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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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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문화기획] 박태영의 클래식 산책 (4) 이야기가 있는 음악

악장에 담긴 14행 詩로 느끼는 ‘사계’

  • 기사입력 : 2016-07-05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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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알고 들으면 더 재밌는 명곡 속 감춰진 이야기 (上) 비발디 ‘사계’

    ‘이야기가 있는 음악’편에서는 작곡가와 곡에 얽힌 이야기들을 풀어 본다. 지금까지 음악적 지식을 차곡차곡 쌓아왔다면, 이제는 즐겁게 곡을 감상할 차례이다. 우리가 평소에 듣던 곡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알게 되면 위대하게만 느껴졌던 작곡가도 사실 우리와 같은 사람이었다는 걸 느끼게 될 것이다.

    먼저 소개할 곡은 비발디의 ‘사계’. 아마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곡 중 하나일 것이다.

    안토니오 비발디(Antonio Vivaldi, 1678~1741년)의 바이올린 협주곡 ‘사계’는 앞서 말했듯이 오늘날 가장 유명한 클래식 중 한 곡이고, 모두 익히 잘 알고 있듯이 제목에서부터 무엇을 주제로 했는지 알 수 있다. ‘사계’란 말에서 보이듯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주제로 한 곡이며, 곡마다 계절의 느낌이 분명히 드러나는 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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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발디는 베니스의 성 마르코 대성당 소속 바이올리니스트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그로 인해 어릴 때부터 바이올린에 친숙했고, 그 역시 뛰어난 바이올린 연주자였다고 한다. 당시에 비발디는 멋진 연주로 사람들을 매혹시키곤 했는데, 비발디의 연주를 들은 한 독일인 여행자는 “비발디의 연주는 나를 공포에 떨게 할 만큼 환상적이었다”고 말했다고 하니 그 실력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이 간다. 가톨릭 사제였던 비발디는 몸이 허약해 미사를 집전할 수 없게 되자 ‘피에타’라는 고아원의 음악 책임자로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치며 수많은 바이올린 협주곡과 오페라, 종교음악 등을 작곡했는데 그의 뛰어난 연주와 작품에 대한 소문이 멀리 퍼지면서 ‘빨간 머리 사제’라는 별명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사계’는 계절마다 3악장씩으로 총 12곡으로 구성돼 있다. ‘사계’ 협주곡에는 계절의 음악을 설명하고 묘사하는 14행시가 붙어 있고, 출판될 당시에는 악보에 몇 가지 주석이 덧붙여져 있었다. 즉 ‘사계’야말로 비발디가 남긴 진짜배기 표제음악이라고 할 수 있으며, 더불어 표제음악의 대표적인 곡이라고도 할 수 있다.

    앞서 말한 14행시를 읽어보면 계절마다 나타나는 자연의 변화가 그림처럼 자세히 묘사돼 있다. 안락함과 기쁨을 주는 봄과 가을, 인간을 위협하고 공격하는 여름과 겨울이 서로 대비되면서 봄·가을의 이상주의와 여름·겨울의 현실주의가 음악 속에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사계’에 덧붙여진 이 14행시는 작가가 누구인지도 밝혀지지 않고 있지만, 비발디가 자주 쓰던 베니스의 방언이나 철자법이 사용된 것을 보아 비발디 자신이 직접 지었을 가능성이 높다. 혹은 14행시의 바탕이 되는 문학작품이 있었을 가능성도 있지만, 여전히 시를 덧붙인 작가는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이제 ‘사계’를 듣게 된다면, 저 14행시를 다 기억하지는 못하더라도 ‘아, 이 곡은 이런 느낌을 표현하려고 했었지’ 정도는 알고 들었으면 한다. 물론 14행시와 악장을 곱씹어 보며 들으면 가장 좋겠지만 아니어도 상관없다. 어느 계절을 어떤 느낌으로 표현했는지 알게 되지 않았는가!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 그것으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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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의 시작

    먼저 봄을 살펴보면, 음악 자체만으로도 ‘봄이 왔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경쾌하고 명랑하다. 전통적인 바로크 바이올린 협주곡의 형식 그대로 빠름-느림-빠름의 악장으로 구성돼 있다. 아래는 14행시의 내용이다.

    1악장 : 봄이 왔다. 새들은 즐거운 노래로 인사를 한다. 살랑거리는 미풍에 상냥하고 중얼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흘러가기 시작한다. 하늘은 어두워지고 천둥과 번개가 봄을 알린다. 폭풍우가 가라앉은 뒤 새들은 다시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2악장 : 여기 꽃들이 만발한 즐거운 목장에서는 나뭇잎들이 달콤하게 속삭이고, 양치기는 충실한 개를 곁에 두고 잠들어 있다.

