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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0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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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습기자 생존기] 48기 안대훈 (2) 선배님! 할 말 있습니다

  • 기사입력 : 2016-09-09 15: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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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한 행동에 내가 화들짝 놀랄 때가 있다. 이것이 진정 내 입에서 나온 말인지, 내가 취한 액션(Action)인지. 그 발언, 그 행동을 하자마자 후회가 물밀듯 밀려온다. 아니야. 아니야. 제발 아니라고 해줘. 애써 현실을 부정하고, 태연한 척 해보지만 타는 속을 달랠 길은 없다. 그날이 내게 그런 날이었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그날의 내게 정신 좀 차리라고 핵꿀밤을 먹이고 싶다.
     
    첫 현장취재 동행. 처음이라 난 좀 얼어 있었다. 선배는 내 긴장을 풀어주려는 듯 일상적인 대화를 건네며 편한 분위기를 조성했다. 그런 선배의 배려가 고마웠다. 덕분에 많이 릴렉스(relax)됐다. 너무 풀어진 게 아닐까, 할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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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장을 거침없이 누비는 기자. 생각만 해도 짜릿하다. 기자를 꿈꾸는 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그런 기자의 모습을 상상해봤을 것이다. 음모와 비리를 파헤치고 약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내가 점점 오바(Over)하고 있다는 사실을 여러분들도 느꼈을 것이다. 이때 내 마음은 이미 고삐 풀린 망아지와 같았다. 엄마 손잡고 처음 동물원을 찾은 아이처럼 여기저기에 눈길 주기 바빴다. 사진으로 봤던 현장을 기웃거리고, 피해자들의 한탄에 감정이입하는 데 정신이 팔렸다. 취재 후 기사를 써야 한다는 책임감은 온데간데없었다. 물론 내 기사가 신문 지면에 올라가진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현장에서 손 놓고 유유자적하는 모습이 수습기자의 자세는 아니다. 그건 언론사에 견학 온 학생이다.
     
    그런 내 상태를 알아챈 선배가 물었다. 오늘 취재한 것으로 기사 써보라고 할 건데 메모는 하고 있어요? 한껏 업(UP)된 상태였던 나는 선배에게 감히! 이렇게 말했다. 그것도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선배님 그런 건 미리 말씀해 주셨어야죠." 덜컥. 신이시여. 이 어리석은 중생을 어찌해야 합니까.
     
    분명 실언이고, 망언이었다. 무슨 생각으로 이런 말을 했던 걸까. 눈앞이 캄캄했다. 기자에게 메모는 생활이다. 숨 쉬듯 해야 하는 일이 메모다. 게다가 이곳은 취재현장이 아닌가. 오히려 메모하지 않는 게 이상하다. 그런데 나는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주워 담을 수 없는 말을 내뱉었다. 요놈의 주둥아리! 하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이후 선배가 내게 몇 마디 더 했던 것 같다. 그 순간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내 입을 통해 나간 말이 부메랑이 돼 나를 강타했기 때문이다. 대신 앞서 계단을 걸어 올라가는 선배의 뒷모습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선배 그게 아니고요. 정말 생각 없이 튀어나온 말입니다. 죄송합니다. 붙잡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나는 뒤늦게 열심히 메모했다. 좋은 기사로 잘못을 만회하고 싶었다. 복귀 후 내가 메모한 내용으로 기사를 써 봤다. 정보가 부족해 기사 작성이 어려웠다. 아.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기자는 '기사로 말한다'고 했던가. '수습'이지만 나도 '기자'이기 때문에 말보단 글로, 기사로 선배에게 진심을 전하고 싶었다. 작은 변명을 '수습기자 생존기'에 올리는 이유다. 아마도 선배는 이미 잊었을 테지만 나는 아직 그날을 잊지 못했다.
     
    선배. 그날 죄송했습니다. 제 변명이 엎질러진 물을 다시 담기 위해 빨대로 흡흡 거리는 격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진심을 알아주십사 이렇게 글을 남깁니다. 메모장, 벌써 3번 갈았습니다. 이젠 메모도 열심히 하고 기자로서 책임감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선배 덕분입니다.
     
    유체이탈하지 않도록 정신 바짝 차리겠습니다. 수습기자 안대훈, 000 선배님께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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