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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8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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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속으로] 공립장애인 도서관 설립 앞장서는 경남점자정보도서관 장상호 관장

‘배움 갈증’ 알기에 공립장애인 도서관 설립 앞장섭니다!
6살 때 홍역 앓고 시력 읽어
세상과 유일한 소통 창구 ‘책’

  • 기사입력 : 2016-07-01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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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보화 시대에 비장애인과 시각장애인의 정보 격차는 갈수록 벌어질 것입니다. 보완할 수 있는 역할을 누군가는 해야 하지 않나요.”

    책을 좋아하는 13살 소년은 도서관장을 꿈꿨다. 하지만 시각장애인인 소년에게 ‘앞도 못 보는데 무슨 도서관을 운영하겠느냐’는 핀잔이 돌아왔다. 하지만 그는 해냈다.

    도내 유일의 시각장애인도서관인 경남점자정보도서관의 장상호(58) 관장이 그 주인공이다. 장 관장은 점자정보도서관 건립에 자신의 재산을 출연하고 지난 2013년 창원시 의창구 북면에 새 교육관을 짓기 위해 땅을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건축허가가 나지 않았고 우여곡절 끝에 1년 4개월 만에 허가가 나 지난해 개원했다. 자신의 생애를 걸 만큼 점자도서관에 매진하는 그의 삶의 굴곡이 궁금했다. 지난 28일 창원시 마산합포구 마산장애인복지관 2층에 위치한 경남점자정보도서관을 찾아 장 관장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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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상호 경남점자정보도서관 관장이 점자도서관 분관 건립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김승권 기자/

    ◆도서관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 고향은 부산이다. 아버지가 국제시장에서 쌀가게를 해 집안은 부유했다. 하지만 아버지가 보증을 잘못 서면서 가세가 기울어 거리에 나앉게 됐고 화병으로 부모님이 돌아가셨다. 3살 무렵 큰집에 맡겨졌으나 곧 고아원에서 생활하게 됐다. 홍역을 심하게 앓았지만 치료시기를 놓쳤고 후유증으로 6살 때 시력을 완전히 상실하게 됐다. 이후 부산 송도에 있는 시각장애인시설에서 생활했다.

    어릴 때 책을 유난히도 좋아했다. 하지만 지방에서는 점자책을 구할 수가 없어 서울에 있는 점자도서관에 우편으로 대출을 신청해 받아 보곤 했다. 수호지와 삼국지가 정말 재미있었다. 하루 이틀이면 한 권을 읽었는데 기다리는 데는 한두 달이 걸렸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시설에서 받은 진학상담에서 도서관장이 꼭 되고 싶다고 말했다.

    ‘시각장애인이 무슨 도서관장이냐, 안마나 배우라’는 말이 돌아왔다. 당시 시대가 그랬다. 그때부터 결심이 더 굳어졌다. 두고보자. 꼭 도서관장이 되겠다고.

    ◆우여곡절 많았던 점자도서관 설립=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는 공부를 열심히 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성대학교 국민윤리교육과를 졸업해 교사 자격증도 땄지만 받아주는 곳이 없어 취업할 수가 없었다. 부산의 시각장애인협회에서 일을 하다 사무실 한편에 점자도서관을 조그맣게 만들었다. 정말 소규모였다. 이후 1993년부터 부산시각장애인복지관 관장으로 재직하며 시각장애인들의 자립을 도왔다.

    복지관 관장 임기를 끝낸 후 점자도서관을 본격적으로 운영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경남의 시각장애인들도 부산의 시각장애인복지관을 많이 찾곤 했다.

    2003년 무렵 무작정 경남도청을 찾아가 경남에도 점자도서관을 열고 싶다고 건의했다. 마침 마산장애인복지관이 개원해 2층에 점자정보도서관을 개원했다. 사비 5000여만원을 들였고 옛 마산시와 도비 지원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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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상호 관장이 창원시 마산합포구에 있는 경남점자정보도서관에서 신문을 읽어주는 인터넷 사이트에 접속하고 있다.

    ◆점자정보도서관 분관 북면에 개원= 점자도서관을 열기가 무섭게 회원은 2000여명으로 늘었다. 시각장애인들이 직접 책을 빌리러 오기 힘든 경우도 많아 우편과 택배로 점자 책, 음성 도서 등을 배송하고 있다. 우편 배송료는 무료이다.

    점자정보도서관은 대출 업무 외에 콘텐츠 생산도 담당하고 있다. 녹음실과 점역실(점자번역실)을 마련해 기존의 도서를 음성 도서와 점자 도서로 변환하는 작업을 수시로 하고 있다. 정보화 시대에 점자 도서도 디지털화가 진행돼 이제는 시각장애인들이 점자책보다 CD나 파일 형태의 전자 점자 도서도 많이 빌려보고 있기 때문이다. 점자 교육과 더불어 컴퓨터 교육이 중요해지는 이유이다. 시각장애인들로부터 교육 프로그램에 대한 요구도 많았다. 점자, 컴퓨터 교육뿐만 아니라 독서를 통한 작가와의 만남, 독서문화기행 이외에 하모니카, 기타, 바이올린 등 다양한 음악 프로그램도 열었다.

    하지만 기존 시설 공간은 한계가 있어 그때마다 타 시설을 빌려 이용해야 했고 한계에 봉착했다. 일반도서관도 책 대출 기능 이외에도 시민들과 소통할 수 있는 프로그램의 비중이 높아지는 추세이다. 시각장애인도서관 또한 책 대출로만 기능을 다하는 것이 아니다. 점자 콘텐츠 생산 이외에 교류의 기능이 절실했고 기존 시설로는 충당이 되지 않았다.

    지난해 개원한 북면의 경남점자정보도서관 건립에 개인 땅을 내놓았다. 그런데 허가 나는 데 1년이 넘게 걸렸다. 북면에 있는 개인 땅 일부를 팔아 시설 건립에 보태고 남은 땅은 건립 부지로 내놓았다. 그런데 인허가가 나지 않았다. 부지 용도상 공립도서관 이외에는 사립은 허가가 안 된다는 것이다.

    점자도서관은 공공도서관이다. 관계법령에 따르면 건립이 충분히 가능한데도 허가가 나지 않았다. 다행히 규제개혁위원회에 건의를 해 인가를 받을 수 있었지만 1년 4개월이 걸렸다.

    ◆향후 점자정보도서관 운영 계획= 시각장애인의 가장 큰 장애 2가지는 단독보행의 장애와 문자해독(정보 접근)의 장애이다. 특히 문자해독에 대한 장애는 여러 장애 중에서도 시각장애인만이 갖고 있는 장애이다. 시각장애인들이 갖는 상대적인 정보 빈곤은 갈수록 심해질 것이다. 도서관이 그 격차를 보완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전국의 시각장애인도서관은 서울에 있는 국립장애인도서관을 제외하고 모두가 사립 형태이다. 국립장애인도서관 또한 지난 2006년 국립중앙도서관 내에 지원센터로 처음 생겼다가 2012년에야 국립장애인도서관으로 개편된 것이다. 거의 모든 시각장애인도서관은 필요로 인해 자생적으로 생긴 것이다. 관계법령에도 장애인의 도서관 서비스는 국가의 책무라고 규정하고 있다. 운영을 영속적으로 하기에는 민간의 지원은 한계가 있다. 시각장애인도서관은 국가와 지자체에 책무가 있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좋겠다. 궁극적으로 도립 등 지자체 관할로 운영을 영위하는 것이 목표이다.

    김용훈 기자 yhkim@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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