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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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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며] 나는 좌파인가 우파인가- 서영훈(부국장대우·문화체육부장)

  • 기사입력 : 2017-03-15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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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좌파인가, 우파인가.

    이런 생각을 갖고 이런 행동을 하면 좌파고, 저런 생각을 갖고 저런 행동을 하면 우파라고 하는 명확한 기준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유감스럽게도 그런 기준이 한국사회에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설령 있다고 해도 서로 동의하는 기준이 되지는 못하는 듯하다. 그러니 나는 어제도, 오늘도 좌파인지 우파인지 늘 아리송한 채로 살고 있다. 그걸 모르고 산다고 하여 마음이 어지럽거나 생활이 불편한 건 아니다. 그저 좌파인지 우파인지 헷갈린다는 말이다.

    어떤 이는 내가 쓴 ‘세상을 보며’ 칼럼을 보고 “당신은 좌파”라며 편지를 써 보낸 분도 있지만, 그분이 좌파와 우파를 경계 짓는 객관적인 기준을 갖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좌파의 유래야 빤하다. 프랑스 대혁명을 주도한 자코뱅클럽 중 급진공화파인 몽테뉴파가 의회의 왼쪽-의장의 왼쪽이라고 해야 보다 정확한 표현일 게다-에 앉고, 온건공화파인 지롱드파가 오른쪽에 앉은 데서 비롯됐다. 절대군주에 맞서 시민의 권리를 지키려던 사람들이 좌파였다.

    좌파가 대체적으로 사회적 변화를 추구하는, 사회적 불평등을 반대하는, 또는 사회 변화와 관련해 급진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나 정파들로 이해되고 있긴 해도, 역사적으로 하나의 의미로 고정돼 내려온 것은 아니다.

    좌파는 프랑스 의회의 의석 배치를 넘어 프랑스 공화주의 운동을 가리키는 말로 확장된 데 이어, 19~20세기에 이르러서는 사회주의나 공산주의, 사회민주주의, 무정부주의 등으로 쓰였다. 페미니스트 운동이나 반전 운동, 환경보호운동을 하는 이들도 좌파로 분류되기도 했다.

    좌파의 쓰임새가 이 정도에서 그친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중화권 언론은 중국의 개혁·개방정책을 비판하는 마오쩌둥(毛澤東) 추종 세력까지 좌파라고 따로 부른다.

    국내에서는 더 혼란스러운 일도 일어난다. 정부에 비판적인 말을 하거나 글을 내놓기라도 하면 곧바로 좌파로 낙인찍는다. 심지어, 참말로 ‘심지어’라는 부사를 쓰지 않을 수 없는 상황도 일어났다.

    한 언론의 보도를 보면 이렇다. 지난 13일,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을 받아 서울 삼성동 자택으로 돌아올 때였다. ‘박근혜 지킴이 결사대’를 자처하는 50~60대 남성들이 간이 테이블을 펴고 ‘결사대’ 입단서를 받으려 하자, 일단의 50대 여성들이 이를 만류하고 나서면서 서로 언성이 높아지는 상황이 발생했다. 누가 “우리끼리 싸우지 말아요”라고 했고, 다른 누구는 이를 받아 “당신도 분란을 일으키면 좌파가 되는 거야”라고 쏘아붙였다.

    아주 사소한 듯 보이지만, 지금 한국 사회에서 횡행하는 좌파 낙인찍기의 실상을 여지없이 드러내는 장면이다.

    국정농단의 책임자를 처벌하라고 요구하는 이들에 대해, 또 정부 정책을 비판하는 이들에 대해 주저없이 “너 좌파야”하며 윽박지르는 ‘점잖은 분들’에게 묻고 싶다. 도대체 당신들이 생각하는 좌파는 무엇인가. 혹여나 당신들을 비판하는 이들에게 재갈을 물리기 위한 방편으로, 아니면 선거 득표 전략의 하나로 좌파 프레임을 들고 나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어서 던지는 질문이다.

    내가 좌파인지 우파인지 제발 가르쳐 주시길….

    서영훈 (부국장대우·문화체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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