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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7월 21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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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하꼬] 마산 무학산 ‘최치원의 길’을 가다

천년 전 고운이 이곳에서 본 풍경은 어떠했을까?

  • 기사입력 : 2017-02-16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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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일신라 말기 대사상가이자 당대 최고 문장가로 알려진 고운 (孤雲) 최치원. 마산 무학산에 그의 흔적을 이어놓았다는 ‘최치원의 길’을 지난 10일 다녀왔다.

    최치원의 길은 지난 2015년 창원시가 최치원의 생애와 사상, 업적과 발자취를 따라 그의 인문정신을 재발견할 수 있게 만날고개에서 고운대(학봉) 또는 서원곡유원지까지 잇는 구간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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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운대 옆 십자바위에서 내려다본 마산합포만의 모습.

    최치원의 길은 기존 무학산 둘레길과 겹치기도 하지만, 길을 걸으며 볼 수 있는 자연의 정취를 느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곳곳에 최치원이 직접 지은 시를 발견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리고 숲 사이로 보이는 마산 앞바다의 모습 때문에 많은 이들이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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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탄한 길이 주를 이루는 최치원 길.


    ◆최치원의 길 시작, 만날고개


    최치원의 길 시작은 만날고개부터다. 만날고개는 마산회원구와 마산합포구의 경계에 위치한 대곡산 쌀재 고개에서 남동쪽으로 이어지는 길목에 있는 곳으로 높이가 180m라 이곳에 주차해 출발하면 여정을 쉽게 할 수 있다.

    만날고개에서 서원곡유원지까지의 거리는 약 5㎞, 1시간 30분 정도의 구간이다. 무학산 둘레길과 겹쳐 헷갈릴 가능성이 있지만, 창원시는 이를 방지하기 위해 최치원의 길 곳곳에 총 12개의 표지판을 설치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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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날고개에서 출발한 지 얼마되지 않아 발견한 최치원의 시는 ‘해변한보’였다.

    △해변한보(海邊閒步). 조수도 밀려간 모래벌판 걸어 오르니/ 해 지는 산머리에 저녁 놀 피어난다/ 봄빛이 길이 나를 괴롭히지 않겠지만/ 볼수록 취하는 고향 동산의 꽃이여/ -최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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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운대 가는 길

    만날고개에서 출발해 고운대로 향하는 길은 대체로 원만한 편이다. 가파른 길보다는 능선을 따라 이어지는 평탄한 길이 주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10일 오후 강추위가 맹위를 떨쳤음에도 산을 찾은 이들이 많았다. 눈길을 끌 만한 점은 최지원의 길의 끝인 서원곡 유원지 방향에서 만날고개 방향으로 오는 이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의문은 한 등산객을 만나면서 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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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길이 얼어붙은 완월폭포.


    이날 오후 2시께 등산로에서 만난 이원재(69·마산합포구 해운동)씨는 매일 무학산을 오른다고 자신을 소개하면서 “지금 시간이면 서원곡 유원지 방면으로 가는 길은 맞바람을 맞으면서 갈 수밖에 없다”며 “이 때문에 최치원의 길 반대 방향으로 오게 됐다. 우리야 길을 많이 다녀서 그렇지만, 처음 길을 가보는 사람은 만날고개에서 가면 좋을 것이다”고 조언했다.

    맞바람을 맞으면서 가야 했지만, 공기가 맑고 길도 평탄해 부담스럽지 않았다. 길을 걷는 동안 다양한 나무들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다. 소나무, 산초나무, 잣나무, 비목나무, 은사시나무, 목련, 화백 등 겉으로 보기에는 비슷비슷해 보이는 나무들은 각자 제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등산로 오른편 탁 트인 공간으로 보이는 파란 마산 앞바다는 절경이었다. 바다 위에는 최치원이 요괴를 퇴치했다던 돝섬이 떠다녔다.

    △범해(泛海). 푸른 바다에 배 띄우니 /긴 바람 만 리를 통하였네 /뗏목을 타보니 한나라 사신 생각 /약초 캐려던 진나라 동자 기억나네 /해와 달은 허공 밖에 있고/ 하늘과 땅은 태극 가운데일세/ 봉래산이 지척에 보이고/ 나는 또 신선을 찾아보네 -최치원-



    ◆최치원이 수양했다는 고운대

    고운대는 무학산 397m 높이에 있다. 무학산 꼭대기가 767m인 점을 고려하면 절반밖에 안 되지만, 가는 길이 가파른 편이다. 고운대는 현재 학봉 또는 부엉산으로 불린다. 고운대는 인근 완월암에서 출발하거나 서원곡 유원지에서 시작하면 30분 정도면 도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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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운대는 평평한 바위가 우뚝 솟아오른 봉우리로, 무학산의 정기가 넘쳐 흐르는 듯하면서 합포만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장소다. 구름이 고운대를 중심으로 둘러싸고 있기라도 하다면 마치 신선이 사는 곳에 온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이 때문에 그의 학문을 흠모했던 고려시대를 대표하는 천재시인 정지상(鄭知常, ?~1135)이나 조선시대의 이황(李滉, 1501~1570년)과 정구(鄭逑, 1543~1620년)를 비롯한 많은 학자들이 이곳을 찾았고, 월영대와 더불어 신선이 사는 곳과 같다고 노래한 명소다.

