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bile  |   facebook  |   twitter  |   newsstand  |   PDF신문
2017년 03월 27일 (월)
전체메뉴

[살롱] 일상탐독 (38) 오은/계절감

  • 기사입력 : 2017-01-16 14:30:07
  •   
  •  
     택자가 우리 집에 들락거리기 시작한 것은
     제가 고등학교 2학년 때의 일입니다.
     어느 날 오후 여름방학 보충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웬 늙은 아낙 하나가 챙이 커다란 모자를 쓰고
     집 마당에 쪼그리고 앉아 풀을 뽑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놀란 제가 토끼눈을 하고 쳐다봤더니
     택자는 이미 다 알고 있다는 듯
     '딸래민가베?'하고 하얀 이를 드러내며 씨익 웃지 않겠습니까.
     
     10년도 더 전의 일이니
     택자도 아직은 완연히 할머니 태가 났다고 보긴 어렵겠습니다만,
     어쨌거나 여고생인 제 눈에 택자는 시골과 어울리지 않게 고운 화장에
     자잘한 꽃무늬 몸빼를 입고 하루 종일 이곳저곳을 쏘다니는,
     한마디로 어딘가 기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여자였습니다.
     
     택자 이야기를 하자면
     먼저 택자에 대해 일러둬야 할 것들이 몇 가지 있습니다.
     
     택자는 우리 마을 어귀에 다 쓰러져가는 집에 살았습니다.
     '다 쓰러져간다'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것이,
     실제로 그 집은 대문도 없고, 지붕은 반쯤 무너져있고,
     불빛이라고는 빨랫줄 가운데 걸린 백열등 하나가 전부인 집이었습니다.
     택자는 그 소굴 같은 집에서 약간 머리가 모자란 남동생을 데리고
     하루하루 날품을 팔아 먹고산다고 들었습니다.
     
     저는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까지 아버지 차를 타고 등교하는 길에
     마흔이 넘은 택자의 남동생이 새벽부터 논밭을 쏘다니다가
     택자의 손에 이끌려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종종 보았습니다.
     
     늙은 누나에게 옷자락이 잡혀 주춤주춤 걸음을 옮기면서도
     쉬지 않고 허공에 대고 뭐라고 중얼대는 늙은 남자의 모습은
     어린 제 눈엔 상당히 기이하고 또 상식 밖의 풍경이었다고나 할까요.
     그런 남동생을 건사하면서
     사시사철 남의 밭일을 해주고 삯을 받아 연명해야 하는 삶.
     바로 그것이 택자가 당면한 상황이었습니다.

    메인이미지

     택자가 우리 집에 들락거리게 된 것도 그 때문이었습니다.
     택자는 여름철만 되면 아버지가 애지중지하는,
     파란 잔디가 깔린 우리 집 정원에 쪼그리고 앉아
     2~3시간씩 풀을 뽑아주고 삯을 받아갔습니다.
     저는 택자의 조카뻘도 되지 않을 젊은 아버지가
     지갑에서 지폐를 꺼내어 택자의 두 손에 쥐어주는 것을 가끔 보았습니다.
     때문에 택자가 땡볕에 앉아 풀을 뽑고 있으면
     오렌지 주스에 얼음을 동동 띄어 내다주는 것이 어머니의 일과였습니다.
     그렇게 매년 초여름에서 늦여름까지,
     택자가 있는 마당은 우리 집의 흔한 풍경이 되곤 했습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여름이라는 기간 동안
     저는 택자가 상당히 분별 있는 여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식구들이 오가고 손님들이 오가도 아는 체 하지 않았고
     묵묵히 면벽 수행하는 사람처럼 풀만 뽑았습니다.
     실제로 그녀가 지나간 자리엔 잡풀이라곤 없이 깔끔했습니다.
     뭔가를 보거나 들어도, 그것을 안으로 삭히면 삭혔지,
     밖으로 물어다 나르지 않았습니다.
     
     그런 자조적 엄격함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가끔 저는 풀을 뽑느라 이리저리 몸을 뒤채는 택자의 거동에서,
     석류나무 그늘 아래 얼핏얼핏 모습을 드러내는 택자의 앙다문 입에서,
     어떤 귀부인의 아우라를 느꼈습니다.
     아시다시피 택자는 '고귀'나 '우아'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고 있는데 말입니다.
     왜 택자에게서는 근본을 짐작하기 어려운, 알 수 없는 분위기가 풍겨나는 것일까.
     그 비밀이 풀린 건 제가 대학을 간 뒤의 일이었습니다.
     
     여름방학을 맞아 집으로 돌아온 여름날 밤,
     저는 부모님으로부터 아주 기이한 이야기를 하나 듣게 됩니다.
     택자가 마을 할머니들과 드잡이를 한 이야기였습니다.
     
     그 해 봄철 마을에 행사를 하나 치르게 되었는데,
     이를 두고 택자의 의견과 마을 할머니 몇 분의 의견이 갈렸던 겁니다.
     의견의 차이는 감정의 온도차를 불러왔고,
     결국은 늙은 여자들끼리 손찌검까지 하게 되었다나요.
     인자하고 정이 넘치는 촌 할머니들 사이에서 손찌검이라니요.
     저는 어리둥절했습니다.
     
     현장을 목격한 어머니의 전언으로는,
     택자가 할머니들에게 일방적으로 당하는 격이었다고 했습니다.
     여러 할머니가 달려들어 택자를 바닥에 넘어뜨리고
     머리칼을 잡아 흔들고 등을 후려쳤다나요.
     어머니는 이야기의 말미에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그래도 눈도 깜짝 안 하더라.'
     
