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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8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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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속으로] 남해서 돌창고 프로젝트 펴는 김영호, 최승용씨

“낡은 돌창고에 ‘문화등불’ 채워 청춘 귀촌 길잡이 될래요”

  • 기사입력 : 2016-11-10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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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료 보관이라는 글자가 흐릿하게 남은 철문에는 녹이 슬어 있다. 남해 삼동면 영지리에 있는 시문창고다. 철문을 여니 창고 한가운데 화려한 샹들리에가 매달려 있다. 비료창고와 샹들리에. 교과서에 문학기법으로 등장한 ‘낯설게 하기’를 보여주는 듯한 장면이다.
     
    샹들리에 너머 보이는 마룻대에 쓰인 한자는 이 창고가 1967년에 지었음을 알려준다. 그러니까 이 샹들리에는 50년을 견딘 창고에 보내는 찬양이자 창고가 지닌 이야기 하나하나에 불을 밝히겠다는 의지와 같이 느껴졌다. 허름하고 어두운 이 시골창고에 불을 켠 이들은 도예작가 김영호(42)씨와 문화기획자 최승용(31)씨다.

    부산 출신인 김씨는 조경을 전공한 후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다 귀촌을 위해 도예를 배워 하동으로 먼저 내려왔다. 하동에서 게스트하우스와 카페를 열어 생활했다. 하동 출신인 최씨가 역사를 전공하고서 잠시 고향에 내려와 있는 동안 매일같이 들른 곳이 김씨의 카페였다. 그러다 지난해 최씨가 대학원에서 문화콘텐츠 기획을 공부하고 있을 때 연락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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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창고 프로젝트’를 하고 있는 김영호(오른쪽), 최승용씨가 남해군 서면 대정 돌창고에 있는 작품 ‘아피통 나무이야기’에 앉아 포즈를 취하고 있다./김승권 기자/

    “(최) 영호씨한테서 전화가 왔더라고요. 아주 재미있어할 공간이 있다고요. 내려와서 같이 돌창고를 보고 감탄하면서부터 시작됐습니다.”

    10살 이상 차이 나지만 둘은 이름을 부르며 동등한 호칭을 쓴다. 모든 일에 걱정이 앞서는 김씨와,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최씨는 티격태격의 연속이지만 둘만의 호흡으로 카페 주인과 손님의 관계에서 돌창고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하는 동반자가 됐다.

    돌창고는 대부분 마을 공동 소유거나 농협이 갖고 있어 매입도 어려웠지만, 수소문 끝에 농협에서 개인에 판 시문창고와 대정창고 둘을 지난해 7월에 사들였다. 사실 창고 자체보다는 프로젝트를 수행할 공간이 중요했다. 지역성을 띠고 기억과 행위를 지니면서도 건축미도 있는 돌창고가 알맞았다.

    “(최) 돌창고 프로젝트 헤테로토피아라고 하는데, 앞으로 저희가 꾸밀 곳을 미셸 푸코가 말한 ‘헤테로토피아’로 만들려 해요. 간단히 말하면 현실세계에 존재하는 유토피아(이상의 나라)죠. 시골 하면 떠올리는 촌스러움의 이미지가 있잖아요. 그것도 모두 만들어낸 이미지일 뿐이라고 생각하고 여기서 헤테로토피아를 세우려 합니다.”

    개념은 추상적이나 그들의 행동강령은 더욱 현실적이고 구체적이다. 둘은 여유롭고 가치있는 삶을 위해 귀촌한 젊은이들이 할 수 있는 경제활동이 마땅치 않은 것이 문제라 여기고, 문화 인프라를 만들어가면서 경제활동을 해보자고 다짐했다.

    “(김) 여기 내려온 젊은이들이 할 수 있는 게 카페나 펜션 말고는 없어요. 그러다 보니 익숙함과 안정감에 다시 직장을 찾는 사람도 있지만 수도권보다 직장 찾기도 더 힘들죠. 그러니 귀촌을 결심할 때 문화 인프라와 경제적 활동, 용기가 필요하다고 하면 자기만이 낼 수 있는 용기를 제외한 두 가지는 갖춰 보자, 우리가 살아남으면 좋은 사례가 되지 않을까 하고 해 보는 겁니다.”

    문화 인프라와 경제활동을 위한 일들은 올해 6월부터 시작됐다. 시문창고에서는 김정수 작가가 6, 7월 두 달간 회화와 판화 작업을 했고 결과물을 7월 말부터 한 달간 창고에서 전시했다. 대정창고에서는 김씨가 남해 사촌해변에 떠밀려온 나무를 주워 만든 그네, ‘아피통 이야기’가 설치됐다.

    필리핀 열대우림의 나무가 배의 일부, 어부들의 굄목이 되었다가 한 작가를 만나 그네로 재탄생한 것이다. 의미 부여에 따라 계속 역할이 달라지면서도 계속 받쳐주고 도와주는 역할을 하고 있는 이 나무토막 하나가 삶과 비슷하다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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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승용씨



    문화 인프라는 작은 책방을 꾸미는 데로 넓혀졌다. 책방은 대정창고에서 5분 거리에 있는 옛 신촌리 마을회관 건물 1층에 자리한다. 둘의 소장책들로 책장을 채웠다. 책 분류는 ‘밖에 안 나가는 오타쿠 누나의 책장’, ‘문학소녀였던 책 욕심 많은 엄마의 책장’, ‘시골로 막 이사온 젊은 부부의 책꽂이’ 등으로 돼 있다.

    “(김) 책방은 꼭 있어야 하는 곳으로 생각했죠. 여기서 귀촌 젊은이들이 뭔가를 기획하고, 제안하고 발표하는 행위를 했으면 해요. 그래서 책방 이름도 ‘3 people(세 사람)’로 정했어요. 셋만 모이면 네트워크가 시작될 수 있다 믿으니까요.”

    남해와 인근에서 활동하는 창작자들의 판매의 장을 열어주기 위한 ‘돌장’도 열었다. 지난 10월 남해 독일마을 맥주축제 기간 때 처음 열렸는데, 축제 분위기에 힘입어 음악공연과 인문학 강의, 영화상영·감독과의 대화로까지 확장된 ‘돌잔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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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호씨



    참가자들에게 호응을 얻어 매월 둘째주 토요일 열게 돼 이번 주말 2번째 돌장이 열린다. 젊은 창작자들과 귀촌 젊은이들의 커뮤니티가 만들어진 것이 올가을 돌창고의 수확이다.

    가을을 맞은 돌창고 두 곳은 여전히 청소만 돼 있을 뿐 인위적인 건축 행위를 하지 않았다. 국내 유명 건축가에 리모델링을 의뢰했지만 1년간 그대로 두라는 조언이 돌아왔다. 의외의 대답에 기분이 상하기도 했지만 1년이 지난 지금 그 과정이 필요했고 중요하다 생각한다. 그간 창고에서 지내면서 창고에 들어오는 빛을 느껴보고, 생김새를 관찰하고, 소리를 들었다. 석공이 깨준 진주 청돌 두 지게를 지고 온 이야기 등 창고의 탄생을 기억하는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도 값졌다.

    느린 행보 덕에 마을 어른들의 마음도 얻었다. 이 과정도 모두 하나의 건축이라는 생각이 드는 지금에서야 대정창고의 리모델링을 계획하고 있다.

    남해에 필요한 곳을 직접 만들어 보려는 둘, 궁극적 목표가 없어 영원한 미완성이라고 했다. 보물섬이라 불리는 남해에 보물지도를 손에 쥔 둘이 돌창고 안에 있다.

    이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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