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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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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습기자 생존기] 48기 안대훈 (7) 드라이브 마이 카

  • 기사입력 : 2016-10-25 14:2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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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람의 밑바닥을 드러내는 매개체에는 무엇이 있을까. 술, 사랑, 벼랑 끝에 내몰린 상황 등이 그 후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술 한 잔에 두 눈을 적시고, 사랑하는 연인 앞에서 한없이 찌질해진 뒤, 집에서 하염없이 이불킥을 한다. 그리고 벼랑 끝에 내몰린 상황에 처하면 추할 정도로 비겁하고 비굴한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이 3가지 외에는 무엇을 꼽을 수 있을까. 나는 '자동차'라고 말하고 싶다. 운전은 숨겨왔던 자신의 모습을 확인하는 척도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에 나는 이 사실을 절감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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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흰색 광택이 꽤 매력적인 인생 첫차.

    10월 초, 자동차를 샀다. 내 인생에 첫차다. 게다가 중고가 아닌 새 차다. 손이 미끄러질 듯한 흰색 광택이 매력적인 차다. 산 지 3주쯤 돼 가는데, 뒷좌석 비닐을 어제 뜯었다. 누구나 그런 것일까, 아니면 내가 유별난 것일까, 아무튼 주변 사람들을 그런 나를 보며 유난 좀 그만 떨라며 핀잔을 줬다. 책 겉표지도 거추장스러워 사는 즉시 그 자리에서 뜯어버리는 내가 실로 오랜만에 보인 이상행동이다.

    그런데 그런 것치고는 나는 차를 거칠게 몬다. 엔진이 내는 거친 파열음을 즐기며 질주본능에 몸을 맡긴다. 영혼이 빠져나갈 것 같은 거친 코너링도 거부할 수 없는 마력이다. 그럴 때면 나는 핸들을 조종하는 내 팔뚝이 힘줄로 꿈틀거린다고 착각한다. 경차를 타면서도 SUV(Sport Utility Vehicle)를 몰고 있다는 환상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혼자서 007 영화 한 편을 찍고, 생각한다. 나 제법 남자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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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핸들은 한 손으로!

    하지만 홀로 만끽하던 남성성은 너무도 쉽게 무너진다. 클랙슨(자동차 경적) 소리 한 방에 바로 움츠러들어 한 손으로 잡고 있던 핸들에 남은 한 손을 더한다. 한방에 성공한 평행주차에 뿌듯해 하다가도 주차선과 안 맞게 돼 있는 것을 확인하면 머쓱해 하며 다시 차에 오른다. 고속도로에서 한껏 질주본능을 즐긴 뒤에는 차가 긁힐까봐 톨게이트에 가까이 대지 못한 채, 창문 밖으로 상반신을 빼 요금을 건넨 적도 있다.

    자동차와 함께하는 하루는 나의 여러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다. 무언가를 아껴 유난을 떠는 나, 유치한 남성성에 만족하는 나, 그리고 한순간에 움츠러들고 찌질해지는 나. 이들은 계주경기처럼 서로 바통을 주고받으며 자신을 드러낸다. 그런데 아마,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내 모습도 있으리란 예감이 든다. 그 녀석이 궁금하다. 너는 누구냐.

    P.S.) 나 차 샀어요. 이 말을 어떻게 하면 티 나지 않게 멋있게 쓸 수 있을까, 라는 고민으로 글을 썼다. 하지만 내비게이션이 없어서 그런지, 쓰다가 길을 잃었다. 다 쓰고 나니 여기가 어디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 덕분에 글로 맘껏 드라이브를 한 기분이다. 도착지 없이, 바람과 풍경만 맛보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가끔은 그런 날도 필요하지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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