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짓는 철학자’ 윤구병(73) 선생은 전라남도 함평에서 아홉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래서 이름이 ‘구(9)병’이다. 6·25전쟁 때 여섯 명의 형이 숨졌다. 숱한 방황과 가출 끝에 서울대 철학과에 입학해 대학원까지 마쳤다. 한국브리태니커를 거쳐 한창기 선생과 함께 잡지 ‘뿌리깊은 나무’를 펴내면서 첫 번째 편집장을 맡았다.
1981년 충북대 철학과 교수가 된 그는 전라북도 부안군 변산면에 공동체학교 터를 마련하고는 이듬해인 1996년 교수직을 벗어 던지고 농사꾼이 됐다. 그는 그해 1월 1일부터 2001년 12월 31일까지 6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일기를 썼는데, 제본한 책으로 무려 25권이 됐다.
‘윤구병 일기 1966’은 책 제목처럼, 전체 6년치 일기 가운데 1996년 일기를 묶은 것이다.
이 일기책은 ‘윤구병의 변산일기’ 혹은 ‘윤구병의 농사일기’로 생각될 수도 있지만, 행간을 읽다 보면 어느새 ‘윤구병의 철학일기’가 된다.
여기에는 심화되는 신자유주의에 시달리고 찌들리며 살다가 변산으로 모여든 숱한 사람들과 함께 보낸 나날들에 대한 실존적 철학과 사색이 오롯이 담겨 있고, 또한 어떤 사회가 좋은 사회인가 하는 저자의 고민과 실천의 의지가 녹아들어 있다.
윤구병 지음, 천년의상상 펴냄, 3만5000원. 서영훈 기자 float21@kn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