루가 길게 느껴지는 사람은 시간을 알차게 보냈기 때문이라고 한다. 경험과 체험을 많이 했으니 같은 시간이라도 얼마나 다채롭게 느껴지겠는가?

    우리나라는 1월 못지않게 3월이 지니는 출발의 의미가 크다. 상급학교에 진학하거나 갓 졸업한 사람들이 새로운 출발을 하는 때이다. 더구나 만물이 피어나는 봄이기에 더욱 그렇다.

    이제 다시 봄이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아 정말 다채로운 삶을 살아보면 어떨까.

    이 경 순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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