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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롱] 일상탐독 (26) 라우라 에스키벨/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 기사입력 : 2016-08-12 14: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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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먼저 냄비에 물을 끓여 멸치 다시를 낸다.
     김치는 쫑쫑 썬 것을 쓴다.
     김치 한포기를 4등분해 한 등분만 쓰는 것이 좋다.
     김치가 주재료이지만 과하게 들어가면 짜다.
     여기서 중요한 건 '쫑쫑' 써는 것이다. 다지는 정도로 잘게 썬 것은 별로다.
     아삭하게 씹히는 맛이 없기 때문이다.
     다시에 썰어 둔 김치를 넣어 끓인다. 은은한 다시 향이 김치에 배어들도록.
     때문에 슬쩍 끓여선 안 된다.
     수화기 너머에서 그녀가 말한다. 야야, 니 그거 대충 끓이면 안 된다.
     그녀의 말을 그대로 옮기자면 '바글바글' 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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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치가 어느 정도 익었다 싶으면 밥을 넣는다.
     식은 밥이 있다면 그것을 쓰는 것이 가장 좋을 것이다.
     대략 한 공기 반에서 두 공기가 적당하겠다.
     이번엔 '푹' 끓인다.
     그녀는 내게 '밥이 죽처럼 되어야 한다'고 한 번 더 강조한다.
     밥이 죽처럼 되었다면 대파를 썰어 넣고 달걀을 휘휘 푼다.
     나는 그녀가 읊어주는 순서에 따라 대파를 꺼내 어슷썰기를 하고 달걀을 톡톡 두드려 깬다.
     물론 머릿속에서, 상상만으로.
     이때 그녀가 대뜸 약을 올린다.
     그런데, 니, 이거는 몰랐을 걸?
     마지막에 참기름 한 방울 떨어뜨리 보라모. 꼬소하다이.
     참기름 한 방울이 그녀만의 화룡점정인 모양이다.
     하지만 나는 대파와 달걀, 참기름 모두가 생략되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그것들은 부수적인 것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내 혀에 그것들의 맛은 각인되어 있지 않다.
     
     ……아. 아니. 아닐지도 모르겠다.
     '사실은' 그 속에 대파와 달걀, 참기름이 듬뿍 들어있었는지도 모른다.
     대파에서 우러난 향취가, 달걀의 보들보들한 식감이, 참기름의 고소함이 레시피에 있어 '필요충분 조건'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기억을 더듬는 것은 내 전문분야가 아니다.
     대체로 내가 가진 추억들은 풍부해지기보다 간결해지는,
     첨가보다는 축약에 가까운 형태이니까.
     때문에 나는 그녀에게 '대파랑 달걀도 넣었었나?'하는 반문은 하지 않는다.
     그렇게 오늘의 통화는 끝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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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음식은 동짓달, 추운겨울에 먹는 거였다.
     만드는 과정은 딱히 방법이랄 것이 없을 정도로 비교적 간단했다.
     멸치 다시에 김치 넣고 밥 넣고 대파 달걀 참기름 넣고. 끝이다.
     그러나 간단했기에 깔끔하고 시원했다.
     종종 그 음식을 떠올렸다.
     그것이 대접에 담겨 내 앞으로 오던 순간을 떠올렸고,
     숟갈로 떠 입에 막 넣기 전 혀에 흥건히 고이던 침을 떠올렸다.
     그것을 준비하던 저녁 부엌에서 뭉근히 번져오던 냄새,
     그 냄새를 따라가 보면 앞치마를 두르고 주걱을 든 채 가스레인지 앞에 서 있던 그 사람도.
     