     네. 택자는 흠씬 두들겨 맞은 뒤에도
     눈도 깜짝하지 않고 자리를 툭툭 털고 일어나
     귀부인처럼 꼿꼿한 걸음으로 집으로 돌아갔다고 합니다.
     그게 바로 제가 알아보았던,
     택자가 가진 '일말의 자존심'이었지요.
     아마 그날 택자는 이렇게 생각하며 잠들었을 겁니다.
     '나보다 못 배운 할멈들이 뭘 안다고.'
     반면 할머니들은 이렇게 생각하며 잠이 들었을 겁니다.
     '날품이나 파는 병자가 뭘 안다고.'
     
     그 날의 사건은 택자의 태생적 고결함이 불러온 불협화음이라는 것을,
     부연설명에 나선 아버지의 이야기를 통해 저는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사실 택자는 우리 마을에서 꽤나 잘 살던 집 고명딸이었습니다.
     그 시절엔 드물게, 마산에 유학까지 가 여고를 나온 고학력자였습니다.
     택자는 유학파에다가, 얼굴도 곱상하고 몸가짐도 참한 규수로 자라났습니다.
     
     하지만 택자에게는 말할 수 없는 비밀이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간질을 앓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아리따운, 그러나 비운의 여인이었던 택자는
     느닷없이 바닥에 쓰러져 거품을 물고 발작을 하곤 했습니다.
     그런 병을 앓는 것도 불행 중의 불행이었는데,
     택자를 더 큰 불행으로 빠뜨린 건 이 사실을 숨기고 시집을 간 것이었습니다.
     이웃마을에 꽤 명망도 있고 재산도 있는 집 큰아들에게 시집을 갔지만
     딸을 하나 낳고는 소박을 맞았습니다.
     간질을 앓고 있다는 걸 어떻게 숨길 수가 있었겠어요.
     
     오갈 곳 없는 택자는 친정으로 돌아와야 했지만,
     설상가상으로 친정마저 기울기 시작했습니다.
     게다가 바로 밑의 남동생은 사고로 머리를 다쳐
     사람 구실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고 말입니다.
     그 모든 것은, 택자의 몫이 되었습니다.
     
     택자는 지금도 마을 어귀에 살고 있습니다.
     머리가 모자란 남동생은 몇 년 전 세상을 떠났습니다.
     겨우 백열등 하나 불을 밝힌 그 소굴 같은 집에,
     이제는 택자 혼자 소소하게 살고 있습니다.
     
     택자의 전 남편은 새 부인을 얻어 새 장가를 들었고,
     택자가 낳은 딸은 새 부인의 손에 커야 했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장성한 딸이 생모인 택자를 찾아
     종종 왕래를 하고 지낸다고 들었습니다.
     게다가 택자가 지난해부턴 일요일마다 교회에 예배를 드리러 간다고,
     곱게 화장을 하고 성경책을 가슴에 품은 택자를
     몇 번 차에 태워 교회까지 데려다준 적이 있다고,
     부모님은 종종 택자의 소식을 제게 전합니다.
     
     요즘엔 여름철에도 우리 집 마당에서 택자를 보지 못합니다.
     아버지는 몇 년 전부터 인부를 데려다
     기계를 써서 잔디를 손질합니다.
     택자도 남동생 입을 하나 덜고 나니
     전처럼 일을 많이 하지 않아도 되는 모양입니다.
     
     이렇게 추운 날이면 저는 가끔 외투를 여미고
     가만히 앉아 택자의 삶에 대해 생각해 보곤 합니다.
     택자가 겪어야 했던 것들
     택자가 선택했던 것들
     택자가 거부할 수 없었던 것들
     택자가 지켜내고자 했던 것들, 그런 것들을 말입니다.
     
     그러고 있다보면,
     그런 생각에 푹 빠져 있다보면,
     저는 꼭 고등학교 2학년 여름과 다름없이
     택자와 함께 여름을 나는 기분에 빠져들곤 합니다.
     택자는 풀을 뽑고, 저는 교복을 입고 택자 옆을 스쳐갑니다.
     택자는 택자만의 삶을 가만히 견디고
     저는 저만의 삶을 가만히 견딥니다.
     저는 이상하게 그것을 상상하는 것이 싫지가 않습니다.
     택자는 지난하고 힘겨웠던 그 여름들을 다 잊었는지도 모르지만요.
     
     그래도 상관 없습니다.
     미련이 많은 사람은 어떤 계절을
     남보다 조금 더 오래 살기도 하니까 말입니다.
     
    메인이미지

     '귀퉁이가 좋았다
     기대고 있으면

     기다리는 자가 되어 있었다
     
     바람이 불어왔다가 물러갔다
     뭔가가 사라진 것 같아
     주머니를 더듬었다
     
     개가 한 마리 다가오고 있었다
     처음 보는 개
     개도 나를 처음 봤을 것이다
     
     내가 개를 스쳤다
     개가 나를 훑었다
     
     낯이 익고 있다
     냄새가 익고 있다
     
     가을은 정작 설익었는데
     가슴에 영근 것이 있어
     나도 모르게 뒤돌아보았다
     
     땀이 흐르는데도
     개는 가죽을 벗지 않고 있었다
     어쩔 수 없는 일
     
     땀이 흐르는데도
     나는 외투를 벗지 않고 있었다
     어찌하지 않은 일
     
     우리는 아직 껍질 안에 있다
     
     뭔가 잡히는 것이 있어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었다
     
     꼬깃꼬깃 접힌 영수증을 펴보니
     다행히 여름이었다
     
     미련이 많은 사람은
     어떤 계절을
     남보다 조금 더 오래 산다'
     
     '계절감' - 문학과지성사/오은/'유에서 유' 11페이지
      김유경 기자 bora@knnews.co.kr
  • 김유경 기자의 다른기사 검색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