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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5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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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고 있는 할머니 영정 앞에 우리들은 울고 있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남해 박숙이 할머니 영결식
마음으로 낳은 자식들 기르고, 위안부 명예회복 위해 ‘한평생’

  • 기사입력 : 2016-12-08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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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제까지 정부가 발견한 자료 중에서 군과 관헌에 의한 이른바 ‘강제연행’을 직접 보여주는 기술은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을 2007년 각의에서 결정했다”(지난 1월 19일 일본 참의원 예산위원회 중 아베 신조 총리 발언.)

    “위안부 강제 연행 증거가 없다는 주장이 있는데 동의한다. 위안부 할머니는 (강제적이라고)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만 개인의 경험을 객관적이라고 볼 수 없다”(지난 4일 도쿄 기자간담회 중 무토 마사토시 전 주한일본대사 발언)

    통한의 세월 자체가 ‘증거’였던, ‘삶’으로 진실을 밝혀오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박숙이 할머니가 6일 오후 서러운 눈을 감았다. 향년 93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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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일 오전 9시 30분 남해군 숙이공원에서 열린 위안부 박숙이 할머니 영결식에서 시민사회장례위원장인 김정화 남해여성회장이 박 할머니의 영정을 매만지며 오열하고 있다.

    사촌언니와 바래(조개캐기)가는 길에 칼로 위협하는 일본인 남성에게 저항도 못해본 채 열여섯 소녀는 끌려갔다. 나고야를 거쳐 만주 위안소로 간 그 소녀는 ‘숙이’ 대신 ‘히로꼬’로 불리며 6년의 시간을 짓밟혔다. 좁은 위안소 방 안에서 숙이는 나라도 잃고, 이름도 잃고, 시간도 잃었다.

    조국은 빼앗긴 땅과 주권을 도로 찾았다. 그러고도 강산이 일곱 번 바뀌었다. 그러나 일본으로부터 아직까지 진정한 반성과 사과를 받아내지 못했다. 할머니가 된 소녀 숙이는 그렇게 광복을 맞지 못한 채 기나긴 생(生)의 마침표를 찍었다.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할머니 238명 가운데 40명이 남았던 것이 박숙이 할머니의 죽음으로 이제 39명만 남게 됐다.

    박숙이 할머니는 존재 자체로 질곡의 한국 근현대사 ‘증거’이자 ‘기억’의 증인이 됐다. 영문도 모른 채 일본군에 끌려가 무참히 짓밟힌 증거였고, 반겨주지 않는 조국에 돌아와 수십년의 세월을 견뎌내면서도 일본의 만행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강제연행을 스스로 기억해야만 하는 존재였다. 그는 그렇게 살아왔다. 박 할머니가 “일본에 빳빳하게 고개 들고 살아야 한다. 나라 없는 백성이 얼마나 불쌍한지 아느냐. 공부 열심히 해서 큰 인물이 되고 튼튼한 나라 만들어라”고 청소년들에게 말했던 이유이기도 했다. 박 할머니는 마음으로 낳은 자식들을 기르고, 청소년들에게 장학금을 내놓고, 자신과 같은 처지의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회복을 위해 평생을 바친 뒤 나무로 돌아갔다. 자기 이름을 딴 숙이공원에 묻히고 싶었던 마지막 소원을 들어줄 수 없었던 남은 사람들은 흐느껴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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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 박숙이 할머니

    8일 오전 9시 30분 그의 이름을 딴 남해 숙이공원에서는 박숙이 할머니 시민사회장례위원회(위원장 김정화·남해여성회장)가 주관한 민주사회장이 거행돼 박 할머니의 마지막을 배웅했다. 숙이 할머니가 생전 딸처럼 여긴 남해여성회 김정화 대표는 추모사를 통해 “위안부 문제는 한 번의 눈물바다로 끝낼 문제가 아니라 두고두고 마음속에 꽃 피워야 할 여성인권과 명예회복의 문제”라며 “부디 차별 없고 폭력 없는 평등과 정의의 새 나라에서 편히 쉴 수 있길 바란다”고 말하며 오열했다.

    유족 대표로 나선 아들 김효윤씨는 “비록 어머니가 떠났지만 많은 사람들이 슬퍼해주셔서 웃으면서 떠나셨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나의 사진 앞에서 있는 그대 제발 눈물을 멈춰요. 죽었다고 생각 말아요” 추모사가 모두 끝나고 임형주의 ‘천개의 바람이 되어’가 스피커에서 흘러나왔다. 웃고 있는 박숙이 할머니 영정 앞 남은 사람들은 헌화하며 눈물을 훔쳤다.

    글·사진= 도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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