     거칠 것 없는 시골 어른들 어법을 빌리자면
     여자 나이 서른둘, 밑으로 아들딸 하나씩 쑥쑥 뽑아내고 셋째를 배에 넣고 있어도 무방할 나이.
     그러나 나는 아직 어린 애다.
     아들딸은 고사하고 시집이라는 델 놀러가 본 적도 없다.
     자식 안 낳아봤으면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애라던데, 그러니 나는 아직 애다.
     하지만 맹탕 철부지는 아니다.
     나름대로 철은 나기 시작했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중이다.
     직장 다니며 독립한답시고 나와 살면서부터
     비로소 나는 '먹을 것'에 대해 진지하게 고찰하기 시작했다.
     '무엇으로 입에 풀칠을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시작될 때, 인간은 진짜 철이 나기 시작하는 것이 아닐까.
     이것이 내가 서른이 넘어 새롭게 내린 '철이 든다'는 말의 정의(定義)다.
     
     어쨌거나 '무엇을 어떻게 먹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면서
     나는 그 음식과 그 음식을 내 입맛에 딱 맞게 만들어주던 한 사람을 자주 떠올리게 됐다.
     그리고 그 생각이 간절하다 못해 눈시울이 붉어지고 마음마저 헐떡일 때,
     고모에게 다짜고짜 전화를 걸었다.
     '고모야. 있잖아. 겨울에 할머니가 자주 해주던 김치국밥 있잖아. 그거 어떻게 만들어? 처음부터 설명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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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맛'의 계보는 아쉽게도 반드시 족보를 따르지 않는다.
     음식 손맛은 대체로 어머니에게서 딸에게, 딸에게서 또다시 그녀의 딸에게 전해진다.
     절대적으로 그렇다는 것은 아니고, 흔히 그렇다는 말이다.
     감사하게도 고모님은 들이닥치듯 거는 나의 전화를 늘 아무렇지 않게 받아주신다.
     아마도, 짐작하건데, 고모도 고모의 방식대로
     내게 김치국밥 만드는 순서를 읊조리며 자신의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것이 아닐까.
     나의 할머니, 그녀의 어머니, 박영기 여사는 2014년 5월 세상을 떠났다.
     전날 저녁까지 이런저런 이야기도 하고, 웃고, 잘 자라는 인사까지 했는데, 자는 중에 돌아가셨다.
     '자는 잠에 가면 얼마나 좋겠노'가 입버릇이었는데, 그것은 하룻밤새 거짓말처럼 현실이 됐다.
     