    3악장 : 님프들과 양치기들은 전원풍 무곡의 명랑한 음에 맞춰 눈부시게 단장한 봄에 단란한 집 안에서 춤추고 있다.


    ◆잔인한 ‘여름’

    여름의 3악장은 폭풍을 나타내는 4음(G-F-Eb-D)이 고정 동기로 쓰이는데, 이 4음은 자주 등장해 불안과 고통을 암시하고 있다. 또한 거친 폭풍이나 바람, 천둥 등의 이미지가 전 악장에서 자주 나타난다. 여름 협주곡을 묘사하는 시는 다음과 같다.

    1악장 : 이 무더운 계절에는 타는 태양도 사람도 가축의 무리도 활기를 잃고 있다. 들조차 덥다. 뻐꾸기가 울기 시작했다. 산비둘기와 방울새가 노래한다. 산들바람이 상냥하게 분다. 그러나 갑작스런 북풍이 싸움을 걸어온다. 양치기는 갑자기 비를 두려워하며 불운에 떨며 눈물을 흘린다.

    2악장 : 번개, 격렬한 천둥소리, 그리고 큰 파리와 작은 파리, 광란하는 파리떼의 위협을 받은 그는 피로한 몸을 쉴 수도 없다.

    3악장 : 아아, 그의 두려움은 얼마나 옮았던가. 하늘은 천둥을 울리고 번개를 비치고 우박을 내리게 해 익은 열매나 곡물을 모두 쓸어버린다.


    ◆축제와 사냥의 계절 ‘가을’

    여름이 지나가면, 다시 즐겁고 유쾌한 분위기인 가을이 시작된다. 축제인 만큼 주정뱅이도 등장하며, 사냥을 하기도 한다. 사냥을 이야기하는 3악장은 3박자의 경쾌한 음악으로 독주자는 필사적으로 달리는 사냥감을 표현하고, 나머지 현악 파트의 연주자들은 총소리와 개 짖는 소리를 흉내 낸다.

    1악장 : 마을 사람들은 춤과 노래로 복된 수확의 즐거움을 축하한다. 바커스의 술 덕택이라고 떠들어 댄다. 그들의 즐거움은 잠으로 끝난다.

    2악장 : 일동이 춤을 그치고 노래도 그친 뒤에는 조용한 공기가 싱그럽다. 이 계절은 달콤한 잠으로 사람들을 크나큰 즐거움으로 끌어들인다.

    3악장 : 새벽에 사냥꾼들은 뿔피리와 총, 개를 데리고 사냥에 나선다. 짐승은 이미 겁을 먹고 총과 개들의 소리에 지칠 대로 지치고 상처를 입어 떨고 있다. 도망칠 힘조차 사라져 궁지에 몰리다가 끝내 죽는다.


    ◆언젠가는 봄이 오는 ‘겨울’

    겨울인 만큼 곡의 분위기는 무섭고 차갑다. 1악장은 처음부터 겨울의 바람을 나타내듯 날카로운 아티큘레이션(articulation)과 불협화음을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추운 겨울 따뜻한 방안에서 불을 쬐며 느끼는 겨울 특유의 따뜻함을 표현하는 2악장과 따뜻한 남풍의 주제가 나타나는 3악장이 겨울의 추위와 고통을 어느 정도 사라지게 하며 ‘사계’ 전체의 결론을 긍정적으로 이끌어내는 역할을 한다. 겨울은 반드시 봄이 되듯이, 비발디도 춥고 힘든 시기를 지나면 따뜻하고 희망찬 날들을 맞이하게 된다는 사실을 이야기하고 싶었을까.

    1악장 : 차가운 눈 속에서 얼어 떨고 격심하게 부는 무서운 바람에 쉴 새 없이 발을 구르고 달린다. 너무 심한 추위에 이를 악물기도 힘들다.

    2악장 : 불 곁에서 조용하고 만족스러운 나날을 보내는 동안 밖에서는 비가 만물을 적신다.

    3악장 : 얼음 위를 걷는다. 넘어지는 것이 두려워 느린 걸음으로 주의 깊게 발을 내딛는다. 난폭하게 걷다가 미끄러져 아래로 쓰러진다. 다시 얼음 위를 걸어 격렬하게 달린다. 이것이 겨울이다. 그러나 이렇게 해서 겨울은 기쁨을 가져다 주는 것이다.

    정리=이준희 기자 jhlee@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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