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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8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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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칼럼] 느려도 법치주의를 따라야 한다- 노동일(경희대 법대 교수)

  • 기사입력 : 2016-12-09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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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대통령의 검찰수사 거부에 비판이 쏟아진 이유는 무엇일까. 검찰수사를 성실히 받겠다는 약속을 어긴 게 중요한 이유일 것이다. 누가 강요했던 것도 아니다. 국민 앞에 공표한 담화에서 스스로 밝힌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법치주의의 요구 때문이다. 대통령도 법 앞에서는 일반 국민과 다를 바 없다는 국민의 법감정을 무시한 것이다. 최고 권력자도 법에 따라야 한다는 법치주의 사상은 기실 그리 오래된 것은 아니다. 우리의 경우는 더구나 그렇다. 나와 같은 대다수 장년층은 헌법마저 장식에 불과했던 엄혹한 시기를 몸소 겪었다.

    복잡한 심경으로 작금의 사태를 바라보는 것도 그래서이다. 매일 같이 경쟁하듯 박 대통령과 관련된 이상한 소식이 쏟아져 나온다. 급기야 청문회 석상에서 ‘최순실-박근혜 공동정권’ 얘기까지 나왔다. 차은택씨가 최씨에게 장관과 수석을 추천하니 그대로 되는 걸 보며 이럴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생각했다고 증언한다. 정말 이럴 수가 있나. 분노, 자괴감, 배신감, 허탈함에 휩싸인 사람이 대부분이다. ‘사실이라면’ 당장이라도 대통령직을 내려놓는 게 마땅하다. 헌법재판소는 노무현 대통령 탄핵심판에서 ‘대통령 파면이 정당화 되는’ 기준을 이렇게 설정했다. “대통령의 직을 유지하는 것이 더 이상 헌법수호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거나 대통령이 국민의 신임을 배신해 국정을 담당할 자격을 상실한 경우”라는 것이다. 지금까지 나온 얘기들만 보면 이 기준을 충족하고도 남는다.

    문제는 아무 것도 ‘확정된 사실’은 없다는 점이다. 수많은 국정농단 사례들을 보면서 무슨 소리냐고 할지 모른다. 하지만 법치주의의 관점에서 언론보도는 여전히 의혹 수준이다. 검찰수사 역시 마찬가지다. 법의 문턱을 겨우 넘었지만 갈 길이 멀다. 대통령 본인 수사는 시작도 못했고, 검찰 발 기사 역시 부인되기 일쑤다. 대법원 판결까지 나와야만 확정된 사실로 다룰 수 있다. ‘당장 하야’를 외치는 감정에는 부합하지 않을 수 있어도 그게 법치주의의 요구사항이다. 대통령도 검찰 수사를 받아야 한다는 주장이나, 의혹만으로 유죄로 단정할 수는 없다는 얘기는 같은 선상에 있는 것이다.

    탄핵 역시 이런 법치주의의 산물이다. 왕의 목을 치거나 유폐시키는 등의 역사를 겪은 유럽에서 먼저 만들어진 제도이다. 영국에서는 여전히 탄핵재판에서 사형까지도 과할 수 있다. 미국은 공직에서의 파면과 공직취임 자격 박탈로 제한한다. 우리 헌법은 탄핵심판에서는 공직 파면으로 그친다. 법을 위반한 대통령이라도 재직 중에는 형사기소를 못하는 대신 탄핵을 하도록 하고 있다. 대통령(president) 개인이 아니라 대통령직(presidency)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탄핵이 대통령에 대한 유일한 민주적 징벌장치인 셈이다. 중요한 역사적 선례를 위해서도 탄핵은 필요하다. 최종 기각된 노 대통령 탄핵과 달리 이번에 탄핵이 인용된다면 대통령 파면이 정당화되는 기준을 만들 수 있다. 후세의 대통령이나 권력자들에게 경계의 척도가 될 것이다. 박 대통령이나 친박계 의원들을 위해서도 탄핵은 바람직하다. 박 대통령은 근본적으로 본인 잘못이 없다는 입장이다. 사심 없이 국가와 국민을 위해서 일했을 뿐이라고 한다. 헌재의 탄핵심판 과정에서 많은 의혹의 사실 여부가 가려질 수 있다. 친박계 의원들은 따라서 굳이 탄핵 자체에 저항할 필요가 없다. 야당 역시 탄핵이 가결된다면 당장 물러나라는 주장을 멈춰야 한다. 2004년 이전, 대통령 탄핵이 현실화될 것이라 상상하기 어려웠다. 그만큼 엄중한 의미를 갖는 대통령 탄핵이다. 대통령도 여당도 야당도 정략적 판단으로 계산기를 두드릴 때가 아닌 것이다. 답답해 보이지만 법치주의는 역사적 지혜의 산물이다. 느려도 법치주의를 충실히 따를 때 최선의 결과를 얻을 수 있다.

    노동일 (경희대 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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