     나는 맞벌이를 하던 부모님 대신 조부모님 손에 어린 시절을 보냈다.
     나는 그들의 품에 혜성처럼 떨어진 첫 손주였고, 첫사랑이었다.
     두 사람의 장례식장에서 가장 서럽게 운 건 나였다.
     일방적 사랑의 수혜자는 반드시 그 대가를 치러야하는 법이다.
     그리고 아직 그 사랑은 끝나지 않은 것 같다.
     나는 지금, 이 더운 여름날, 쨍쨍 내리쬐는 뙤약볕 아래서,
     머리를 양갈래로 총총 땋은 다섯 살 꼬마와 그 아이를 지켜보던 두 사람의 사랑스런 눈빛,
     그리고 그들 앞에 놓여있던 따뜻한 김치국밥의 맛을,
     아주 절실하게 떠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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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다란 양푼에 달걀노른자 5개와 달걀 4개, 설탕을 넣는다. 반죽이 걸쭉해질 때까지 휘젓다가 달걀 2개를 더 집어 넣는다. 계속 휘젓다가 반죽이 다시 걸쭉해지면 달걀 2개를 더 첨가한다. 달걀을 2개씩 깨서 모두 다 넣을 때까지 이 과정을 반복한다. 페드로와 로사우라의 웨딩 케이크를 만들기 위해 티타와 나차는 이 요리법에 있는 양을 열 배로 늘려야 했다. 케이크 한 개가 18인분인데 180명을 위한 케이크가 필요했던 것이다. … 티타는 땅이 꺼져 내려갈 듯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나차가 옆에 있다가 티타의 손에서 주걱을 부드럽게 빼내고는 그녀를 꼭 안으면서 말했다. '얘야. 울어도 괜찮아. 실컷 울어라. 내일은 네가 우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다. 그것도 로사우라 앞에서는.' 나차는 하염없이 흐르는 티타의 눈물을 앞치마로 닦아주었다. 티타의 눈물이 들어간 케이크 반죽은 묽어져서 마무리하는데 평소보다 더 많은 시간이 걸렸다. … 티타는 다음날 결혼식에서 그 어떤 심기의 동요도 일절 밖으로 드러나지 않도록 신경 써야 했다. 페드로와 시선을 마주치지 않는다면 그럴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만에 하나 페드로와 시선이 마주친다면 여태껏 애써 침착하고 담담한 척 감춰왔던 게 모두 수포로 돌아갈 수도 있었다. 티타는 로사우라 언니보다도 자신에게 사람들의 이목이 더 많이 쏠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하객들은 단지 예의상 축하하러 온 것이 아니라 티타가 어떤 모습으로 고통받고 있는지 보고 싶어서 온 것이었다. 티타는 사람들 옆을 지나칠 때마다 등 뒤에서 소곤거리는 소리를 또렷하게 들을 수 있었다. '티타 봤어? 불쌍하기도 해라! 언니가 자기 애인과 결혼 하다니! 전에 페드로와 티타가 마을 광장에서 손잡고 있는 걸 봤는데. 얼마나 행복해 보이던지!' '정말? 언젠가 한창 미사 보던 중에 페드로가 향수 뿌린 연애편지를 티타한테 전해 주는 걸 봤지 뭐예요!' …결혼식 연회에서는 이상한 광경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곳에 있던 사람들 모두 케이크를 한 입 깨무는 순간 걷잡을 수 없는 그리움에 휩싸였던 것이다. 눈물은 이 괴이한 식중독의 첫 번째 증세에 불과했다. 모든 하객들은 모두 옛사랑을 그리워하며 안뜰이나 뒤뜰, 화장실로 흩어졌다. 모두 마법에 걸린 것 같았다. 몇몇 운 좋은 사람들만 제때 화장실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마당 한가운데서 단체로 함께 토해야 했다. 로사우라 역시 구역질을 하면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야 했다. 로사우라는 친지들과 친구들이 토해 낸 구토물이 웨딩드레스에 묻지 않도록 애썼지만 안뜰을 지나가다 미끄러지는 바람에 웨딩드레스는 온통 구토물 범벅이 되었다. 그리고 티타가 케이크에 뭔가를 넣었다는 생각은 절대 바뀌지 않았다. 티타는 그 안에 다른 게 들어갔다면 케이크를 만들면서 흘린 눈물밖에 없다고 설명했지만 납득시킬 수는 없었다.' - 민음사/라우라 에스키벨/'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49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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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상탐독 전편에 두고두고 읽는 책에 대해 언급했었다. 라우라 에스키벨의 '달콤 쌉싸름한 촛콜릿'도 그런 책 중 하나다. 착잡해진 마음을 일으켜 세워야 할 때, 다른 어떤 가치보다 사랑이 우선한다는 사실을 확인해야 할 필요가 있을 때, 이 책을 다시 읽는다. 이 책은 음식이라는 소재와 부엌이라는 공간을 한데 버무려 '요리문학'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열었다. 주인공 티타는 '막내 딸은 죽을 때까지 결혼하지 않고 어머니를 돌봐야 한다'는 가문의 전통에 따라 연인 페드로와 결혼하지 못한다. 페드로는 티타와 가까이 있기 위해 그녀의 언니 로사우라와 결혼하지만, 티타와 페드로의 사랑은 22년 동안 플라토닉하게, 또 에로틱하게 지속된다. 티타는 부엌에서 다양한 음식을 선보이며 신비로운 세계를 창조하고, 자유와 사랑을 자신만의 요리로 표현한다. 책은 모두 12챕터로 이루어져 있는데, 각 장을 1년 12달로 나누어 각 달에 멕시코 사람들이 즐겨먹는 대표적인 멕시코 음식 요리법을 소개한다. 특히 책 곳곳에 펼쳐지는 마법적이고 동화적인, 남미문학 특유의 전개는 무척이나 환상적이고 아름답다.

      김유경 기자 bora@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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