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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30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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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공간 (4) 마산 만초집

술과 소리가 있소이다, 30년 추억도 있소이다

  • 기사입력 : 2017-02-16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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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동예술촌 뒷골목에 자리 잡은 만초집은 여러모로 특이한 곳이다. 새하얀 바탕에 그저 커다랗게 ‘蔓草(만초)’라고만 적힌 간판, 메뉴판도 가격표도 없고 문 여닫는 시간이 따로 없는 점도 그렇다. 주는 대로 먹고 달라는 대로 돈을 낸다. 멸치나 마른 안주, 두부 등이 나가지만 주인은 대개 술값만 받는다. 문을 열었을 때 주인이 있으면 영업을 하는 것이고 낮이든 밤이든 원하는 만큼 마시고 가고 싶을 때 가면 된다.

    그중에서도 가장 특이한 점은 주점이면서 ‘고전음악의 집’이란 소개를 붙여놓은 점이다. 가게 안팎에 있는 스피커에서는 베토벤, 드보르자크, 차이콥스키 등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온다. 실내에 들어서면 자그만 테이블 2개와 누렇게 세월의 더께가 내려앉은 CD재생기와 수납장이 눈에 들어온다. 음악이 흐르는 주점, 만초집의 이야기는 1971년 북마산 문창교회 옆에 문을 연 ‘음악의 집’에서 시작된다.

    음악의 집은 만초집의 주인인 조남융(81)씨가 처음 차렸던 주점으로 만초집의 전신이다. 몇 개 안 되는 테이블에 간판도 따로 없는 가게였지만 클래식 음악을 틀어놓으니 자연스레 대학생이며 예술인들이 찾아들었고 음악의 집이란 상호가 붙었다. 운영 방식도 지금과 같았다. 다들 어려운 시절이었기에 주인 내외는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박하게 굴지 않았다. 외상으로 속 썩인 이도 많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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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원시 마산합포구 오동서1길 16에 위치한 만초집. 주인 조남융씨가 의자에 앉아 벽면을 가득 채운 사진과 미술작품 등 만초집에 얽힌 이야기를 하고 있다.

    1973년 오동동 코아양과 맞은편 2층 건물로 옮긴 음악의 집은 1970년대 마산 예인(藝人)들의 사랑방으로 자리 잡으며 전성기를 맞았다. 당시 경남대에 출강했던 시인 구상, 가곡 ‘뱃노래’의 작곡가 조두남, 게 그림으로 유명한 화가 최운, 시인이자 연극인인 정진업, 시인 이선관, 시인 박재호, 작곡가 김봉천 등 문학, 미술, 음악 각 분야를 가리지 않고 수많은 예술인이 음악의 집을 찾아 술잔을 기울이며 이야기를 나눴다. 산업화의 한가운데서 모두가 팍팍했던 시절,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오는 주점은 예인들뿐만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의 마음도 사로잡았다. 대학교가 방학을 할 때면 서울에서 음악을 들으러 내려오는 학생들도 있었다고 한다. 70년대 음악의 집에는 음악이 넘쳤고 사람도 넘쳤다.

    “거기서 눈맞아서 결혼하고 그런 케이스도 많았지. 워낙 사람들이 많이 찾던 때였으니까 뭐. 전에 이쪽 어디 거리를 지나가는데 어떤 여자가 인사를 하더라고. 모르는 사람이었는데 예전에 음악의 집에 자주 찾아와서 음악 들었던 사람이라 그러데.” 주인인 조씨가 허공을 지긋이 응시하며 음악의 집 시절을 회고한다.

    잘나갔던 음악의 집은 70년대 후반 문을 닫았다. 장사가 잘되자 주인이 가게를 빼달라고 한 탓에 옛 중앙극장 인근으로 자리를 옮겼지만 가게는 예전같지 않았다. 조씨는 결국 간판을 내렸다. 그리고 한참의 세월이 흐른 뒤인 80년대 후반, 그는 지금의 자리에 만초집을 열었다. 상황이 넉넉지 않아 이전 주인이 쓰던 간판인 ‘만초(蔓草)’를 그대로 뒀다. 조씨는 LP 대신에 CD를 들였고 여전히 베토벤, 시벨리우스 같은 클래식을 틀었다. 음악의 집 시절처럼 북적이진 않았지만 그래도 그 시절을 기억하던 사람들이 꾸준히 찾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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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초집 입구.


    만초집의 한쪽 벽면에는 수백 장의 사진이 붙어 있다. 만초집을 찾았던 사람들의 얼굴이다. 모두 같은 테이블에서 앉아 환하게 웃고 있는 수백명의 얼굴은 만초집이 보낸 30여 년의 세월이자 추억 그 자체다. 조남융, 엄학자 부부는 지금도 사진 속 얼굴들을 모두 기억하고 있다.

    이미 고인이 된 사람들도 많다. 마산에서 동서화랑을 운영했던 고 송인식 관장의 얼굴이 곳곳에 보인다. 절반 이상 벗겨진 희끗희끗한 머리에 수염을 길게 기른 그는 작가들과 환하게 웃고 있다. 거하게 마신 후인지 붉어진 얼굴을 한 모습도 있다.

