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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0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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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속으로] 경남도 자원봉사왕 장동렬 모범운전자회 양산지회장

운전대 대신 신호기 잡는 ‘봉사 중독’ 택시기사

  • 기사입력 : 2017-01-05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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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통정리하는 봉사! 중독인 것 같아요. 특별한 일로 하루 빠지면 종일 뭐가 허전하고 놓친 기분이 듭니다.”

    칼바람이 부는 출근시간대 영하의 날씨에도 교차로 신호대에서 수신호를 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 양산모범운전자회 장동렬(56)회장이다.

    양산에서 택시를 운전하는 장 회장에게는 아침저녁 출퇴근 시간이 가장 중요하다. 하루 수입 상당 부분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당연히 가장 열심히 일해야 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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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동렬 모범운전자회 양산지회장이 출근시간 교차로에서 신호등 제어기를 조작하고 있다.
    그러나 장 회장은 15년 넘게 이 시간에 운전대를 제대로 잡지 못하고 있다. 운전대 대신 도로 위 신호등 제어기를 붙잡고 교통체증과 씨름해야 하기 때문이다. 15년 전 모범운전자회에 몸담은 이후 그에게 일상이 된 장면이다. 특히 2009년부터는 (사)전국모범운전자회 양산지회장이란 중책까지 맡으면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교통이 복잡한 출퇴근 시간대에 거리로 나서고 있다.

    운전자회 신입 회원에 대한 교육도 당연히 장 회장 몫이다. 여기다 양산시노인복지관 어르신들 말벗도 돼야 한다. 매달 한번씩 반찬을 만들어 홀몸 어르신들에게 전하는 것도 장 회장과 모범운전자회원들이 하는 봉사 중 하나다. 여기다 야간에는 청소년 안전 귀가를 위한 방범 활동까지 하고 있다.

    이러한 봉사가 인정돼 장 회장은 지난 8월 경남도 자원봉사왕으로 뽑혔다. 15년 동안 무려 3100시간 이상 봉사활동을 펼쳤다. 장 회장은 “힘들고 어려운 긴 시간의 봉사를 함께 해 준 회원들의 덕분이다”며 회원들과 공을 나누고 기쁨을 함께했다.

    “사실 택시 운전사들은 직장인 출퇴근 시간이 가장 중요하죠. 그때가 가장 돈을 많이 벌 시간이거든요. 한두 시간 운전대를 놓아버리면 차이가 장난이 아니죠. 그래서 회원들이 더 고맙게 생각됩니다. 봉사활동으로 이익을 기대할 순 없지만 다른 보람이라도 더 많이 느낄 수 있도록 돕고 싶은데 현실이 그리 녹록지 않네요.” 장 회장은 회원들에게 미안함을 전했다.

    현재 양산지역에서 활동하는 모범운전자회원들은 105명. 한때 130여명까지 있었지만 몇 해 전부터 조금씩 줄었다. 먹고살기 힘들다 보니 봉사에 대한 부담이 커졌기 때문이다. 봉사가 주는 보람만으론 힘든 현실을 견뎌내기 어려울 때도 많다.

    “경기가 어려울수록 택시 승객이 줄어들죠. 흔히 장바구니 물가에서 경기가 좋은지 나쁜지를 알아보는데 그것보다 택시를 살펴보는 게 더 정확하고 빨라요. 이미 10년 가까이 불황이 이어지고 있으니 우리 택시업계가 얼마나 어렵겠어요. 그런 상황에서 회원들에게 봉사를 부탁하기가 정말 쉽지 않습니다.”

    정부나 지자체에서 받는 지원이라고는 1년에 한 번, 옷 한 벌 값이 전부다. 회원이 모두 모여 식사 한 끼 하기도 쉽지 않다. 회원들이 내는 한 달 회비 2만원으로 조직을 이끌어간다는 게 여간 힘든 게 아니란다. 가장으로서 체면 세우기도 어렵다. 지자체별로 지원 수준이 다르다 보니 다른 지역 모범운전자회와 비교까지 하게 된다. 장 회장은 “양산시 등의 지원 부족이 왠지 자신의 능력 부족 탓은 아닌가 싶은 생각마저 든다”고 말했다.

