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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5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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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마산 성호동 꼬부랑길마을 노인들의 힘겨운 여름나기

“어젯밤엔 딱 죽는구나 싶었지”

  • 기사입력 : 2016-07-31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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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1일 정오를 조금 지난 시간, 창원시 마산합포구 성호동 꼬부랑길. 창원의 대표적인 달동네이자 벽화마을로도 유명한 이곳은 이날 찜통더위 때문인지 인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 마을 어느 곳에서도 마산항이 내려다보일 정도로 탁 트인 전망이 있지만, 이 때문에 내리쬐는 햇볕이 더욱 강렬했다. 햇볕에 달궈진 슬레이트 지붕 위로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좁은 골목을 따라 심긴 화분 속 식물들은 잎사귀가 누렇게 말라죽은 지 오래였다.

    “아이고 날도 더워 죽겠는데 와 이리 돌아다니노.”

    취재진을 향해 한 할머니가 말했다. 할머니에게 “날도 더운데 밖에 나왔냐”고 묻자 “밖에 말린 이불을 걷으러 나왔다”고 했다.

    여든여덟 살인 이숙자 할머니는 올해가 유난히 덥다고 강조했다. “이래서는 사람이 살 곳이 못 된다. 날이 이렇게 더워서 어떻게 살라고….”

    밖에 다른 이들은 없냐는 질문에 “누가 이 더운 날 나와서 더위를 식히겠냐”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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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일 오후 창원시 마산합포구 성호동 가고파꼬부랑길 벽화마을의 한 주민이 선풍기를 켠 채 수건으로 땀을 닦고 있다. /김승권 기자/
    이 할머니 집에는 에어컨이 있다. 하지만 형편 때문에 에어컨을 줄곧 틀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자식이랑 단둘이서 사는데 전기료가 아까워서 에어컨을 계속 틀 수는 없다. 아이고 빨리 더위가 가든지 해야지 나 원 참”이라며 힘겹게 말을 이었다.

    조금 더 위로 올라가 봤다. 좁은 골목 계단을 따라 몇 분을 올라갔지만 마주친 사람은 없었다. 이윽고 성호동 노임 쉼터에 다다랐다. 하지만 문은 잠겨 있었다. 쏟아지는 땀이 팔과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렸다.

    “해가 져야 사람들이 나올끼다.”

    노임 쉼터 밑에서 한 할머니가 목을 수건으로 닦으며 말했다. 채금순(78·가명) 할머니는 이곳 성호동 꼬부랑길 마을에서 40년째 살고 있다.

    “어젯밤에 잠을 자고 있는데 ‘딱’ 죽는구나 싶었다는 느낌이 들었다니까”라면서 “작년만 해도 이렇게까지 덥지는 않았는데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겠다”고 힘겹게 말했다.

    집에 들어가서 물이라도 마시자는 할머니의 뒤를 쫓았다. 할머니의 집은 마을 중턱쯤에 있었다. 15평 남짓한 이 집에서 채 할머니는 수년째 혼자 산다. 냉장고에서 꺼낸 보리차를 찻잔에 따라 건네며 채 할머니는 “이 동네 사람들은 나이 많거나 혼자 사는 사람이 대부분이다”면서 “요즘에는 날이 더워 좀체 사람을 볼 수가 없다”고 했다.

    채 할머니는 지난해 말 에어컨을 하나 장만했다. 새것은 아니지만 이웃사람이 구해줘서 잘 쓰고 있다고 한다.

    가톨릭 신자인 채 할머니는 이날 오전에 성당을 찾았어야 했지만 더위 탓에 저녁 미사를 가야겠다고 말했다.

    한편 창원기상대에 따르면 이날 창원지역 낮 최고 기온은 36.7도를 기록했으며, 도내 18개 시군 전역에 폭염 특보가 발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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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휘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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