    이날은 날씨가 맑아 고운대에서 마산 시내와 바다를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 과연 최치원이 이곳에서 정신수양을 했을 것이라고 전해지는 말이 허튼 말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사정(沙汀). 아득히 돌아보니 마치 눈꽃이 날리는 듯/ 약질이라 언제나 제 몸도 가누지 못한다네/ 모이고 흩어짐은 조수의 일렁임에 기대고/ 높고 낮음은 바닷바람에 부는데 달렸네/ 안개가 비단같이 퍼지자 사람의 발길이 끊어지고/ 햇살이 찬 서리에 비치니 학의 걸음도 더디네/ 떠나는 마음 섭섭해 밤늦도록 읍조리는데/ 어찌 견딜 수 있으리오 또 달마저 둥근 때인걸/ -최치원-

    글·사진= 고휘훈 기자 24k@knnews.co.kr



    최치원은

    통일신라 말기 대사상가·당대 최고 문장가로 시무책 10여조 올려 정치개혁 노력
    신라 진골 체제 실망 지방관 전전하며 현재 마산합포구에 별서 짓고 후진 양성도


    868년 12세의 어린 나이로 당나라에 유학하고, 18세의 나이로 당나라의 빈공과에 합격했다. 879년 당나라에 황소의 난이 일어나자 고병의 종사관이 돼 서기의 책임을 맡았다. 당나라에 머무는 17년 동안 고운(顧雲)과 나은(羅隱) 등 당나라의 여러 문인과 사귀었다.

    29세 때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뒤에는 당나라에서의 정치적, 학문적 경험을 바탕으로 신라 사회를 개혁하려고 했다. 889년 농민들이 봉기해 신라가 내란에 휩싸이는 상황이 되자, 진골 중심의 신분제 사회에 대한 한계와 국정의 문란함을 깨닫고 경주를 떠나 지방관으로 전전했다.

    890년부터 태산군(전라북도 태인), 천령군(경상남도 함양), 부성군(충청남도 서산) 등지에서 지방관을 지내면서 신라의 사회적 모순을 인식했고 이에 894년 시무책 10여 조를 진성여왕에게 올렸다. 하지만 그것도 중앙 귀족들의 방해로 뜻을 이룰 수 없었다. 이후 진성여왕이 시무책을 받아들여 6두품이 오를 수 있는 최고의 관등인 아찬에 올랐지만 선생의 정치 개혁안은 귀족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에 실망과 좌절감을 이기지 못하여 경주를 떠나 유랑하고 은거했다. 해인사에 은거하기 전에 합포현(현재 마산합포구)에 별서(別墅)를 짓고 후진을 양성하기도 했다.


    최치원의 발자취


    △월영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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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산합포구 밤밭고개로 442에 있는 월영대는 1932년에 20평 남짓한 대지 위에 ‘월영대’ 비각과 ‘척륭문’ 그리고 두 개의 기념비를 품고 있다. 기념비 중에서도 ‘문창공 최선생 유허비(文昌公崔先生遺墟碑)’는 후손들이 선생을 기려 건립한 비석이다. ‘월영대’라고 쓴 최치원의 친필 화강암 석각물만 원형대로 전해지고 있다. 월영대는 1993년 1월 8일 경상남도 기념물 제125호로 지정됐다.



    △두곡영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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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산회원구 두척동 두곡마을에 있는 두곡영당(최치원 영당)은 선생의 영정을 봉안한 곳으로, 연중 향례가 거행된다. 이곳에서는 작가 및 제작 연대를 알 수 없는 최치원의 초상화와 그가 13세 때 썼다는 글을 1870년에 최씨 문중에서 인수, 봉안하고 있다. 1968년 2월 옛 영당을 철거하고, 같은 해 10월 새 영당을 준공했다.



    △돝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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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산합포구 돝섬1길에 있는 돝섬은 최치원이 요괴의 빛을 퇴치하고 제사를 지낸 곳으로, 한때 ‘마산시민의 기우 제단’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탁청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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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창구 퇴촌동에 위치한 탁청대는 ‘탁청’이 수양을 통해서 마음을 맑고 깨끗하게 한다는 뜻으로 최치원의 글씨로 전해지고 있다. 탁청대 비는 ‘탁청대’라는 글자가 새겨진 비석으로, 원래 마산합포구 합성동에 있던 창원향교 앞에 있었다. 창원향교는 고려 충렬왕 때 유학자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창건됐다고 전해지는데, 조선 전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창원향교는 현재 의창구 퇴촌동 국립창원대학교 박물관 앞으로 이전해 있다.



    △청룡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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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해구 가주로 35 진해-부산 국도변에 위치한 청룡대의 각석은 240×140㎝ 크기의 자연 암석에 2줄로 ‘청룡대(靑龍臺)’ ‘치원낙(致遠樂)’이라 세로로 새겨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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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려 쓴 필체가 힘이 있고 세상을 달관한 듯 초연함이 내비친다 해 선생의 친필이라 믿는 이들이 많다.

    최근에는 후손들이 선생의 높은 학문과 덕을 기리기 위해 이곳에 ‘청룡대비’를 세웠다.



    △강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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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해구 비봉동에 자리한 강선대는 ‘웅천현 읍지’에 선생이 배를 타고 달빛을 감상하며 즐기던 곳이라고 전해지는 유적이다. 누대가 있었던 곳은 현재 군사시설이 들어서 있어서 당시의 자취를 찾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그 풍광과 정취가 그대로 느껴질 듯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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