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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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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시론] 억울한 사람이 없는 대한민국으로- 김상군(변호사)

  • 기사입력 : 2017-01-02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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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태까지 경기가 좋다는 말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필자가 만나는 사업가들은 ‘그동안 경기가 나쁘다는 말에 엄살이 섞여 있었는지는 몰라도, 지금은 정말로 경기가 좋지 않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경기’라는 말은 개념 본질적으로 도저히 좋을 수가 없는 것인지, 서민의 삶은 날이 갈수록 팍팍해지기만 한다.

    20세기에 개국한 대한민국은 단군 이래 가장 융성한 나라이고, 은퇴해 노년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은 눈부신 경제발전을 이룬 사람들이다. 우리는 끼니를 걱정하다가 몇십 년 사이에 낭비를 걱정하는 처지로 바뀌었다. 상전(桑田)은 벽해(碧海)가 됐다.

    눈부신 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행복하다고 느끼지 못한다. TV를 보면, ‘응답하라 1988’ 같은 복고(復古), ‘걸어서 세계속으로’ 같은 여행, ‘맛있는 녀석들’ 같은 음식 먹는 프로그램이 인기를 끄는데, 누군가는 지금이 힘들기 때문에 옛날을 그리워하고, 지금 사는 곳을 탈출하고 싶어 여행을 꿈꾸고, 이도 저도 안 되기 때문에 덮어놓고 먹는 프로그램이 인기라고 분석하기도 한다. 외형적으로는 풍요로우나, 한 푼도 쓰지 않고 월급을 모두 모아도 집 한 칸 장만하기 어렵고, 멀쩡한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워진 역설은 국민들이 느끼는 불행감의 원인이 아닌가 싶다. 열심히 일할 기회를 얻기도 어렵고, 열심히 일해도 인생역전이 불가능한 삶에서는 비상구를 꿈꿀 수밖에.

    필자는 직업상 억울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난다. 어떤 이의 억울함은 정당하지만, 어떤 이의 억울함은 오해인 경우도 있다. 그러나 어쩌면 필자가 ‘오해’라고 생각하는 것도 ‘법은 어쩔 수 없다’는 고정관념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진실은 하나이지만, 증거가 부족해서 그 진실을 밝히지 못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증거가 부족해서 패소하는 것은 변호사에게는 당연한 일이지만,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네가 알고, 내가 아는 진실에 반대되는 결론을 받는 것은 억울한 게 맞다.

    유영근 부장판사가 쓴 ‘우리는 왜 억울한가?’라는 책에서 보면, ‘억울’이란 사전적으로는 ‘아무 잘못 없이 꾸중을 듣거나 벌을 받거나 하여 분하고 답답하다’라는 뜻인데, 우리나라 사람들이 ‘억울하다’고 할 때는 주로 ‘공정하지 못하다. 정당하지 못한 대우를 받았다는 객관적인 상황과 이에 대한 자신의 주관적인 감정을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억울’이란 한마디로 ‘공정하지 못하다는 느낌 (feel unfair)’이라고 할 수 있다.

    누가 보아도 억울한 상황에서 억울하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고, 억울할 상황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억울하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다. 객관적으로 억울할 만한 상황인지 아닌지 여부는 궁극적으로 권력을 가진 자가 판단한다. 법원, 검찰과 같은 수사와 재판기관, 국가라면 집권자, 회사라면 경영진이 판단한다. 민주주의가 발전하면서 억울함을 최소화하기 위한 여러 가지 제도들이 마련됐으나, 여전히 우리 국민은 억울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많다. 많은 사람들은 그 장치들이 돈과 빽 때문에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작년 우리나라는 심지에 불이 붙은 폭탄과도 같았다. 안 그래도 별로 행복하지 못한 삶에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황당한 일을 겪고 보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분노하고, 말할 수 없이 참담해했다. 필자는 국민들이 분노했던 이유의 핵심은 바로 억울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권력을 이용해서 거액의 돈을 모으고, 그 돈을 내는 대가로 특별한 혜택을 받고, 반칙을 통해 마음대로 세상을 주무르는 모습에 국민들은 공정하지 못하다는 느낌, 즉 억울함을 가졌던 것이다.

    우리나라는 좀 더 공정해질 필요가 있다. 아무리 경제적으로 발전해도 억울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많아서는 안 된다. 아직도 부정부패는 도처에 도사리고 있고, 학연, 지연, 혈연에 의한 반칙은 횡행하고 있다. 그 어느 해보다도 혼란스러웠던 2016년을 보내고 맞는 2017년 새해벽두에 생각한다. 앞으로 우리는 억울한 사람이 없도록 생각과 제도를 고치는 각고의 노력을 해야 한다.

    김상군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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