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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파] 계영배(戒盈杯)- 이상권 정치부 부장대우

  • 기사입력 : 2017-03-14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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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자가 제나라 환공의 사당을 찾았다. 똑바로 서지 못하고 옆으로 기운 잔을 발견했다. 사당 관리인은 “비면 기울고, 알맞게 차면 바로 서고, 가득 채우면 엎질러진다. 항상 곁에 두고 보는 그릇이라 하여, 유좌지기(宥坐之器)라고 한다”고 했다. 유좌지기는 ‘자리의 오른쪽에 두는 그릇’이라는 뜻이다. 지나치거나 모자람을 경계하기 위해 군주가 옆에 두고 보면서 마음을 닦은 잔이다. 옆에 적어놓고 스스로 경계하는 문구라는 좌우명(座右銘)이란 말이 여기서 유래했다.

    ▼과음을 경계하기 위해 만든 ‘계영배(戒盈杯)’도 유좌지기와 같은 의미를 담고 있다. ‘가득 참을 경계하는 잔’이란 뜻의 계영배는 술이 일정 높이 이상 차면 저절로 아래로 빠져나가게 만들었다. 조선시대 도공 우명옥이 유명해지자 방탕한 생활로 재물을 탕진한 뒤 잘못을 뉘우치면서 만들었다고 한다. 이후 조선 거상(巨商) 임상옥이 이 계영배를 소유했는데, 항상 곁에 두고 마음을 다스리면서 큰 재산을 모았다고 한다.

    ▼지난 2000년 초반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지인들에게 계영배를 선물하기로 유명했다. 기자들을 서울 삼성동 자택으로 초청한 자리에서도 계영배를 소개하며 절제의 미학을 강조했다. 2007년 크리스토퍼 힐 미국 국무부 차관보가 베이징에서 열린 북핵 6자회담에서 북한 측에 과다한 욕심을 버리라고 설득하면서 계영배를 비유했다. 주한 미국 대사 시절 박근혜 대표로부터 받은 선물에서 모티브를 얻은 것으로 알려졌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파면이라는 헌정사상 초유의 불명예를 안고 12일 청와대를 떠났다. 주변에 계영배를 선물하며 그 의미를 설파했지만 정작 자신을 경계하는 데는 소홀한 모양이다. 가득 차면 엎어지는 것은 비단 잔뿐만 아니라 마음도 마찬가지다. 채근담에는 “꽃은 반쯤 폈을 때 보고(花看半開) 술은 조금만 취하도록 마셔야(酒飮微醉) 그 속에 참 아름다운 멋이 있다(此至大有街趣)”고 했다. 지나치면 넘치고, 만족을 모르면 불행이 시작된다.

    이상권 정치부 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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