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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파] 이난영 기념관- 김진호 정치부 부장대우

  • 기사입력 : 2017-03-10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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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목포에 가수 이난영(1916~1965)을 기리기 위한 가칭 ‘소리물결대중음악원’ 건립이 추진된다는 소식에 귀가 번쩍 뜨였다. 목포시는 ‘이난영 기념관’ 건립을 위해 올 상반기 중 문화체육관광부에 사업계획서를 제출하고 본격 사업에 들어간다고 지난달 밝혔다. 60~70억원대로 예상되는 사업비는 국비 등을 받아 조달한다는 계획이다.

    ▼목포에서 태어난 이난영은 1934년 ‘불사조’라는 노래로 가요계에 처음 데뷔한 뒤 이듬해 9월 발표한 ‘목포의 눈물’로 인기 정상의 스타가 된다. ‘목포의 애국가’로 불리는 ‘목포의 눈물’은 1935년 초 조선일보가 주관한 향토노래 현상공모작인 목포 시인 문일석이 쓴 시에 작곡가 손목인이 곡을 붙여 탄생했다. 이난영의 음악세계를 조명하고 이를 통해 한국 대중음악 발전을 꾀하기 위한 이 기념관은 4층 규모로 공연장 난영홀, 음악창작 스튜디오 및 연습실, 대중음악 체험전시관 등을 갖출 예정이다.

    ▼이난영은 일제시대 최고 유명가수였던 까닭에 친일 부역 시비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현재 밝혀진 이난영이 부른 친일 관련 가요는 2~3곡이다. 이난영은 1943년 일본 군국주의 막바지에 남편 김해송이 작곡한 ‘이천오백만의 감격’이라는 군국가요를 가수 남인수와 함께 불렀다. 또 1942년에는 노골적인 군국가요는 아니지만 일본군이 돼 전선으로 간 남편에게 보내는 내용의 ‘신춘엽서’도 부른다. 1941년 김정구와 함께 발표한 ‘아세아의 합창’이라는 노래도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군국가요일 가능성이 높다.

    ▼이난영의 친일행적에도 목포시민들은 다양하게 ‘국민가수’를 기리고 있다. 1969년 6월에는 유달산 기슭에 ‘목포의 눈물’ 노래비가 세워졌다. 1968년부터 ‘난영가요제’가 열리고 있고 공원, 기념비도 있다. 여러모로 목포와 유사한 역사를 가진 마산도 조두남을 비롯해 반야월 등 음악인이 많지만 친일행적이 있다는 이유로 이들의 기념관이나 노래비는 세워지지 못했다. 문화예술이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하는 시대다. 항구도시 마산에 바다가 없는 것처럼 문화예술도시 마산에 문화콘텐츠가 없다.

    김진호 정치부 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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