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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8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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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과 떠나는 세계여행] 태국의 작은 마을 '빠이'

  • 기사입력 : 2016-06-01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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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번 여행은 어디로 갈까? 이번 여행지에서는 무엇을 하며 지낼까? 여행을 계획하다 보면 여행지에 대한 테마를 생각하게 된다.

    자연이 만들어낸 아름다운 풍경을 보러 갈까? 인간이 만든 위대한 역사의 현장을 느끼러 갈까? 아님 현지인들과 소통하며 우리와 다른 문화를 느끼러 갈까? 여행지를 선택할 때는 수많은 이유와 목적이 있지만, 가끔은 특별히 할 것도 특별히 볼거리도 없지만 그냥 어디론가 떠나고 싶을 때, 그래서 뭘 해야 한다는 무언가를 봐야 한다는 압박감에서 벗어나 아무것도 하지 않는 여행을 하는 이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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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국 빠이의 워킹 스트리트 풍경. 여행자들이 거리에서 악기를 들고 연주하고 있다.

    이름난 명소는 아니지만 수많은 여행자들이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듯 찾고 있는 곳. 반나절이면 충분한 도시를 적게는 일주일, 보름, 한 달, 길게는 6개월씩 여행자들의 발목을 잡는 곳이 있다. 태국 북부 매홍손 주의 빠이는 치앙마이에서 140km 떨어진 곳으로 버스로 4시간, 구불구불한 762개의 고개를 지나서야 닿는 작은 산골 마을이다. 관광지라 부르기에도 민망한 곳인데 이 작은 마을에 여행자들이 몰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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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빠이의 유일한 관광 명소인 ‘빠이 캐니언’.


    여행자들은 빠이를 ‘세계 배낭여행자들의 안식처’라 부른다. 여행자들과 얘기를 나누다 보면 자연스레 여행지 추천도 이뤄지는데 빠이는 다녀온 여행자가 나에게 꼭 가보라며 강력추천한 곳이다.

    “빠이에 가면 뭐가 있는데?” “음, 아무것도 없어. 근데 분명 빠이의 매력에 빠지게 될 거야. 아무런 기대도 하지 말고 기회가 된다면 꼭 한 번 가봐.” 특별한 볼거리도 없는데 빠이에 다녀온 여행자들은 하나같이 빠이를 극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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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여행자가 모자를 만들고 있다.

    대체 어떤 곳이기에 수많은 여행자들이 한결같은 반응을 보이는 걸까. 빠이로 향하던 날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거의 2~3초에 한 번씩 나오던 커브길에 멀미를 모르고 살았던 나조차도 762개의 고개를 통과하고는 반 시체처럼 녹초가 돼 버렸고, 인도에서도 무사통과한 설사병이 나서 온종일 숙소에서 병원놀이를 했다. 여행을 다니면서 처음으로 아팠던 날이라 새로운 여행지에 도착한 설렘보단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기력 없이 누워만 있는 게 너무너무 속상했던 날이었다. 길에서 만난 여행자들이 아프고 다치거나 도난을 당한 이런저런 일화를 들을 때면 나랑은 상관없는 일쯤으로 여겼는데, 이틀 동안 꼬박 침대 신세를 지고 보니 남의 일이라 여긴 아둔했던 생각들이 부끄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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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빠이의 유일한 교통수단인 스쿠터.


    아무리 베테랑 여행자일지라도 매 순간이 완벽할 수 없음을 몸으로 제대로 배운 날이었다. 좋은 일들이 많이 일어날수록 더 조심해야 하고 겸손해야 하고 감사해야 함을 또 한 번 깨닫는 나름 철학적(?)인 신고식을 치른 빠이였다. 설사병에서 해방된 후 빠이에서 제일 먼저 한 일은 스쿠터를 배우는 것이었다. 작은 마을이긴 하지만 현지 교통이 따로 없어서 마을 이곳저곳을 다니려면 스쿠터만 한 교통수단이 없었다. 난생처음 스쿠터 타는 법을 배우고 빠이를 돌아다닌 그날의 바람 냄새를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고즈넉하고 평화로운 들판을 스쿠터를 타고 달리면서 느낀 바람과 소박한 풍경이 그냥 좋았다. 1km 남짓한 워킹 스트리트에는 개성 있는 아이디어 숍들이 즐비했는데 아기자기한 소품들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했지만 밤이 돼 거리가 야시장으로 변신을 하니 개성 있는 작은 가게보다 더 개성 있는 히피들이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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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빠이의 야시장 거리.


    여행을 하면서 틈틈이 찍은 사진이나 그림들을 갖고 나온 여행자들, 거리의 악사가 되어 버린 여행자들, 팔찌며 발찌 등을 직접 만들고 있는 여행자들, 여행자의 신분에서 예술가로 변신한 사람들이 만들어 낸 열정이 야시장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여행자들, 예술가들, 히피들과 어울리며 나눴던 이야기들이 가슴을 뜨겁게 만들었다. 음악을 하는 몇몇 친구들이 ‘꿍짝’이 맞아 하루가 멀다 하고 음악회가 열리곤 했다. 마땅한 공연장이 없기에 그냥 숲속 공터에서 재즈를 연주하면 그날 숲속에는 빠이를 여행 중인 모든 이들이 그곳에서 음악파티를 하곤 했다. 나랑 같은 여행자구나 생각한 친구는 알고 보니 예술가였고 예술가구나 했던 친구는 여행자가 되고 그곳에서 만남은 매 순간 신기하고 흥겨웠고 따뜻했고 감사했다. 여행자들의 살아있는 에너지가 모이는 신비한 여행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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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먹고 마시는 소비형 여행이 아니라 마음에 쉼표 하나를 찍을 수 있는 여행이었다. 3일 일정으로 왔다가 내일이면 다른 곳으로 가야지 매번 마음만 먹고 결국 보름이라는 시간을 머물렀다. 떠나려고 하면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낯선 여행지에서 약속이 생겨 파티에 초대받거나 자선 음악회를 즐기러 다녔다. 빠이에서 보낸 보름의 시간. 떠날 때는 항상 아쉬움이 남지만 이곳 빠이는 더 짙은, 더 깊은 아쉬움이 남는다. 특별한 건 없지만 특별함이 있는 곳. 하릴없이 보낸 시간들이지만 늘 소소한 에피소드가 가득한 곳. 빠이를 수식하는 수많은 표현들이 비로소 공감이 간다. 앞서 다녀간 여행자들이 왜 그토록 그리워하는지, 빠이를 여행 중인 여행자들이 왜 쉽사리 떠나지 못하는지, 그리고 왜 빠이에 다시 돌아오는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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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과 그림을 갖고 나온 여행자들.


    여행 중인 그 순간에도 그 도시가 그리웠던 건 처음이었다. 만약 일상의 삶에 지쳐 어디론가 떠나고픈 맘이 들 때 어디로 가야 하는지 뭘 해야 할지 막막함이 들거나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로움을 만끽하고 싶다면 빠이로 떠나보는 건 어떨까? 빠이에 도착한 순간 히피가 돼버린 나를 만날 수 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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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미정

    △ 1980년 창원 출생

    △합성동 트레블 카페 '소금사막'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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