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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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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속의 풍수지리] 남양홍씨의 명당에 가다

  • 기사입력 : 2016-11-11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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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 세계를 하나의 큰 나무로 본다면 히말라야가 원초적 뿌리가 되고 중국의 곤륜산이 백두산으로 이어지면서 큰 줄기가 되며 백두산은 금강산과 태백산을 거쳐 지리산으로 이어지면서 작은 줄기가 형성된다. 히말라야, 곤륜산, 백두산이 태조산(太祖山)이 되고 금강산, 태백산, 지리산을 중조산(中祖山)으로 보며 주산(主山)의 뒤에 있는 산을 소조산(小祖山)이라 한다.

    그러나 이런 분류는 상징적 의미가 있기는 하지만 실질적인 의미를 둘 필요는 없다. 기실 주산(主山) 뒤에 존재하는 산들을 소조산, 중조산, 태조산으로 정해 연결된 산들을 확인함으로써 주산이 근본을 갖춘 산임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동양사상에서 나온 땅의 기운이 좋아야 훌륭한 인물이 나온다는 ‘인걸지령론(人傑地靈論)’이나 인간은 주어진 환경에 의해 지배를 받는다는 서구의 ‘환경결정론(環境決定論)’은 그 맥을 같이한다고 볼 수 있다. 환경결정론은 독일의 지리학자 ‘라첼’이 체계화한 이론인데, 인간의 문화 형성에 중요한 결정요인이 되는 것은 천연자원, 기후, 지형 등 그를 둘러싸고 있는 ‘자연적 환경’이라고 보았다.

    오늘날 ‘명당’이란 어떠한 곳을 말함일까. 아마도 자연의 이치에 반하지 않도록 인공적 개발을 최대한 자제하고 울퉁불퉁한 길이 산들바람과 함께 있으면서 개울물 소리를 듣고 자연의 풍광과 소리와 냄새를 맡을 수 있는 곳이 아닐까 한다. 이러한 양택(陽宅·산 사람이 거주하는 곳)과 음택(陰宅·무덤)의 명당은 같은 맥락으로 보면 된다.

    하여튼 좋은 자리(명혈)에 시신을 매장(埋葬)하면 후손의 발복(發福)은 차치하더라도 적절하게 시신의 살이 썩고 뼈가 삭아 자연으로 돌아가므로 경사가 아니겠는가. 이를 두고 풍수원전에는 ‘장자승생기야(葬者乘生氣也·죽은 사람을 길지에 매장하면 자연의 생기를 받게 되고 자손이 복을 받는다)’라 한다.

    중국은 화장(火葬)을 해도 동기감응에 대한 믿음이 확고하므로 좋은 땅을 국가로부터 임대해 추모원을 만들기도 한다. 범국민적으로 화장을 하는 일본과 대만도 추모의 장소를 마련해 안치한다. 물론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네팔, 티베트 등의 국가는 화장 후 강물에 뿌리거나 수장(水葬), 조장(鳥葬)을 하지만 아직까지 우리의 정서에는 맞지 않다.

    아무튼 양택은 거주자에게만 영향을 끼치며 반응속도가 빠르고, 음택은 후손 모두에게 영향을 끼치면서 반응속도 또한 느리고 길다. 음택의 후손이 발복한 대표적인 명당은 연안이씨 이석형 묘소, 청풍김씨 김징 묘소, 광산김씨 김반 묘소, 동래정씨 정난종 묘소, 진주강씨 강회백 묘소, 여흥민씨 민기 묘소, 장수황씨 황균비 묘소, 반남박씨 박소 묘소가 있다.

    진주시 명석면 계원리에 광제서원과 남양홍씨 홍의 및 홍호 부자의 묘가 있다. 서원은 처음에 홍복사(洪福寺)이던 것이 홍지암으로 개칭(1747년)됐으며, 홍지암 상량문에 의하면 1891년 중수한 기록과 함께 모원재로 개칭되면서 남양홍씨 문중에서 재실로 사용하고 있다. 고려 초기 건축양식을 대표할 수 있는 건축물로 정면 5칸의 맞배지붕으로 돼 있다. 솟을대문과 문간채가 있으며 산줄기가 이어진 건물 뒤의 암반은 터의 기운이 강함을 알려주는 듯했다.

    서원 옆에는 고려시대 고분으로 남양홍씨인 은청광록대부(고려시대 정2품 벼슬)였던 홍의와 은청광록대부이면서 태자첨사(태자의 교육을 담당하는 기관)였던 홍호의 묘가 있다. 집현산이 중조산이며 광제산이 소조산이자 주산의 역할을 하고 있다. 명당의 조건에 부합하는 길한 자리였다. 묘의 좌측보다 우측에서 바람이 세게 불며 산줄기는 좌측에서 시계방향으로 틀면서 우측에서 끝맺음을 했다. 주산은 비루하지 않고 늠름했으며 용맥(龍脈·산줄기)은 좌우요동과 상하기복이 활발한 생룡(生龍)으로 좌우 균형을 이루면서 묘까지 전진을 했다. 좌청룡과 우백호는 적당한 높이여서 흉풍을 막고 있으며 안산(묘 앞의 산)은 눈썹 정도의 높이로 안정감이 있었고 안산 옆의 계원저수지는 안산의 지기를 강화시키는 데 일조했다. 드물게 볼 수 있는 자리였기에 답산(踏山)한 보람을 느꼈다. 좌향은 신좌을향(辛坐乙向·남동향)이다.

    주재민 (화산풍수지리연구소장)

    (화산풍수·수맥·작명연구원 055-297-38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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