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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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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안전지대는 어디에- 최영인(아동문학가)

  • 기사입력 : 2016-10-14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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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름내 그 뜨겁던 대지엔 비 한 방울 보기가 힘들더니, 요즘 들어 가을비가 잦다. 지진이 한반도를 뒤흔들고 간 뒤에 여진이 아직도 끝날 줄을 모르는데, 그때 허물어진 건물들이, 뻥 뚫린 지붕들이 아직 제자리를 다 찾지도 못하고 있는데 하늘은 이게 무슨 심술인가. 기어이 태풍 ‘차바’가 물폭탄을 동반해 남쪽을 뒤흔들어 놓고 갔다.

    얼마 전 봉림동 태복산에서 1t은 넘을 것 같은 큰 바위가 산 아래 텃밭 입구까지 굴러 내려왔다. 산으로 올라가는 그 길목에 늘 차를 세워두고 밭일을 하곤 했는데 밤새 굴러 내린 바위를 보고 우린 깜짝 놀랐다.

    지진이 온다는 걸 예고라도 하듯 땅이 몸서리를 친 걸까?

    그때 만약 그 길목에 차가 주차돼 있거나 사람이라도 타고 있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생각을 추스르기도 전에 곧바로 찾아온 강진은 또 다른 바위가 굴러 내리진 않을까 불안하기만 했다.

    지진의 여파가 아직도 가슴을 뛰게 하는데 태풍 ‘차바’는 태복산 꼭대기에 물폭탄을 쏟아 부었다.

    태풍이 지나가나 보다 잠시 안도의 숨을 쉬려는 순간, 골프장 아래 집이 없어졌다는 전화가 걸려 왔다. 설마하며 농장으로 달려갔을 땐 언제 그 자리에 집이 있었냐는 듯 산사태로 인해 바위들만 가득 펼쳐져 있었다.

    지진에 놀란 바위들이 몽땅 휩쓸려 내려왔을까. 거센 물폭탄에 물길을 잃은 계곡물은 바위들을 데리고 산 아래로 쏟아지고, 골프장에 진입하는 도로는 강이 돼 흐르고 있었다.

    애써 항아리마다 담아놓은 효소들, 봄부터 내내 말려놓은 돼지감자, 닭장의 닭들, 수령이 40년이 넘은 과일나무들, 하우스를 지키느라 목줄이 매인 채 변을 당한 개들….

    그 뜨거운 태양 아래서 여름 내내 밭을 일구던 농장주들은 망연자실, 할 말을 잃었다. 그래도 해일로 인해 삶의 터전을 모두 잃은 사람들에 비하랴.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동영상을 보며 ‘사람 안 다쳤으니 다행이야’를 몇 번이고 되뇌었다.

    세계 곳곳에서 천재지변으로 힘없이 바스러진 건축물들, 힘없이 떠내려가는 집들을 보며 남의 일이거니 생각했다. ‘잔병치레하는 사람이 오래 산다’는 말이 있다. 그건 미리미리 병원을 찾아서 몸 관리를 잘하기 때문이리라. 아무런 대책 없이 있다가 갑자기 닥친 재해에 모두 우왕좌왕하고, 예고했던 태풍 앞에서도 우리는 그냥 무방비로 당하고 말았다.

    어쩔 수 없는 재해라지만 이제는 천재지변에도 예방주사를 맞아야 한다.

    바다를 메우고, 산을 깎아내고, 코앞의 이익에만 눈이 멀어 부실공사가 여기저기서 불거져 나오는 현주소는 천재지변이라고만 할 수 없다.

    도심 한복판엔 여기저기서 싱크홀이 생기고, 추억 속의 그곳은 아파트가 숲을 이루고 있다. 아름답던 산은 반쯤 깎여 속살을 드러내고, 발을 담그고 놀던 계곡은 물길이 막혀 오간 데 없다.

    천재지변을 모른 체한 개발 뒤에는 그보다 더 무서운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자연은 그대로 있을 때 자연이라 할 수 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다면 개발이라는 단어에 앞서 어떤 재앙에도 잘 견뎌낼 수 있는 안전지대를 먼저 구축하는 것이 어떨까 생각해 본다.

    최영인 (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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