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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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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시론] 박근혜 대통령과 ‘국가로망스’- 우무석(시인)

  • 기사입력 : 2016-12-05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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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대통령이 ‘최순실 게이트’의 소용돌이 속에서 세 번째 갖는 대국민담화를 지켜보면서 내심 하야 발표를 기대했다. 다섯 차례의 거센 촛불이 점화된 뒤였고 국회 탄핵소추 의결을 앞둔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담화의 내용은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 일들은 ‘국가를 위한 공적 사업이라고 추진’했을 뿐 자신은 ‘어떠한 개인적 이익을 취하지 않았다’며 공범혐의를 슬그머니 감추었다. 그리고 ‘임기단축’ 운운하며 자신의 진퇴 문제마저 모두 국회에 떠넘기는 비겁한 꼼수도 부렸다. 적어도 국민에게 그 담화가 진정성 있는 간절함으로 다가서려면 대통령 자신의 입으로 약속했던 검찰 출석이라도 해야만 했었다. 오로지 자신의 잘못은 ‘주변 관리 부실’이라는 변명만 돌올한 대국민담화는 ‘즉각 퇴진’을 바랐던 국민의 여망을 또 한 번 무시하는 원맨쇼에 불과했다.

    그런데 ‘숱한 밤을 지새우며 고민하고 고민했다’는 사람의 낯빛이 너무나도 아무렇지 않게 멀쩡해 더 천불이 난다. 저리도 멀쩡한 얼굴은 국민들의 분노가 전국을 휩쓸고 있는 오늘의 혼란한 상황의 근본적 원인이 자신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자신만 그 사실을 짐짓 모른 체하고 있다.

    문득 최순실이 주변 사람들에게 뒷담화한 “아직도 지가 공주인 줄 아나 봐”라는 말이 떠올랐다. 어쩌면 파렴치한 그 여자의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지금까지 박근혜 정부는 합리적 이성과 상식의 이름으로 정치적 판단을 해왔던 게 아니었다.

    지난해 유승민 의원에게 ‘배신의 정치’를 들먹이며 독살을 피워댔을 때부터 불치의 공주병 증상을 의심해봤어야만 했다. 대통령은 공공의 사회적 의제에 대해, 여성만의 고유한 일들에 대해, 아니 세상의 모든 현실적 조건에 대해 자기 나름대로 환상을 지니고 있었던 것 같다. 그 환상적 현실 해석의 극치가 국정농단이란 시뮬라크르인 건 아닐까.

    프로이트의 ‘가족로망스’라는 글이 있다. 아이는 가족이라는 세계 안에서 자신을 왕자나 공주로, 부모를 왕과 왕비로 인식하지만, 성장하면서 자신의 부모가 실제로 왕과 왕비가 아니라는 현실을 깨닫는다. 그렇지만 아이 자신은 현실의 부모를 부정하면서 어딘가에 왕과 왕비인 친부모가 따로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자신의 환상을 포기하지 않고 끝끝내 고집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아이가 어느 정도 ‘현실원칙’을 수용하게 되면 그 환상을 유지하려는 방식으로 ‘타협 형성’을 꾀하게 된다.

    자신이 왕자/공주라는 허위의 환상을 입증하기 위해 “우리끼리 그렇다 치고”라는 등식을 만들어 놓고 일정한 사회적 공모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수용해버린다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생각해보면 어릴 때부터 대통령의 딸로서, 한때는 퍼스트레이디로 역할 훈련을 해왔던 현직 대통령이 보여준 정치적 상황은 장려한 한 편의 ‘국가로망스’가 아니었던가? 정치적 의식의 가장 깊은 심급에 잠재해 있던 자신의 불완전한 환상 일부를 양보했던 행위가 ‘타협 형성’ 과정의 결과물로서의 국정농단인 것이다.

    지금 대통령의 국정농단으로 온 나라가 환란 상태이다. 그로 인해 모든 부문에 국정마비가 일어나고, 국정마비 그 자체가 망국적 그늘이 드리워져 있다.

    100년 전 단재 신채호 선생은 ‘꿈하늘’에 이렇게 썼다. “국민의 부탁을 맡아 임금이 되자거나 대신이 돼 나라의 흥망을 어깨에 메인 사람으로 금전이나 사리사욕만 알다 적국에게 이용된 바가 되어 나라를 들어 남에게 내어주어 조상의 역사를 더럽히고 동포의 생명을 끊나니(…) 이 무리들은 살릴 수도 없고 죽이기도 아까우므로 혀를 빼며 눈을 까고 쇠비로 그 살을 썰어 뼈만 남거든 또 살리고 또 이렇게 죽이되 하루 열두 번을 이대로 죽이고 열두 번을 이대로 살리어 죽으면 살리고 살면 죽이나니 이는 곧 매국역적을 처치하는 ‘겹겹지옥’이니라.”

    우리는 대통령을 끔찍한 ‘겹겹지옥’에 가둘 수 없으니 그냥 하야하시라, 탄핵도 번거로울 뿐이니!

    우 무 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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