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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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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평범한 것이 소중하다- 강천(수필가)

  • 기사입력 : 2017-03-10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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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월로 들어서니 온 누리가 봄 내음으로 가득한 듯하다. 꼭 기분 탓만은 아닐 것이다. 개암나무 수꽃이 슬그머니 늘어지기도 했거니와, 오리나무 가지에도 푸른 물이 올랐다. 볕 바른 곳에서는 빨간 볼연지를 바른 광대나물이 헤실헤실 춤을 추고, 꽃등에는 봄소식을 물어 나르느라 분주하다. 변함없이 찾아오는 흔하디흔한 봄 풍경이지만, 언제나 느끼는 생명의 경이로움이기도 하다.

    한때는 특별한 행위나 생각만이 의미 있는 것이라 여긴 적이 있었다. 푸새 하나를 보더라도 남보다 먼저 봐야 하고, 희귀하거나 자생지가 한정된 야생화를 찾는 일이야말로 진정한 식물탐사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쉬이 만날 수 없는 식물이 어느 곳에서 발견됐다는 이야기가 들리기라도 하면 불원천리, 기어이 카메라에 담아 오고는 했다. ‘드물거나 색다른 것만이 가치 있다’라는 그릇된 마음에 물들어 버린 탓이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나는 남들과 다르다고 하는 과시욕이 나를 그렇게 만들지 않았을까 한다.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한 특이한 풀꽃을 나만이 보았다는 데서 느끼는 희열 같은 것 때문이었을 것이다. 식물을 탐사하는 이로서 ‘어디에 있는, 어떤 식물을 만나 보았느냐’가 능력을 가늠하는 잣대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부끄러운 줄 모르고 여기저기에다 식물 사진을 찍는다고 자랑스럽게 떠벌리고 다녔다.

    애지중지하던 난초 화분이 번민의 뿌리였음을 깨닫고, 화분을 놓아버림으로써 집착에서 벗어났다던 법정 스님의 <무소유>가 생각난다. 스님도 처음에 난 화분을 받았을 때는 즐거운 마음이었다. 좋은 마음으로 가꾸고 돌보며 기꺼워하지 않았던가. 다만 그것에 마음을 빼앗기는 순간부터 번뇌가 시작됐다. 귀하게 여기는 마음, 아끼는 마음, 내 것이라는 마음에서 일어난 작은 소유욕이 키운 씨앗이었다. 그 싹이 점점 자라서 종내에는 다스릴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스스로 놓아버릴 수밖에 없었으리라.

    숲과 생태를 이루는 대부분은 범상한 생명체들이고, 사람 사는 세상도 평범한 이들이 주류를 이룬다. 특별한 것은 그야말로 특별한 것일 뿐,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 사회의 이 혼란스러움도 스스로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몇몇 사람들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듯 보이지만, 그것은 겉으로 드러난 현상에 지나지 않는다. 제아무리 큰 목소리도, 평범한 사람이 만들어 놓은 테두리 안에서나 가능한 일들이기 때문이다. 녹색 잔디밭에 홀로 핀 노란 민들레 한 송이가 특별해 보이는 이유를 생각해 보라. 아래에 널린 푸릇함이, 별스레 특출하지도 않은 민들레를 돋보이게 하는 착시현상일 뿐이다. ‘특별하다는 것은 때와 장소, 행위와 의식에 따라 언제나 변하는 잔디밭의 민들레와도 같다’고 하면 지나친 억측일까.

    ‘재앙은 만족함을 모르는 것보다 더 큰 것이 없고, 허물은 끝없이 얻고자 하는 욕망보다 큰 것이 없다’는 도덕경의 구절이 있다. 세상을 벌집 건드린 것처럼 들쑤셔놓은 특별한 분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말이다. 나 역시 다르지 않다. 진귀한 것을 찾아 헤매기보다 천지에 널린 작은 들꽃에서 삶의 본질을 발견해내는 통찰이야말로, 내가 걸어야 할 생태의 길이라는 사실을 뒤늦게야 알게 됐다. 이 봄에는 길섶에서 밟히며 살아가는 잡초의 삶, 그 평범 속에 감춰진 소중함을 알아보는 지혜를 깨우쳐보았으면 한다.

    강 천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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