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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1) 난재역사(難哉譯事) - 어렵도다! 번역하는 일은

허권수의 한자로 보는 세상

  • 기사입력 : 2016-09-27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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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등학교 때 은사 한 분이 필자가 한문을 전공하는 것을 알고 자기 조상의 문집 번역본을 부쳐 보냈다. 몇 군데 읽어 보았더니 거의 한 군데도 맞는 곳이 없었다. 문리(文理)가 전혀 나지 않은 사람이 억지로 번역한 것이었다.

    서울대학교 모 교수가 ‘서포만필(西浦漫筆)’을 번역해서 유명한 출판사에서 내었는데, 살펴보니 워낙 많이 틀려 책이 되지 않았다. 아마 서울대학교 교수라고 하니까 유명 출판사에서 번역을 의뢰한 것 같고 자신은 못한다는 소리를 할 수 없어 번역을 한 것 같다.

    서애(西厓) 유성룡(柳成龍) 선생의 한시를 대학교수인 그 후손이 번역해서 책을 냈는데, 역시 잘못된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잘못 번역하는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다. 실력이 안 된다는 것은 자기가 알 것인데 왜 이런 번역을 할까? 돈과 이름 때문이다. 번역을 하면 번역료와 책을 냈다는 이름도 얻을 수 있다. 또 ‘설령 좀 틀렸다 해도 세상에 누가 알겠나?’ 하는 방자한 마음에서 일을 맡아 엉터리 책을 만들어 낸다.

    한문은 단순한 어학과 달라서 우리나라나 중국의 옛날 문화 및 제도 등을 전반적으로 알지 못하면 번역을 할 수 없다.

    실력이 안 되면서 번역을 맡아서 돈이나 이름을 얻으려는 사람은 자기에게 번역거리가 오도록 그물을 친다. 그 결과 번역할 만한 사람이 번역을 맡지 못하도록 방해를 한다. 번역을 담당하는 국가기관이나 가장 번역을 잘할 수 있는 사람에게 맡겨야 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고, 이리저리 연줄로 번역을 맡긴다. 그러니 최상의 번역이 나올 수 없다.

    국보급 문화재를 보수할 때 일류 기술자가 보수해야 하겠는가, 잘 아는 삼류 기술자가 보수해야 하겠는가? 자기가 잘 아는 사람이라고 삼류 기술자에게 맡긴다면, 국보를 파괴해 역사에 죄를 짓는 것이다. 번역할 수 없는 사람이 번역을 맡는 것도 마찬가지다.

    북경대학에 채홍빈(蔡鴻濱)이라는 교수는 아주 신중하게 번역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의 번역 방식은 이렇다. 먼저 번역할 책을 끝까지 다 읽는다. 그 다음에는 저자에 대해서 철저히 연구를 한다. 그 저자의 다른 저서도 필요한 것은 다 읽고 저자의 관심분야도 연구한다. 예를 들면 저자가 소크라테스에 심취했다 하면 또 소크라테스에 관계된 책을 읽는다.

    철저히 준비한 뒤 번역을 하는데 단어 하나를 고르기 위해서 10일을 소비한 적도 있다. 이렇게 해서 원고를 완성하면 반드시 3번 원고를 바꾸어 쓴다. 그리고는 자신이 9번 교정을 본 뒤에 내놓는다.

    모든 사람이 이렇게 할 수는 없지만, 실력이 안 되는 사람은 번역을 의뢰받더라도 사양하고, 실력이 되는 사람은 오만을 부리지 말고 정성을 다해야 올바른 번역이 될 수 있다.

    *難 : 어려울 난. *哉 : 어조사 재. *譯 : 번역할 역. *事 : 일 사.

    경상대 한문학과 교수

    ※소통마당에 실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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