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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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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며] 좌우 이념대립 재연되지 않아야- 이상목(사회부장)

  • 기사입력 : 2016-12-15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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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대 이후 세대들은 어릴 적 귀에 못이 박이도록 반공교육을 받았다. 1968년 12월 9일 울진·삼척지역에 침투한 무장공비에게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울부짖다가 입이 찢겨 죽임을 당했다는 9살 산골소년 이승복 군의 이야기는 그 대표 사례다. 이후 1970년대 말까지 마을 어귀 담벼락엔 예외없이 붉은색 페인트로 ‘반공방첩(反共防諜)’ 글씨가 큼지막하게 쓰여졌다. 집권세력이 국민들에게 ‘우리는 공산주의가 싫다, 간첩을 몰아내자’는 구호를 각인시키기 위한 목적이었다. 글씨색이 바랠 때쯤이면 동네 이장이 페인트통을 들고 다니며 덧칠하던 모습이 선명하다. 극심했던 좌우대립의 후유증에 선량한 이 시절 민초들은 매우 혼란스러웠을 것으로 짐작된다.

    당시 우리 교과서는 북한 공산당 최고 지도부를 ‘수괴(首魁)’로 표기하고 타도 대상으로 규정했다. 어른이 된 후 알게 된 사실이지만 북한도 대한민국 대통령을 똑같이 수괴로 지칭했다. 지금도 이런 상황은 지속되고 있다. 피를 나눈 동족이지만 체제와 이념을 달리한다는 이유로 서로를 극단적으로 증오·저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괴란 단어는 그 섬뜩한 어감만큼이나 괴물의 느낌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수괴의 ‘괴(魁·우두머리)’와 괴물의 ‘괴(怪·괴상한)’는 엄연히 다른 뜻이다. 수괴의 사전적 의미는 ‘못된 짓을 하는 무리의 우두머리’이다. 괴물은 ‘괴상한 생물체’를 말한다. 어쨌거나 남·북한이 극단적으로 반목·대립하게 된 배경은 해방 후 좌우이념 대결 끝에 분단이 되고 ‘먹고사는 경제 시스템’을 북쪽은 소련식 공산주의, 남쪽은 미국식 자본주의를 채택한 것이 출발점이다.

    남북한이 상대방을 향해 적대감을 담아 지칭하는 그 섬뜩한 ‘수괴’란 단어가 최근 대한민국 집권당 내에서 당내 경쟁자를 지칭하는 말로 등장해 등골을 오싹하게 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의결된 후 탄핵에 반대한 새누리당 친박 (친박근혜) 진영이 탄핵 가결을 이끈 비박(비박근혜) 진영을 맹비난하며 그 리더를 ‘수괴’로 지칭한 것이다. 이정현 대표 최고위원이 이끄는 새누리당 친박계 주류 지도부는 13일 같은 당 김무성 전 대표와 유승민 의원을 ‘비박계 수괴’로 지목, 당에서 축출하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천명했다. 탄핵을 주도해 사실상 해당행위를 했다는 이유에서다. 반면 김무성 전 대표 진영은 친박계를 일컬어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적 노예’로 폄하하면서 당을 떠나라고 요구하고 있다. 양측이 임전무퇴 건곤일척의 승부수를 띄운 모양새다. 이런 상황은 국민들을 불안지경으로 내몰고 있다. 참으로 볼썽사납다. 양측 모두 책임지는 자세부터 보여야 한다.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이 6공화국에 이르기까지 진통이 많았지만, 지금이 가장 위태로운 상황이 아닌가 싶다. 안 그래도 현재의 시국을 전통보수와 종북좌파 간 진영대립으로 보는 시각이 있는 와중이다. 자칫 해방 직후 무법천지에 가까웠던 좌우이념 대립의 혼란상이 21세기 대한민국 한복판에서 재연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만에 하나 그리된다면 엄청난 국민적 희생과 대가가 따를 것이다. 그래서 촛불을 들었던 시민들도 탄핵안이 가결된 만큼 이제부터는 헌법재판소 심판이 내려질 때까지 차분하게 지켜보는 냉철함이 필요해 보인다.

    이상목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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