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4월 25일 (목)
전체메뉴

[가고파] 문지방과 경계인- 이종훈 정치부 부장대우

  • 기사입력 : 2017-02-24 07:00:00
  •   

  • 요즘은 흔한 말이 아니지만 옛 어른들은 ‘문지방(門地枋)을 밟으면 복이 나간다’는 말을 종종 했다. 문지방이란 방과 방의 경계 아랫부분에 가로댄 나무 턱을 말하는데 문턱이라고 한다. 은유적으론 외부와의 경계선을 뜻한다. 그런데 그걸 밟으면 왜 복이 나가는 걸까.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지만 우리나라 전통가옥의 형태가 흙벽과 목조로 돼 있어 가장 취약한 문지방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는 해석이 논리적인 것 같다.

    ▼문지방은 서양이나 동양이나 영적인 존재이기도 하다. 예전에는 장례를 집에서 치렀는데, 시신을 장지로 운구하기 위해서 방에서 마당에 있는 상여까지 관을 운반할 때 문지방에 바가지를 엎어놓고 관으로 눌러 깨뜨리고 나갔다. 이는 그 집안의 액운을 물리침과 동시에 인연을 끊는 의식으로 생각된다. 미국에서는 갓 결혼한 신랑이 신부를 안고 문지방을 넘으면 그 부부는 악령을 물리쳐 행복하게 산다는 미신도 있다.

    ▼출애굽 직전에는 이스라엘 백성이 유월절 어린 양의 피를 문지방과 문설주에 발랐는데 이런 이유에서 문지방은 종종 외부 세계와의 경계선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대다수 사람들은 이 경계를 좋아하지 않는다. 이쪽이나 저쪽에 있다고 확실하게 말하기가 애매하기 때문이다. 경계는 문화가 다른 두 세계가 만나는 곳으로, 그런 언저리에 있는 사람을 ‘경계인’이라고 한다. 간첩 혐의로 재판까지 받은 재독 사회학자 송두율 교수가 자신을 일컫는 말로 사용하기도 했다.

    ▼대통령 탄핵사태 등 정치 지형이 급격하게 변하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정치인’도 많아졌다. 여러가지 갈등으로 사회적 분열도 심각한 상황이다. 문지방은 턱이 낮아 쉽게 언제든지 넘어갈 수 있다. 문지방 언저리에서 주춤거리기보다는 보수와 진보를 뛰어넘는 ‘자유로운 경계인’들이 많이 나왔으면 한다. 이제는 밟으면 안 된다던 문지방도 사라지고 있어 복이 나갈 이유도 없는 세상이지 않은가.

    이종훈 정치부 부장대우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