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4월 24일 (수)
전체메뉴

[수습기자 생존기] 48기 안대훈 (1) 우물쭈물 눈알만 굴리다 끝날 줄 알았지?

  • 기사입력 : 2016-09-02 14:30:43
  •   

  • 오늘 이야기는 기자보다 '수습'에 방점을 찍었다. 기자도 대한민국 1만1440개 직업(2014년 기준) 중 하나다. 어느 직장이든 수습 또는 신입이 있다. '수습'이란 타이틀을 단 우리들이 공감할 이야기 하나쯤 해보고 싶었다.
     
    2016년 8월 2일, 경남신문 2면 우측 하단에 '합격자 100040(안대훈)'이 게재됐다. 기뻤다. 대학도서관 신문대 앞에서 나도 모르게 소리쳤다. "학!" 공공장소였기 때문일까. 기쁨과 절제가 잘 버무려진 악센트 있는 소리였다. 내 목소리가 그나마 이성의 끈을 놓지 않아 다행이었다.

    메인이미지
    2016년 8월 2일자 경남신문 2면. 우측 하단에 게재된 '합격자 100040(안대훈)'.
     
    /////같은 달 3일, 합격 등록하는 날이었다. 무슨 객기인지 반바지를 입고, 한껏 껄렁한 멋을 부린 채 신문사로 갔다. 다 날씨 때문이다. <이솝우화>에서처럼 태양과 바람이 내기를 했고, 지나가던 나그네인 내가 그들 내기의 대상이 됐던 셈이다. 긴바지가 반바지가 된 데 대한 옹색한 변명을 해봤다. 그런데 둘의 내기가 지나치게 길어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건 나뿐인가. 도대체 어디까지 벗어야 만족할지.////////
     
    대망의 첫 출근 날. 막상 발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조금 두려웠다. 잘 할 수 있을까, 잘 지낼 수 있을까. 걱정이 불필요한 줄은 알지만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낯선 곳이 주는 두려움, '신입'이라면 누구나 겪는 통과의례일 것이다. 나는 콩알만 해진 간(肝)을 품고 회사로 향했다.
     
    기자가 되면 곧바로 현장에 투입되는 줄 알았다. 그래서 언제든 튀어날 수 있게 내 몸은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었다. 간은 여전히 콩알만 했지만(ㅠㅠ). 그런데 웬열! 일주일째 회사 밖은 구경도 못했다. 첫 주는 사내교육, 둘째 주는 현장 동행과 사내교육이 병행됐기 때문에 회사 내 머무르는 시간이 더 많았다. 무더운 여름을 피할 수 있어 좋았지만 조금 답답했다. 실은 답답한 것보다 더 큰 애로사항이 있었다. 그게 뭐냐고? 궁금하면 다음 주 이 시간에. Bye Bye

    메인이미지
     
    거~ 뭐라고 그런 걸 고민하고 그래, 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입사 후 첫 애로사항은 '인사'였다. 넓은 편집국 사무실 내에는 많은 선배님들이 계신다. 이곳에서 인사 타이밍 잡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정말 눈알이 핑핑 돈다. 내가 분석한 바, 하루 인사 타이밍은 크게 잡아 세 번 있다. 한 번은 출근할 때, 두 번은 퇴근할 때이다. 이 2개는 쉽다. 적절한 타이밍이 필요치 않다. 그냥 하면 된다. 문제는 '근무 시간' 때다. 선배님들은 각자 취재를 하시고 회사로 돌아오시거나 또는 안 오시기도 한다. 같은 시간에 선배님들이 모두 편집국으로 들어오시는 경우는 드물다. 이런 상황에서 나는 생각했다. 한 분 한 분 선배님 모두에게 인사를 드려야 하겠지? 흠~ 쉽진 않겠지만 괜찮아 나는 튼튼한 수습이니까. 아직 인사하다가 허리 부러진 사람은 못 들어봤어. 괜찮을 거야. 허허허. 그런데 취재를 마치고 선배님이 들어오실 때마다 벌떡! 일어나 우렁찬 목소리로 인사하면 일에 집중하시는 다른 선배님들에게 폐를 끼치는 건 아닐까. 생각이 많으면 행동이 굼뜬 다더니, 결정을 내리지 못한 내 인사는 어정쩡하기 그지없었다. 엉덩이는 의자와 붙은 것도 떨어진 것도 아닌 묘한 밀당관계인 상태에서, 소리는 큰데 그 소리가 다시 목구멍으로 들어가는 희한한 발성법으로 인사하기 십상이었다.
     
    고민 끝에 해결책은 결국 '으으으리'의 보성이 형이 말한 '대도무문(大道無門)'이었다. 당연한 도리를 행하는 데에 거칠 것은 없다!!! 그래서 타이밍 따윈 무시하기로 했다. 언제든 편집국에 선배님이 들어오시면 인사를 했다. 업무에 방해가 되고 내 행동에 무리가 있다면 선배님들이 제지해 주시리라 믿었다. '수습'은 원래 그렇게 배우고 익히는 게 아닐까, 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좀 편했다.

    메인이미지

    대도무문의 기운으로 퇴근할 때도 정치부, 경제부, 문화체육부, 사회부, 뉴미디어부, 사회2부, 사진부, 편집부, 광고팀을 모두 돌았다. 사실, 그렇게 인사하고 퇴근길에 조금 후회했다. 한 번 이렇게 했으니 앞으로도 이렇게 해야겠지? 허리야 미안해. 평생 함께할 운명공동체지만 고통은 니가 다 감수하는구나. 다행히 퇴근 인사는 그렇게 한 지 일주일 만에 47기 선배님의 조언으로 허리에게 좀더 유익한 방향으로 바뀔 수 있었다. 역시 이건 아니다 싶으면 선배님들이 알맞게 조율해 주시는구나. 든든했다.
     
    '인사'를 예로 들었지만, 수습기간 동안 겪게 될 모든 상황에서 나는 앞으로 '대도무문'할 생각이다. 어차피 배우고 익히는 시간이지 않은가. 우물쭈물, 눈알만 굴리다 끝나기에 수습은 아까운 순간이다.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안대훈 기자의 다른기사 검색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