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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시론] 나이 듦에 대하여- 박한규(대한법률구조공단 홍보실장)

  • 기사입력 : 2017-02-01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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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유년이다. 서기 2017년 1월 1일, 병신년 섣달 초나흗날에 성급하게 부정 출발했던 가짜 정유년 말고 진짜 정유년 말이다. 연말연시면 늘 겪는 혼란이 있으니 그건 이 땅의 나이 셈법이다. 태어나는 순간 한 살을 기본으로 깔고 해가 바뀌면 한 살을 더 먹는 우리식 셈법에 따라 연말에 태어난 아기가 한 달도 못 채운 채 해가 바뀌면 금세 두 살이 된다.

    사람은 언제부터 늙기 시작할까? 태어나는 순간부터 늙어 간다는 의견도 있지만 어려서는 누구나 나이를 먹고 싶어 안달한다. 사내아이들은 제 다리 크기만 한 아버지의 구두를 신고 뒤뚱거리다 넘어지기 일쑤다. 여자아이들은 어설프게 엄마의 립스틱을 바르고는 흐뭇해한다. 엉덩이에 뿔이 돋으면 사내들은 담배와 술잔을 들기 시작하고 여자아이들은 교복 치마가 짧아지고 조심스럽게 눈 화장을 시작한다.

    그러다 어느 날 불현듯 자신이 과거 꼰대로 치부했던 그 나이가 되었음을 알아채는 순간 덜컥 나이의 무게를 느끼게 된다. ‘내가 어느새 이렇게 나이를 먹었나?’라든지 ‘내가 이러려고 나이를 먹었나?’ 하는 자괴감에 빠지는 순간이 온다. 그래서 어느 철학자는 “나이 먹기 싫어지는 순간부터 늙어 간다”라고 정의했다. 그런데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누군가가 지하철에서 자리를 양보하려 드는 날, 점원 아가씨가 어르신이라고 부르는 날, 어린이가 할아버지라 부르며 길을 묻는 날들이 나이 듦에 대한 본능적 거부감에 아주 예리한 일격을 가한다.

    최근 나이를 둘러싼 두 개의 화두로 소란스럽다. 투표권 연령 조정과 선출직 공무원 연령 제한. 전자는 상당히 심각하게 거론되고 있어 어떤 식으로든 결말이 나지 싶고 후자는 일과성으로 흐를 가능성이 커 보이지만 여하튼 한 살 더 먹는 이즈음 각자의 소회는 다양하지 싶다.

    투표권은 공민권이다. 시민의 권리라는 뜻인데 이 권리라고 하는 것은 늘 의무와 짝을 이뤄 플로어를 돌아야 하는 속칭 ‘블루스 곡’이다. 권리 없는 의무는 노예 상태를 의미한다. 나이가 적다는 이유만으로 노예 상태를 강요하는 것은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선출직 공무원에 대한 연령제한은 투표권과는 달리 하한선이 아니라 상한선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 발상의 배경이 나이 듦에 대한 저주나 비난이 아닌 최근 우리 사회를 뿌리째 뒤흔들고 있는 듣도 보도 못한 어처구니없는 사건에 대한 반작용이라는 걸 모르는 바 아니다.

    지구상 모든 개체의 능력은 발달기를 거쳐 쇠퇴했다가 소멸한다. 돌아눕지도 못하던 아기가 기다가 걷고 어느덧 달리게 된다. 말 한마디 못하던 인간이 죽음과 영원을 궁리하는 존재가 된다. 다만 육체와 정신의 성장과 쇠퇴는 사람마다 차이가 있거늘 ‘태어난 지 얼마나 되었느냐’를 기준으로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일률적으로 정하는 것은 그리 이성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나잇값도 못하는 나이 든 얼치기나 혼자만 1년에 두 살씩 나이를 먹은 듯 나대는 나이 덜 든 얼치기가 문제이지 대부분의 인간들은 나이에 맞게 생각하고 행동한다. 빈대 몇 마리 잡자고 초가삼간을 태울 수는 없다.

    누군가는 이렇게 외쳤다. “젊음이 노력의 결과가 아니듯 늙음이 잘못은 아니다. 너희는 늙어 보았느냐? 나는 젊어 보았다”라고. 세상을 어지럽히는 인간들에게서 발견되는 뚜렷한 공통점은 유불리(有不利)에 따라 선과 악을 구분하는 아주 왜곡된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부디 이번 논의만은 냉철하게 건설적으로 전개되기를 기원한다. 이래저래 한 살 더 먹는 것이 부담스러운 정유년이다.

    박한규 (대한법률구조공단 홍보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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