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3월 29일 (금)
전체메뉴

[작가칼럼] 아직도 늦지 않았는데- 최영인(아동문학가)

  • 기사입력 : 2016-12-09 07:00:00
  •   
  • 메인이미지

    “야야! 이상타. 티브이가 파란색만 나온다. 내가 뭘 잘못 눌렀는 갑다.”

    저녁 연속극을 보려다 리모컨 버튼을 잘못 눌러 버린 친정어머니가 다급하게 전화를 했다.

    “아, 엄마 거기 영어로 TV라고 써 놓은 곳 보여요?”

    “TV라꼬? 내가 영어를 알아야제.”

    큰일이다. 회사마다, 기종마다 리모컨이 다른 데다 시골 동네엔 젊은 사람이라곤 없으니 누구한테 물어보라고 할 수도 없다. 보이지 않으니 설명할 길도 없고 이것저것 눌러 보라고 하다 보니 통화만 길어지고 드라마는 다 지나가 버렸다.

    일본에서 소학교를 다니다 해방 후 한국에 나온 어머니는 한글을 독학으로 배웠다. 그래서 가계부엔 쌍받침이 들어간 글자는 하나도 없었다. 그 뿐 아니라 경상도에서 정착을 하다 보니 배차(배추), 무시(무), 고등어 시 바리(세 마리) 등 사투리를 쓰는 바람에 아이들이 ‘외할머니 욕한다’며 놀리곤 했다.

    어느 날 다른 일 때문에 근처를 지나가다 갑자기 친정에 들렀는데 어머니는 보이지 않고 방바닥엔 초등학교 국어책이랑 공책, 연필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10칸짜리 국어공책엔 받아쓰기에서 틀린 글자를 옮겨 적어 내려가고, 네 줄짜리 영어공책엔 알파벳 26자를 대문자로 반듯하게 써 두고 그 아래에 작은 글씨로 토를 달아 놓았다.

    딸네가 왔다는 소식에 마실 나갔다가 허겁지겁 달려오신 어머니는 부끄러운 듯 얼른 공책을 치우셨다.

    “엄마, 영어도 배워요?”

    “그래. 인자 mbc도 알고 kbs도 안대이. 리모컨에 영어도 잘 읽는다.”

    어머니는 방송을 보면서도 mbc인지 kbs인지를 모른다고 하던 때를 생각하며 소녀처럼 미소를 지으셨다. 한글보다 일본어, 일본말이 더 능하던 어머니가 이젠 표준어로 일기를 쓰고, 길거리에 보이는 영어도 또박또박 읽으신다. 왜 내가 진작 가르쳐 드리지 않았을까 마음이 짠했다.

    바로 옆집 덕이 어머니는 숫자를 몰라서 아직도 아들이 알려준 단축 다이얼로만 전화를 건다. 택배나 소포가 오면 이름을 읽지 못해 택배 아저씨가 어머니께 와서 사인을 받아가기도 한다. 더군다나 버스를 탈 때는 버스번호를 못 읽어서 일일이 기사님께 물어야 한다고 혼자서는 길을 나서지 않는단다. 눈을 뜨고도 알 수가 없는 까막눈이 얼마나 답답한 일인가.

    이제는 어머니의 자리에 내가 서 있다. 아이들은 카톡의 상태메시지를 일어로 올려놓거나 비밀 이야기는 내가 알지 못하는 글로 주고받는다. 일본에 여행을 다녀온 지인이 일어가 적힌 화장품을 선물로 줬지만 이 화장품이 영양크림인지, 세안크림인지, 몸에 바르는 건지, 얼굴에 바르는 건지 내겐 그림 같은 글을 쳐다보다 하는 수 없이 사진을 찍어 아이들의 도움을 청하곤 한다.

    가끔 영어로만 쓰여진 상품설명서를 만나면 사전을 찾아보려 하지 않고 ‘애들 오면 물어보지 뭐’ 하고 아예 접어둔다.

    쌍받침이 있는 ‘맑다’를 ‘말따’로 읽어야 하는지 ‘막따’로 읽어야 하는지 한글이 너무 어렵다면서도 아직 공부를 하시는 팔순의 어머니를 생각하면, 아직도 늦지 않았는데 왜 벌써 난 포기부터 하는지 어머니를 보며 나를 돌아본다.

    최영인 (아동문학가)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