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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포럼] 고향의 추억과 의미가 사라진다- 하봉준(영산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 기사입력 : 2016-09-13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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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다의 ‘고향의 맛’ 광고는 가장 성공적인 광고캠페인 중 하나로 꼽힌다. 1970년대까지 국내 조미료 시장은 미원이 석권하고 있었다. 제일제당이 미풍이란 브랜드로 끈질기게 공략했지만, 조미료의 대명사로 불리던 시장 1위 미원의 아성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제일제당이 기존의 화학조미료와 차별화된 천연조미료 다시다를 출시한 때가 1975년으로, 이후 천연조미료 시장이 꾸준히 확대되면서 마침내 전체 조미료 시장에서 미원을 제치게 된다. 이러한 다시다의 성공에는 ‘고향의 맛’ 광고캠페인이 크나큰 기여를 했다.

    ‘고향의 맛’ 캠페인은 1980년대 후반부터 시작해서 2000년대 초반까지 일관된 콘셉트로 실시됐고, 우리 민족 특유의 귀소본능에 남북분단으로 인한 실향민과 급속한 산업화에 따른 대규모 이농현상이 맞물려 소비자의 공감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런데 2000년대 중반 이후 다시다 광고에서 ‘고향의 맛’ 표현은 점차 보이지 않게 된다. 한국인의 전통적 정서에 호소해 성공한 또 다른 대표적 광고사례인 초코파이의 ‘정’ 캠페인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데 ‘고향의 맛’ 캠페인은 왜 사용되지 않는 걸까?

    태어난 곳에서 줄곧 평생을 보내는 이들에게 고향은 특별하게 다가오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어릴 적 추억이 가득한 고향을 떠나 머나먼 타지에 사는 이들에게 고향은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고향이란 말만 들어도 절로 그리운 추억들이 샘솟는다. 고향은 산과 들, 시내에서 놀던 갖가지 추억을 담고 있다. 부모, 형제, 친척 그리고 함께 어울리던 벗들에 대한 기억도 함께한다. 힘든 객지 생활에서 고향을 떠올리며 위안을 삼고, 고향 분들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꿈을 키워나가게 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수구초심에서 나타나듯이 고향은 타향살이에 지친 이들에게 생을 마치고 싶은 마지막 안식처이기도 하다. 고향은 삶의 출발이자 버팀목이며 최종 귀착지인 것이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소중함으로 우리는 명절 때면 고향을 찾게 된다. 고향을 찾지 못하는 실향민들에게 고향은 떠올리기만 해도 설움이 복받치는 이 세상 가장 슬픈 단어이기도 하다.

    그러던 고향이 이제 점차 사라지고 있다. 어릴 적 놀던 곳, 다니던 길과 하천의 다리, 태어나 살던 집들은 너무 달라져 낯설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던가. 산과 들, 하천마저도 옛 모습을 찾기 힘들다. 산천이 변해도 어릴 적 알던 이들이 반겨주고 지난날을 함께 회상하며 담소를 나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어릴 적부터 아는 이들이 많이 있는 곳이 바로 고향이라고 자족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모두들 고향을 하나둘 떠나고 마지막으로 지키던 이들마저 한분 한분 돌아가신다. 고향에는 반겨줄 이도, 잠깐 들러 쉬고 갈 수 있는 쉼터도 찾기 힘들다. 자연, 사람 어느 관점에서 보아도 고향은 멀어져 간다.

    젊은이들에게 고향은 한층 낯설 것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가르치는 대학생들에게 고향에 대해 물어보았다. 고향 하면 무슨 생각이 드느냐고. 역시나 학생들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별다른 느낌이 떠오르지 않는 것이다. 요즘 아이들은 콘크리트 건물과 시멘트 보도블록으로 무장한 도시에서, 이웃과 단절하며 학원에서 집으로 쳇바퀴 돌 듯이 공부에 시달린다. 이러한 삶 속에서 그립고 정겨운 추억들이 얼마나 생겨날까 의문이다. 한때 우리의 삶에서 가장 감동을 불러일으키던 고향이 이제 광고에도 사용하지 못하는 의미 없는 단어로 퇴색되고 있다. 추석을 맞아 고향을 찾는 이들에게 고향은 어떠한 의미로 다가올까? 성묘를 위해 잠깐 스쳐 지나가는 장소 이상의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가까운 미래에 고향은 구시대의 유물인 사어(死語)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때가 되면 고향을 주제로 한 수많은 문학예술 작품이 아무런 감동도 일으키지 못할까 봐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하봉준 (영산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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