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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며] 비열하다, 문화계 블랙리스트- 서영훈(부국장대우 문화체육부장)

  • 기사입력 : 2017-01-25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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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시인은 “내 이름이 없으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으로 조마조마하게 봤다”고 했다. 어느 화가는 “내 이름이 있어 자랑스럽다”고 했다. 자신의 이름이 없는 것을 확인한 어느 가수는 “송구스럽다. 나의 이름을 넣어라”고 했다. 또 어느 소설가는 “내 이름이 빠져 있어서 극심한 소외감과 억울함을 가지고 있다. 2년간의 암 투병으로 병원에 묶여 있었으므로 명단에서 누락되는 것이 당연지사인데도, 무슨 정치모리배들과 한패 취급이라도 받는 듯한 기분을 떨쳐버릴 수 없다”고 했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를 두고 문화예술인들이 소셜미디어 등에 남긴 말이다.

    ‘세월호 특별법 정부 시행령안 폐기 촉구 선언’에 서명했다, 세월호 시국선언에 참여했다, 야권 대선 후보 지지선언에 동참했다, 서울시장 선거 야권 후보 지지선언을 했다는 등 블랙리스트에 오른 이유도 갖가지다. 맨부커상을 받은 작가 한강은 5·18민주화운동을 다룬 소설을 썼다는 게 이유였다. 경남 문화예술계 수백 명의 이름도 들어 있다.

    이 정부는 이렇게 1만명에 가까운 문화예술인들의 이름을 무슨 범죄인 목록처럼 만들어 ‘관리’한 정황이 특검 수사에서 속속 확인되고 있다.

    리스트를 만드는 목적은 뻔하다. 잘 봐주기 위해서, 아니면 괴롭히기 위해서, 둘 중 하나다. 전자에는 ‘화이트’, 후자에는 ‘블랙’이라는 형용사가 붙는다. 이번 리스트에는 블랙이 붙었다.

    리스트를 작성한 시점, 리스트에 오른 인사들의 면면, 이후 이들에게 주어진 불이익 등에서 블랙리스트라 이름붙여졌다.

    지난해 10월 국회 국정조사에서 야당 의원에 의해 폭로됐던 블랙리스트는 세월호 참사 한 달 뒤 작성되기 시작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참사의 진상을 규명하고, 그 책임자를 처벌하라는 국민들의 요구가 비등하던 시기였다.

    세월호 관련 서명을 한 문화예술인들이 권력의 눈에 곱게 보였을 리가 없다. 이들을 옥죄는 수단이 필요했다. 그렇게 해서 찾은 것이 문화계 블랙리스트 아닌가.

    리스트에 올리고는 지원금을 끊었다. 서명 등에 대한 보복이자 이들의 활동을 억제해 비우호적인 여론을 차단하기 위한 의도가 보인다.

    누군가는 “리스트 만들어 관리하는 게 뭐가 잘못됐느냐” “좌파한테 왜 국민들이 낸 세금 주느냐”라고 했다.

    대한민국 헌법은 학문과 예술의 자유를 보장하고, 또 예술가의 권리를 법으로써 보호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법률이 아니라 자의로 만든 리스트에 따라 일부 문화예술인들에게 적대감을 드러내며 헌법정신을 거스르고 있다. 그렇다고 정부 지원금이 권력자 그들의 주머니에서 나오는 돈도 아니다. 모두 세금이다. 세금을 낸 국민들은 지금의 정부를 지지하기도 하고 비판하기도 한다. 왜 세금이 정부를 편드는 이들, 권력자를 옹호하는 문화예술인들에게만 주어져야 하나.

    자신들에게 비판적이라는 따위의 이유를 들어 불이익을 주는 것은 권력을 쥔 자들의 전횡일 뿐이다. 지금은 감옥에 갇힌 대통령 비서실장이나 주무 장관이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블랙리스트를 본 적도 없다”고 딱 잡아뗀 이유는 그만큼 떳떳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참으로 옹졸한 정부가, 비열한 발상으로 내놓은 것이 문화계 블랙리스트다.

    서영훈 (부국장대우 문화체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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