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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순자 가곡전수관장의 아름다운 우리 노래, 가곡(歌曲) (2) 가곡의 전성시대

신분 떠나 다함께 어울리며 음악 열정 예술로 승화

  • 기사입력 : 2017-01-03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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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름다운 우리 노래, 가곡’에 대해 알아보았던 지난호에 이어 오늘은 ‘가곡의 전성시대’였던 18세기 후반 조선시대의 풍류방 문화에 대해서 알아본다.

    가곡을 즐기던 풍류방 문화를 살펴보면 음악이라는 예술 장르를 매개로 해 신분 간의 소통, 성별, 나이를 초월한 개인 간의 소통이 어떻게 이뤄졌는지 잘 보여준다.

    근대 이후 한국사회는 서구사회의 문화를 쫓아가기에 바빴는데, 풍류방 문화는 프랑스대혁명과 근대 문학·예술의 산실이었던 17~18세기 살롱문화 부럽지 않은 우리의 전통 소통문화이다.

    풍류방 문화의 전성시대, 즉 가곡의 전성시대라고 할 수 있는 18세기 조선후기에는 많은 전문 음악인들과 동호인들이 지위 고하와 신분의 차별에도 불구하고 함께 모임을 만들어 시를 짓고, 가곡을 부르고, 악기를 연주하며 서로의 사상과 이상을 함께 예술로 승화시켰다.

    학창시절 국어시간에 들어 봄직한 조선시대 3대 가집인 ‘청구영언’, ‘해동가요’, ‘가곡원류’를 지은 김천택, 김수장, 안민영 등이 가곡의 전성시대를 이끈 주인공이다. 이번은 가곡의 전성시대를 이끈 이 세 분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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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84년, 김홍도 作 ‘단원도’ 복사본.
    ▲조선후기 음악인의 예술적 열정과 풍류방 문화

    ① 김천택과 아양지계(峨洋之契)

    조선후기 음악인을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거론되는 인물이 현전하는 가장 오래된 가집인 ‘청구영언(靑丘永言·1728)’을 편찬한 남파 김천택이다.

    김천책은 중인 가객으로 노래를 생업으로 삼은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노래를 아주 좋아하고 잘 부르는 선가자(善歌者)였다. 그의 직업은 포도청 포교였다. 포도청은 오늘날 경찰청에 해당한다. 포교는 ‘포도부장’이라고도 하는데, 조선시대 포도청에는 4명의 포도부장이 있었고, 그 아래 직책에 있는 포졸만도 90여명이나 될 정도로 만만하지 않은 관직이었다.

    김천택은 비록 중인 가객이며 포교였지만 인물됨은 속된 기가 없이 맑고 바른 사람이었다고 한다. 또한 ‘시경’ 300편을 늙어서까지 외울 정도로 학문적 소양도 깊었다고 한다.

    김천택의 가곡에 대한 애호와 열정을 대표하는 사례가 그 유명한 ‘아양지계(峨洋之契)’이다.

    ‘아양지계’는 백아(伯牙)와 종자기(鍾子期)의 고사에서 유래한 말로, 백아는 거문고를 잘 탔고 종자기는 잘 들을 줄 알았다고 한다. 백아가 거문고를 탈 때 뜻이 높은 산에 있으면 종자기가 “아름답구나! 높고 높기(峨峨)가 태산 같도다” 하였고, 뜻이 흐르는 물에 있으면, “아름답도다! 넓고 넓기 (洋洋)가 강과 바다 같도다”라고 한데서 ‘아(峨)’와 ‘양(洋)’을 취해 ‘아양지계(峨洋之契)’라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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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대미상, 김홍도 作 ‘군현도’.


    이 고사는 대가의 예술세계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공유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따라서 ‘아양지계’는 높은 경지의 예술가와 그의 예술세계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공유할 수 있는 인물 간의 만남, 즉 대가들의 만남을 의미하는 말이라 할 수 있다.

    김천택은 당시 장악원 악사였던 전악사 (全樂士)와 아양지계를 맺고 자주 연주회를 가졌다. 정내교(鄭來僑)라는 사람은 ‘청구영언’의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백함(김천택의 호)은 노래를 잘 부를 뿐만 아니라 스스로 신성(新聲)을 만들었고, 또 전악사와 더불어 아양지계를 맺었다. 전악사가 거문고를 연주하고 백함이 이에 맞추어 노래하면, 그 소리가 맑아서 가히 귀신을 감동시킬 만큼 밝고 화기로움이 드러났다. 두 사람의 기예는 한 시대의 묘절(妙絶)이라 일컬을 만하다. 내가 일찍이 우울하고 병이 들어 쓸쓸함을 달랠 즐거움이 없을 때면, 백함이 반드시 전악사와 찾아와서 이 작품들을 취하여 노래를 불러 나로 하여금 한 번 듣고 그 아득하고 우울한 심정을 씻어내도록 하였다.”

