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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추위에도 지조를 지키는 송죽(松竹)- 변종현(경남대 국어교육과 교수)

  • 기사입력 : 2017-02-10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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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부터 우리 선인들은 매화·난초·국화·대나무를 군자(君子)의 덕성을 지닌 사물로 좋아했다. 특히 날씨가 추운 겨울에는 소나무와 대나무를 바라보면서 변함없는 지조를 숭상하였다.

    고려말 원천석은 눈 맞아 휘어진 대나무가 푸른 빛을 띠고 있는 것을 보고 ‘세한고절(歲寒孤節)’은 대나무밖에 없다고 노래하였다.

    조선 중기 윤선도는 ‘오우가(五友歌)’에서 소나무는 눈과 서리가 내려도 푸르고, 대나무는 속은 비었으면서도 사계절 푸른 빛을 띠고 있어서 좋아한다고 하였다.

    이처럼 옛 사람들은 소나무와 대나무를 바라보며 사물을 인격화하여 그들의 덕성을 본받고자 하였다. 애국가 2절에도, “남산 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바람 서리 불변함은 우리 기상일세”라 노래하였다.

    조선 중기 정탁(鄭琢)은 <松竹吟(송죽음), 소나무와 대나무를 읊음)>이라는 시에서 다음과 같이 읊었다.



    松篁全正氣(송황전정기)

    솔과 대는 바른 기운 온전하여서

    終是物中賢(종시물중현)

    마침내는 사물 중에 현인이라네

    百遍風霜後(백편풍상후)

    수도 없이 바람 서리 겪고난 뒤에

    方知所守堅(방지소상수)

    바야흐로 견고함을 지킬 줄 알지

    기구와 승구에서는 소나무와 대나무의 덕을 기리고 있다. 소나무와 대나무는 바른 기운이 온전하여서 사물 중에 현인과 같은 존재라 하였다. 전구와 결구에서는 수도 없이 바람과 서리를 겪고 난 뒤에 바야흐로 견고함을 지킬 줄 알게 되었다고 하였다.

    우리들도 살아가면서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 온갖 풍상(風霜)을 겪게 된다. 사람마다 어려운 일을 겪고 난 뒤의 모습이 다를 수 있는데, 이 시에서 시인은 바른 기운을 온전하게 기르게 되면 바람과 서리도 이길 수 있고 견고한 뜻을 지켜낼 수도 있게 된다는 것이다.

    정탁은 나라가 어려울 때 솔과 대나무의 바른 기상을 가지고 나라를 구한 어진 재상이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좌찬성으로 왕을 의주까지 호종하였다. 그는 경전과 역사는 물론 천문·지리·병법에 이르기까지 정통하였다. 1594년에는 곽재우·김덕령 등 의병장을 천거하여 공을 세우게 했고, 이듬해 우의정이 되었다. 1597년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72세의 노령으로 스스로 전선에 나가서 군사들의 사기를 앙양시키려고 했으나, 선조가 연로함을 들어 만류하였다. 이해 3월에는 옥중의 이순신을 변호하여 죽음을 면하게 하였으니, 어려운 난국에 참으로 큰일을 잘 감당하였다.

    지난해는 우리 국민들이 어려운 일들을 혹독하게 겪었고, 아직 해결의 실마리는 잘 보이지 않는다. 이럴 때일수록 견고함을 지키는 송죽의 기상이 필요하고, 이 어려움을 잘 견디면 다시 바른 세상으로 자리 잡게 될 것이라 기대해 본다.

    변종현 (경남대 국어교육과 교수)

    ※소통마당에 실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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