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3월 28일 (목)
전체메뉴

[열린포럼] 가족 공동체의 회복이 절실하다 - 하봉준 (영산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 기사입력 : 2016-05-24 07:00:00
  •   
  • 메인이미지


    우리 사회가 왜 이다지도 살기 힘들고 각박해졌을까? 많은 사람들이 걱정투성이고 스트레스로 힘들어한다. 주변에서 우울증과 화병에 시달리는 이들을 발견하는 것도 다반사다. 인간이 아무리 생존능력이 뛰어나고 스트레스를 견디는 힘이 강하다 해도 한계가 있다. 삶의 투쟁에 지친 이들은 안분자족으로 기대수준을 한없이 낮추고, 혼자만의 고립된 생활로 도피해 보기도 하지만, 급기야 삶을 포기하는 이들마저 생길 수밖에 없다. 행복지수 세계 최저, 자살률 세계 최고. 헬조선의 슬픈 자화상이다. 탈출구를 찾지 못한 고립된 이들의 분노는 낯선 타인에게 묻지마 폭력을 야기한다.

    최근에는 갑질 횡포가 잊을 만하면 등장해 사회적 논란을 빚고 있다. 언론에 대서특필돼 모두가 잘 아는 포스코에너지 라면 상무, 남양유업 대리점 갑질, 대한항공 땅콩 회항 사건에 이어, 지난달 벌어진 미스터피자 회장의 경비원 폭행 사건에 이르기까지 돈 많고 힘 있는 자들의 횡포는 상대방에 대한 일말의 배려도 없는 듯하다. 민주주의가 발달하고 고도로 산업화된 현대사회에서 합리적 이성은 차치하고라도 최소한의 상식마저 보이지 않는다. 하긴 국민이 뻔히 보고 있는 정치에서 거짓이 난무하고 자기만 살겠다는 패거리 문화가 판치는 세상이니 잘 보이지 않는 곳에서의 갑질이야 오죽하랴.

    어려운 시대, 가정의 달에 가족의 소중함을 떠올린다. 지난 시절 가족은 개인이 쉬고 기댈 수 있는 마지막 보루였다. 조건 없는 이해와 신뢰의 바탕 위에서 밖에서 입은 상처는 무엇이든 보듬어서 치유됐다. 먹거리가 부족해도 함께 나누면서 가족관계는 더욱 돈독해졌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의 부담이 컸지만 가족들의 존중과 협조는 힘이 되었다. 누군가가 부족하면 다른 가족이 채워주었다. 아버지가 노동력을 상실하면 어머니, 다음은 늙은 조부모가 나섰고, 마지막에는 어린 소년소녀가 가장의 역할을 감당했다.

    이전 가족의 유대감은 친가, 외가 등 친척으로 확대됐다. 타지의 친척집에 몇 년 동안 머무르면서 학교를 마치는 경우가 흔했다.

    하지만 지금의 가족은 어떠한가? 가족에서 조부모의 존재감은 상실된 지 오래고, 핵가족 내 구성원 간의 유대감도 이전 같지 않다. 부부는 각자의 입장에서 이해타산을 우선시하니 갈등이 그칠 사이가 없다. 경제력 상실이나 금전적 손해가 곧바로 부부관계의 파탄으로 이어진다. 부모 자식 간에도 이해득실이 앞선다. 부모는 자식이 노후마저 걸림돌이 될까 봐 우려하고, 자녀는 경제적 이득을 위해 부모에게 폭력마저 서슴지 않는다. 사랑이 없는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이 건전하게 성장할 수 있을까? 배려가 없는 가정에서 사회생활에서 얻은 스트레스와 상처를 치유하고 건강하고 행복한 마음을 가질 수 있을까?

    우리 사회가 당면한 많은 문제들은 건전한 가족 공동체의 회복으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가능성은 충분하다. 경제적 어려움으로 공동체 생활이 유리한 환경이 도래했고, 이해타산에 따른 행동의 결과를 체험함으로써 가족의 중요성을 재인식하는 계기가 마련됐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가족의 개념이 혈연을 넘어서 보다 확대되기를 바란다. 지역적으로 근접한 사람들 또는 공동의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이 한 가족처럼 지내는 것이다. 정부나 지자체도 가족 공동체의 회복 및 확산에 적극 나서고 복지정책 지원의 상당 부분을 할애하는 현명함을 발휘하기 바란다.

    하봉준 (영산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