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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5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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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부의 길] (1025) 제18화 푸른 기와지붕 사람들 ⑮

“차비 만원만 남기고 다 내놔”

  • 기사입력 : 2017-02-09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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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경숙이 그 그림을 산 것은 헌책을 사러 청계천에 나갔을 때였다. 잡다한 물건을 파는 노점 한쪽에 동양화 그림을 놓고 파는 늙은 사내가 있었다. 서경숙은 무심하게 지나쳐 헌책방으로 가려다가 강렬한 색채에 끌려 걸음을 멈췄다.

    “아저씨, 그림 팔아요?”

    그림 앞에서 졸고 있던 사내가 서경숙을 힐끗 쳐다보았다. 사내의 눈빛이 이상하게 섬뜩했다. 사내에게서 술냄새가 왈칵 풍겼다.

    “팔지.”

    “얼마예요?”

    “하나에 5만원.”

    “그럼 다섯 개니까 25만원이네요?”

    “20만원만 내. 학생 같으니까.”

    “학생이 20만원이 어디 있어요?”

    서경숙은 새침한 표정으로 눈을 흘기는 시늉을 했다.

    늙은 사내가 다시 서경숙을 쏘아보다가 코웃음을 쳤다.

    “네가 이 그림을 알아?”

    “잘 몰라요.”

    “그럼 왜 사려고 해?”

    “좋아서요.”

    사내가 그녀를 향해 히쭉 웃었다.

    “너 돈 얼마나 있냐? 가지고 있는 돈 다 내놔 봐.”

    “네?”

    “차비 만원만 남기고 다 내놔.”

    “하숙비 낼 거 13만5000원 있는데….”

    서경숙은 머뭇거리면서 지갑에서 돈을 꺼냈다. 그러자 그가 돈을 낚아채더니 만원만 돌려주었다.

    “하숙은 무슨… 친구네 집에서 자.”

    서경숙은 강탈을 당하듯이 12만5000원을 늙은 사내에게 주고 그림 다섯 점을 받았다. 오빠 서인석에게서 한 달 내내 잔소리를 들었으나 이상하게 그림이 마음을 끌었다. 갤러리를 오픈하면서 혹시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까 봐 한 폭을 표구하여 걸었던 것이다.

    “그래도 여기에 전시를 한 것은 그림이 뛰어나기 때문이 아니요?”

    “이 그림에 관심이 많으시네요.”

    “이 그림과 비슷한 화풍의 그림이 나에게 몇 점 있소. 한 번 보러 오겠소?”

    사내가 서경숙에게 명함을 내밀었다. 명함에는 답십리고미술상가 화상 백화당 대표 송인호라고 박혀 있었다.

    “한 번 찾아뵐게요.”

    서경숙도 명함을 건네주었다. 그는 칵테일 한 잔을 마시고 돌아갔다.

    ‘이 그림은 누가 그린 것일까?’

    서경숙은 그림을 그린 화가를 찾아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글:이수광 그림:김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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