    안주인 엄학자(75)씨가 송 관장에 대한 기억을 더듬어낸다. “참 멋쟁이였다. 빨간옷을 딱 입고 그래 다녔지. 예술하는 사람이 누가 아프거나 해서 병원에 누워 있으면 병원비 보태준다꼬 일부러 전시회를 열고 그랬다 아이가. 사람들을 그래 잘 챙기던 사람이었다. 항상 ‘지화자, 위하여’ 이렇게 커다랗게 소리 지르면서 한잔씩 하고 그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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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년 세월 함께한 단골들 사진.


    푸른색 점퍼를 입은 이선관 시인, 벙거지 모자를 눌러 쓴 현재호 화가도 보인다. 조씨는 현재호 화가와 특히 가까운 사이였다. “순한 사람이었는데. 말도 별로 없고 과묵했어. 술을 너무 좋아해서 일찍 갔지 뭐. 늘 여기저기서 조금씩 마시다가 여기 와서 혼자서 또 마시고 그랬다.” 조씨의 말에 만초집에서 묵묵히 술잔을 기울이던 현재호 작가가 생생해진다. 사진이 붙어 있는 벽면 오른쪽에는 현 작가의 1996년작이 걸려 있다. “재호 그림이 참 많았는데 다 팔아묵었다. 집세 내느라고.” 조씨가 얼굴에 희미한 웃음을 띤 채 그림을 바라본다.

    지금도 지역에서 활발히 활동 중인 원로화가 박춘성, 윤종학과 중견작가인 윤형근의 젊은 시절 얼굴도 보인다. “박춘성이는 자주 와야지. 안오면 안돼. 나한테 혼나니까.” 조씨가 껄껄 웃으며 말한다. 알고 보니 박 작가, 윤 작가는 주인인 조씨와 서라벌예술대학(현 중앙대) 동문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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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의 더께가 쌓인 CD재생기·수납장.


    세상을 떠났거나 원로가 된 사람들도 있지만 벽면 맨 아래쪽에는 젊은 사람들의 얼굴도 있다. 지역에서 활동하는 청년미술작가들이다. 창동예술촌 내 갤러리 space1326을 운영하는 강대중 대표, 노순천 작가, 노은희 작가, 감성빈 작가, 이정희 작가 등 많은 이들이 이곳을 찾았다. 다들 자연스럽게 오게 됐다고 한다. 누구에게 듣거나 소개받아서 들른 한 작가가 다른 작가를 소개하고 그 작가가 또 다른 작가를 데리고 오는 식이다.

    다들 처음엔 분위기에 놀랐다고 한다. 감성빈 작가가 만초집과의 첫 만남을 떠올렸다. “신기했죠. 이런 곳이 있다는 게. 근데 금세 편해졌어요. 음악을 틀어주시는데 듣다 보면 자연스레 처음 보는 사람들과도 어울리게 되거든요. 분위기에 자연스럽게 취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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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호, 허청륭 등 단골화가들의 작품.


    노순천 작가는 조금 더 특별한 케이스다. 대를 이은 단골이기 때문이다. 젊은 시절 음악의 집을 즐겨 찾았던 노 작가의 아버지는 만초집이 생긴 후에도 꾸준히 발걸음을 하다가 노 작가도 데리고 왔다. “20대 초반일 때 아버지를 따라 처음 가봤어요. 그 길로 친구들과도 자주 찾게 됐고요.

    다 신기했는데 역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사진이죠. 아버지의 예전 얼굴도 있고 미술계 선배들의 얼굴도 있고. 그 사람들도 우리처럼 이렇게 놀았겠구나 생각하면 여러 가지 감정들이 생기는 것 같아요.” 70년대 활동했던 1세대 작가와 2017년 현재를 사는 작가들이 같은 공간에서 추억을 쌓았다는 점이 뭉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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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취재를 위해 만초집을 처음 찾은 날, 주인 조씨는 차이콥스키의 교향곡 ‘비창’을 틀어줬다. 오래된 기계는 처음엔 귀찮은 듯 움직이지 않더니 조씨의 손에서 꽤 오래 머무르고 난 뒤엔 웅장하고도 깨끗한 소리를 뿜어냈다. 음악이 흐르자 신기하게 손님이 찾아왔다. 창동예술촌 입주작가인 정순옥 화가가 문을 열더니 “형님, 내 왔습니더. 소리 나는 거 듣고 왔지”라며 안주인에게 우렁차게 인사를 건넸다.

    두 번째로 만초집을 찾은 날, 드보르자크의 교향곡 ‘신세계로부터’가 흘러나올 때도 그랬다. 지나가던 중년 부부가 발걸음을 멈추고 가게에 들어와 벽에 붙은 사진을 보며 조씨 내외와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그제서야 만초집 앞에 붙은 문구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술과 소리가 있소이다, 그냥 갈랑겨.’

    글= 김세정 기자·사진= 성승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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