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먹은 솜 같은
귀갓길
아파트 앞 주차 중에
늑대 한 마리 보았다
스치듯 지나갔다
오래된 제 영역인 듯
눈에서 석양의 검이 보였다
울지 않은 울음 속에 서늘함이 넘쳐흘렀다
잠깐 스친 공간
늘 내 안으로 안주해 온 일상이
민들레 꽃 대궁처럼 위태하다
☞ 얼마 전 그야말로 따끈따끈한 시를 읽었습니다. 제목이 ‘경계’였는데 한자로 표현하면 경계(境界)인지, 경계(警戒)인지 알 수는 없으나 시 읽기, 아니 시 쓰기의 재미가 이런 것입니다. 시인은 굳이 한자로 표기하지 않고 독자에게 어떤 식의 ‘경계’로 읽어도 괜찮다고 말하고 있으니까 말입니다.
천천히 읽어보면 어렵지 않게 경계(境界)와 경계(警戒)가 함께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루의 노동 끝에는 늘 피곤한 귀갓길이 이어집니다. 그 속에서 울지 않은 울음 속에 서늘함이 넘치고 있음을 마주한 시인은 화들짝 놀랍니다. 그간에 안주해 온 일상이 고마우면서도 금방이라도 고개 꺾이고 말 위태로움을 알아차린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시인은 지금 자신이 어디에서, 어떤 위치인가를 늘 깨우쳐 경계하며 살아야 한다고 알려주고 있습니다. 정이경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