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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3) 만신창이(滿身瘡痍) - 온몸에 상처뿐이다

허권수의 한자로 보는 세상

  • 기사입력 : 2016-10-11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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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글날이 1991년부터 국경일에서 빠졌다가 2013년 다시 회복돼 공휴일이 됐다. 한글날을 맞아 생각해 보건데, 우리말이나 우리 문화가 만신창이 신세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방송이나 신문에서 대대적으로 한글날 특집프로를 제작하거나 특집기사를 낸다. 그러나 우리말을 파괴하는 일을 제일 많이 하는 곳이 바로 방송국이나 신문사다.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한번 보자. ‘뉴스 라인’, ‘뉴스 와이드’, ‘뉴스 데스크’, ‘글로벌 다큐멘터리’, ‘스포츠 매거진’ 등은 완전히 영어다. ‘뉴스 광장’, ‘스타 입성 프로젝트’, ‘베스트 가요 쇼’ 등은 우리 말과 영어가 섞였다. ‘먹거리 X파일’, ‘풍문으로 들었SHOW’, ‘수학 EBS MATH’ 등은 영어 글자가 그대로 등장한다. ‘The K2’는 영어로만 된 제목이다.

    아나운서, 리포터, PD, MC 등등 우리말로 해도 될 것도 전부 영어로 한다.

    신문은 정도가 조금 덜하지만, 기사 속에 외래어가 범람한다.

    또 말의 뜻을 정확히 모르니까, 말을 잘못 쓰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얼마 전 어느 텔레비전 방송에서 어떤 아나운서가 남자 출연자를 소개하면서 ‘뛰어난 재원입니다’라고 소개했다. ‘재원(才媛)’이라고 할 때의 ‘원’자는 ‘아가씨’라는 뜻으로 ‘재주 있는 젊은 여자’를 칭찬할 때 쓰는 말인데, 남자에게 썼다. 얼마 전까지 방송에서 연애인들 사이에서 널리 쓰이던 ‘엽기(獵奇)’라는 말도 본래 뜻은 ‘기이한 것을 쫓아다닌다’는 뜻인데, 원래 뜻과는 상관없이 아무 데서나 썼다. 이러고서도 한글날 특집 방송을 할 체면이 있을까?

    대학교수나 저명인사들의 강연 을 들어보면 전체의 3분의 1은 영어나 외래어를 쓴다. 상당한 영어지식이 없으면 알아듣지 못한다.

    CEO, MBA, CPU 등 영문 약자가 너무 많다. 이런 약자는 미국인, 영국인들도 모르는 것이 있다고 한다. 거리의 간판은 영어 등 외래어가 계속 늘어나 순수한 한국어로 된 간판은 거의 없다.

    말은 그 민족의 정신을 담은 것인데, 외국어에 침범당해 자리를 빼앗기거나 파괴되거나 오염되면, 그 민족의 정신마저 손상돼 결국 그 민족은 존재할 수 없다.

    국제화시대에 민족이 무슨 필요가 있느냐고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지만, 민족이 없으면 그 문화가 없고, 자기 고유의 문화가 없으면 국제사회에서 미개인으로 무시당한다. 사람도 개성이 없이 남을 따라하기만 하면 존재가치가 없듯이 국제화 시대일수록 각 민족 고유의 문화를 잘 보존·발전시켜야 국제사회에서 인정을 받는다. 공자(孔子)와 유교를 천대하던 중국이 근래에 와서 극도로 높이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한글날을 맞아 만신창이가 된 우리말을 살펴보고, 각자 심각하게 한번 생각을 해보기 바란다.

    *滿 : 가득할 만. *身 : 몸 신.

    *瘡 : 다칠 창. *痍 : 다칠 이.

    경상대 한문학과 교수

    ※소통마당에 실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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