    “밖에서 시간 쓰고 돈 쓰며 헛짓한다고 집사람의 불만이 컸습니다. 집사람 입장 충분히 이해합니다. 당연히 서운하겠죠. 그나마 저는 봉사하면서 보람이라도 느끼지만 살림을 꾸려가는 처지에서는 얼마나 힘들겠어요. 현재 맞벌이를 하는데 그거 아니면 생활이 어렵습니다. 저만 그런 게 아니라 모든 회원이 마찬가지일 거에요.”

    회장이라지만 딱히 활동비도 없다. 나가서 사람을 만나거나 행사에 참여하거나 모든 비용은 본인 부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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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전적으로 힘든 것보다 더 힘든 게 있다. 바로 일부 시민이 보여주는 반응이다. 출퇴근길 신호를 제어하다 보면 지나가던 차에서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욕을 하기도 한다. 신호제어 때문에 차가 더 밀린다며 자동차 창문을 열고 도로에 침까지 뱉는 운전자도 있다. 정말 힘든 순간은 바로 그런 경우를 마주할 때다.

    “지원이 적고, 날씨가 추운 것도 힘들지만 정말 힘든 건 바로 그런 분들의 반응 때문입니다. 우리는 차량 흐름을 전체적으로 보고 많이 밀리는 곳은 신호를 길게 주고, 적게 밀리는 곳은 짧게 주는데 운전하는 분들은 이해하려 하지 않으시죠. 겨울철 새벽 칼바람에 귀가 떨어져 나갈 것 같은 고통을 참으며 일하는데 그런 반응을 마주하게 되면 사실 이 일을 왜 하고 있나 하고 한순간 자리를 뜨고 싶을 때도 있어요.”

    장 회장이 매서운 겨울바람과 정면으로 마주하고 때론 따가운 시민 눈총도 참아내야 하면서도 ‘봉사’를 손에 놓지 못하는 이유는 딱 하나다. 시민 재산과 생명을 보호하고 자신의 희생으로 많은 사람이 편해질 수 있다는 자긍심 때문이다. 그리고 봉사에서 느끼는 보람이 15년 동안 3100시간 이상 그를 묵묵히 봉사할 수 있도록 인도했다.

    “그래도 길에서 봉사하다 보면 가끔 ‘고맙다, 힘내라’ 인사해주는 분들도 만나게 됩니다. 그분들 말씀 한마디가 정말 큰 힘이 되죠. 아마 여름에는 폭염, 겨울에는 칼바람과 싸우면서 회원들이 이 일을 계속하는 이유가 아닐까 싶어요.”

    그는 “큰 욕심 없이, 오늘처럼 사고 없이, 시민과 지역사회에 작은 보탬이 됐으면 하는 마음이지만 그래도 버릴 수 없는 욕심은 있다”며 “바로 봉사활동 중에 다치는 회원들에 대한 처우다”고 말했다.

    “교통정리를 하다 보면 가끔 사고를 당하는 경우가 생겨요. 심지어 목숨을 잃기도 하고요. 그런데 그런 사고에 대한 보호 장치가 없어요. 마음 같아선 봉사 도중 생명을 잃거나 다치면 의사상자로 지정해줬으면 좋겠는데…. 무엇이 됐건 사고가 났을 때 법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는 길이 좀 생겼으면 합니다.”

    동료들이 없었더라면 장 회장의 봉사도 이처럼 길게 이어지기 힘들었을 것이다. 힘들 때 서로 다독이고 의지하며 뚜벅뚜벅 걸어온 길이 ‘자원봉사왕’이란 선물까지 준 것. 그래서 장 회장은 더 많은 사람이 동참해 서로에게 든든하게 바람막이가 돼 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교통정리 봉사,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분명히 사회에 보탬이 되는 일입니다. 충분히 자긍심 가져도 되는 가치 있는 일이라고 믿습니다. 회원 모두 저와 함께해 줘서 고맙고 앞으로도 늘 같이하면 좋겠습니다. 문은 항상 열려 있으니 신입 회원들도 늘어나면 더 좋지요. 회원 여러분! 우리 같이 행복한 마음으로 봉사합시다. 눈 속에 칼바람이 불어도 저는 내일 아침 출근시간에는 원활한 교통소통을 돕기 위해 교차로에서 신호기를 잡고 있거나 수신호를 하고 있을 것입니다.”

    글·사진= 김석호 기자 shkim18@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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