    김천택과 전악사가 아양지계를 맺었다는 것은 그들이 서로의 예술세계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공유했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는 곧 두 사람 모두 진정한 음악인으로서 자신들의 세계를 완벽하게 구축하고 있었음은 물론, 자신들이 향유했던 음악을 진정으로 소중하게 생각했음을 의미한다.

    아양지계를 맺은 노래의 명인 김천택과 거문고 명인 전악사뿐만 아니라 정내교 또한 그들의 노래를 감상하고 공유할 줄 알았다는 점에서 선가(善歌)와 선금(線琴), 선청(善聽) 모두 아양지계의 일원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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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15년, 김득신 作 ‘사대부행락도’.


    ② 김수장과 풍류방(老歌齋)

    가객 김수장은 호가 노가재(老歌齋)이며, 병조(오늘날의 국방부) 서리로 김천택과 같은 중인 출신이다. 그는 김천택 시대의 선가자들 모습을 망망대해로, 자기 시대의 노래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실개천에 비유하며 자기 시대를 한탄했다. 즉 명가가 되기 위해 쉼없는 연습이 필요하다는 점을 역설한 것이다. 이는 곧 가곡을 대하는 자신의 태도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가곡에 대한 열정을 읽을 수 있다. 이런 태도를 읽을 수 있는 작품이 아래 가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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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14년, 작자 미상 ‘수갑계첩’.


    성음(聲音)은 각각이니 절강고저(節腔高低) 잃지 말고

    오음(五音)은 채 몰라도 율려(律呂)를 찾아스라

    진실한 묘리를 모르면 이름 서기 쉬우랴



    또한 그는 많은 예술인들과 교유했으며, 그 결과를 ‘해동가요’라는 가집에 남겼다. 애초 ‘해동가요’는 ‘관덕재(觀德齋)’에서 편찬했으나, 첫 가집에 만족하지 않고 만년(71세)에 한양의 화개동(광화문에서 안국동 사이)에 ‘노가재(老歌齋)’를 짓고 여러 가객들과 교유하며 30여 년을 수정 보완하여 개정판 ‘해동가요’를 편찬했다.

    여기에서 주목되는 것은 ‘관덕재’와 ‘노가재’이다. 이곳은 단순한 서재나 부속건물이 아니라 다양한 음악인들과 교유하며 가곡을 즐겼던 풍류방이었다는 점이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개인 스튜디오’라고 할 수 있다.

    김수장은 만년의 어려운 살림에도 가곡에 대한 열정만으로 두 개의 ‘풍류방’을 마련하고 그곳에서 적어도 두 개 이상의 가집을 편찬할 정도로 가곡에 대한 열정이 깊었다. 가집에 대한 열정은 다음 작품에 나타난다.

    이제는 다 늙거다 무스 것을 내 알든가

    울 아래 황국(黃菊)이요 안상(案上)의 현금(玄琴)이로다

    이중에 일권가보(一卷歌譜)는 틈없은가 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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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파 김천택이 1728년 편찬한 현전하는 가장 오래된 가집 ‘청구영언’ 복사본.


    ③ 안민영과 승평계(昇平契)

    풍류방과 관련해 또 하나 주목되는 것은 안민영의 승평계(昇平契)이다. 안민영은 박효관의 제자로, 박효관과 안민영은 조선시대 3대 가곡 가집의 하나인 ‘가곡원류’를 편찬했다.

    승평계는 19세기 후반 박효관과 안민영을 중심으로 풍류객 그룹, 가객 그룹, 기악연주자 그룹, 여항시인 그룹, 기녀 그룹, 기악반주자 그룹 등이 인왕산(仁王山)의 필운대(弼雲臺) 일원(운현궁, 필운대, 삼계동, 공덕리 등)을 무대로 풍류판을 벌였던 가곡풍류회이다. 박효관은 맹주이며 안민영은 실질적인 주도인물이었다. 이들은 흥선대원군 이하응과 그의 장남 이재면의 후원 아래 활동했으며, 계축년(癸丑年, 1873) 5월에 안민영이 승평계를 연 것을 기념해 ‘승평곡(昇平曲)’이라는 가집을 만들었다. 승평계는 안민영이 고종 4년(1867)에 대원군을 만난 것을 계기로 결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안민영은 대원군을 자신의 예술세계를 알아주는 지기(知己)로 여기고 섬겼다고 한다.

    승평계의 구성원들은 당대 음악 각 분야의 최고 명인들이 망라돼 있으며, 최고 권력자인 대원군과 그의 장남 이재면을 비롯한 많은 풍류객들의 후원을 받아 결성됐다. 이들은 돈벌이를 위해 모인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예술적 취향을 공유하고 음악을 즐기기 위해 연주집단을 결성했던 것이다.

    정리= 이준희 기자 jhlee@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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