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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6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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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주 기자의 영화읽기- 재심(감독 김태윤)

진실 찾기 고군분투

  • 기사입력 : 2017-02-20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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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재심’은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실화를 다룬다는 점에서 영화 ‘변호인’, ‘도가니’, ‘부러진 화살’과 같은 한국형 법정영화 계보를 잇고 있다. 또 약한 자의 편에서 법의 존재 이유와 정의 구현에 앞장선다는 유사한 맥락으로 출발했기에 기존 영화들과 오버랩될 수밖에 없다. 이 단점을 어떤 연출과 연기로 클리셰(판에 박힌 듯한 문구나 표현)에서 벗어나 차별화를 꾀할 것인가가 이 영화가 지닌 숙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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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는 살인사건에 휘말린 현우의 과거와 세속적 변호사 준영의 현재를 오가며 이야기를 풀어낸다. 지난 2000년 8월, 전북 익산의 약촌오거리에서 한 택시기사가 흉기에 찔려 살해된다. 다방에서 배달일을 하던 10대 소년 현우(강하늘)가 우연히 사건 현장을 목격하게 되고, 현장을 조사하던 형사는 현우를 범인으로 단정짓고 수사를 펼친다. 건장한 형사들에 둘러싸여 구타를 당하고 허위 자백을 강요 당한 현우는 결국 누명을 쓰고 10년을 감옥에서 보낸다. 한편 변호사 준영(정우)은 올인했던 아파트 집단소송에서 패소하면서 변호사 생활의 위기를 맞는다. 사법연수원 동기 창환(이동휘)의 소개로 대형 로펌에서 일할 기회를 얻은 그는 이미지를 중시하는 대표의 환심을 사기 위해 무료법률서비스 출장에 나서고, 그곳에서 현우의 사연을 접한다. 출세를 위해 현우의 재심에 관심을 보이던 준영은 사건에 의문을 품기 시작한다. 진범이 있다는 제보가 들어온 데다 진술서에 쓰인 범행 방법과 시간 등 허점이 수두룩했다. 당시 수사가 잘못됐음을 인정할 수 없는 경찰과 검찰의 방해를 뚫고 재심의 당위성을 인정받아 현우의 무죄를 밝힐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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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태윤 감독은 2003년 삼성전자 기흥 반도체 공장에서 근무하다 백혈병으로 사망한 직원과 그녀의 아버지가 삼성전자를 상대로 싸웠던 실화를 다룬 영화 ‘또 하나의 약속’에 이어 다시 실화를 소재로 한 영화로 메가폰을 잡았다. 실화를 모티브로 한 영화는 감정적 접근과 편향된 시각이라는 우를 범하기 십상이다. 그래서인지 이 영화는 담담함을 강조하려 속물 변호사 준영이 진짜 법조인으로 변모하는 과정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현우의 억울함을 더 부각했다면 드라마적 요소가 훨씬 풍성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속물 변호사인 준영이 사법 정의를 깨닫는 과정을 통해 사회 부조리와 약자를 대하는 공권력의 부도덕한 행태를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데 주력한다. 또 로펌 내부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언쟁으로 관객들에게 변호사가 추구하는 것이 공익인지 돈인지를 묻고 있는데, 이 역시 올곧은 법조인을 희망하는 시대적 요구를 전달하는 장치로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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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으레 법정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유려한 말솜씨와 숨겨진 증거로 사건을 뒤집는 재판신이 극의 클라이맥스로 쓰이지만 이 영화는 법정물의 꽃이라 불리는 재판 장면보다 재판 준비과정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영화 속 주인공이 출소 후 재심을 청구한 것과 달리 실제 주인공은 복역 중에 재심청구를 진행했고, 영화 제작이 한창이던 지난해 무죄 판결을 받은 영향도 있겠지만 재판신이 주는 카타르시스 대신 피해자가 누명을 벗고 일상에 복귀할 수 있는 사회적 제도가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함이 더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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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한 의도로 기획된 영화라 할지라도 관객의 선택을 받으려면 개연성과 연기력은 필수다. 이런 측면에서 영화 ‘재심’은 정우, 강하늘 두 주연 배우의 진정성과 김해숙, 이경영, 이동휘, 한재영의 내공 덕을 톡톡히 봤다. 또 관객이 찬란한 청춘기의 10년을 교도소에서 보내야 했던 소년 현우가 불쌍하다고 느끼는 데 그치지 않고, 만인은 법 앞에 평등하며 진실은 법정에서 밝혀져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연출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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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는 무죄 판결로 해피엔딩을 맞았지만 사실 이는 해피엔딩이라 할 수 없다. ‘누구를 위한 법이냐’고 묻는 현우의 말대로 애초에 발생하지 않았어야 했기 때문이다. 정의롭지 못한 세상을 살다간 청년 윤동주는 시 ‘서시’를 통해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소망했다. 억울하게 10년 동안 감옥살이한 현우에게 부끄러움과 미안함을 모르는 이들은 한마디의 사과도 하지 않는다. 영화 ‘재심’은 불편한 실화를 투영해 부당한 피해를 당하거나 부당한 이익과 마주하면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할 용기가 필요하다는 당연한 교훈을 전달하고 있다.

    정민주 기자 joo@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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