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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롱] 개취 갤러리 (6) 인상주의와 우키요에

  • 기사입력 : 2016-02-22 17:3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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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양 미술의 중요한 축을 이루고 있는 인상주의(Impressionism)는 사실 일본 미술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후기인상주의자 빈센트 반 고흐(Vincent Willem van Gogh 1853-1890)의 작품을 살펴보면, 고흐가 직접 일본 그림을 모사하는가 하면, 일본 미술에서 나타나는 특징을 차용해 작품에 녹인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메인이미지풀받위의 점심(마네)

    ◇인상주의의 혁신
    19세기 중반 유럽. 당시 유럽 미술의 중심이었던 프랑스에서는 크게 두 가지 예술 사조가 자리 잡고 있었다. 하나는 기존의 고전주의적인 양식을 따라 제도적으로는 국가 주도의 살롱 체제를 따르는 소위 신고전주의자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신고전주의적인 미술 체계를 포함하는 제도권 미술에 대해 반발하는 진보적인 화가들이었다.


    이들은 일반적으로 사실주의, 자연주의자들로 불렸으며 들라크루아, 쿠르베 등이 대표자들이었다. 특히 눈에 띌 만한 점은 인상주의의 아버지로 불리는 에두아르 에두아르 마네(Edouard Manet, 1832-1883)도 끼어 있었다는 것이다. 마네는 당시 작가들이 신화 속 주인공이 나 성모의 모습을 그릴 때 일상생활, 평범한 도시인이 소풍 나온 장면들을 그렸다. 1863년 그려진 <풀밭위의 점심>을 두고 사람들은 ‘그림을 너무 못 그렸다’고 지적했다. 이유는 이전 그림들이 붓 자국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말끔하게 그리는 것과 비교해 마네는 붓 자국을 그냥 드러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림이 입체감 없이 평평하게 그린 것도 지적받았다. 당시 서양의 회화는 르네상스 이래 2차원의 평면에 3차원의 현실을 구현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해왔다. 그래서 인체나 사물의 관찰을 통한 정교한 소묘, 원근법, 명암표현등의 각종 방법을 정립해 왔던 것이다. 하지만 마네는 이러한 것들을 거스르고 궂이 (당시로서는) 못생긴 그림을 그렸을까?

    ◇자포니즘(Japonisme)
    19세기 중반 프랑스를 비롯해 유럽에서는 ‘자포니즘(Japonisme)’이라는 대 유행이 일어났다. 자포니즘은 이름에서 연상할 수 있는 것처험 19세기 중-후반 유럽에서 유행하던 일본풍의 사조를 지칭하는 말이다. 마네를 비롯한 인상주의자들인 모네, 고흐, 로트렉 등의 수많은 화가들 뿐 아니라 음악가 조각가, 공예가, 건축가 등에게 영향을 미쳤다. 자포니즘 중 특히 인상주의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준 것은 다름 아닌 당시 일본 채색판화(우키요에)였다.

    메인이미지거울을 든 여인(우타마로)

    ◇우키요에(浮世繪)
    우키요에는 주로 풍속을 소재로 에도시대에 성행했던 채색 목판화다. 우키요에는 18세기 중엽 이후에 일본에서 등장해 신년선물용 달력주문을 하려는 하이쿠 동호회의 후원과 배경을 타고 에도시대(1303~1867년)말기까지 유행했다. 우키요에의 주된 소재는 에도를 중심으로 최첨단의 풍속이나 유행을 담아냈는데 주로 풍경과 미인, 유명 배우, 명소, 만물, 무사, 춘화, 역사화들이 사용됐고, 기본적으로 판화이기 때문에 신문의 삽화로 활용됐다. 대표적인 작가로는 미인도의 대가 도슈사이 샤라쿠(연대미상, 활동기간:1794-1795)부터, 기타가와 우타마로 (1753-1806), 가츠시카 호쿠사이(1760-1849), 우타가와 히로시게 (1797-1858) 등이다.

    메인이미지오타니 오니지(샤라쿠)
    메인이미지카나가와 앞바다의 파도(호쿠사이)


    1854년 일본이 문호를 개방한 뒤 많은 일본 제품들이 유럽에 수출됐다. 특히 파리에서는 일본 상품들을 취급하는 상점도 문을 여는 등 미술가와 문인들을 중심으로 관심이 급증한다. 1867년 파리에서 열린 만국박람회에는 일본 예술이나 공예품이 일반인들에게 널리 알려지는 계기가 됐다. 이때 일본 공예품을 포장하기 위한 완충재로 우키요에가 그려진 종이를 사용됐다.

    우키요에는 일본에서 굉장히 흔한 판화 종이였기 때문인데 이 포장지들이 유럽인들의 눈에는 아주 이국적이고 신선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결국 우키요에는 대유행이 됐고 소위 ‘자포니즘’이라는 말까지 생기게 된다. ‘서양미술사’의 저자로 잘 알려진 미술사학자 E.H.곰브리치에 따르면 인상주의가가 인기를 끌게 된 이유는 중 하나를 우키요에로 지목했다. 우키요에는 인상주의 화가들이 새로운 소재와 참신한 색채 구성을 찾아 나가도록 도왔다는 것이다.

     

    ◇우키요에 영향 받은 인상주의자들
    일본풍의 미술에 영향을 받은 대표 인상주의 작가는 앞서 언급한 반 고흐다. 그는 파리에 오기 전부터 자신이 살던 집의 방 벽을 우키요에로 장식할 정도로 좋아했다고 한다.

    메인이미지매화(고흐, 왼쪽) / 매화(히로시게, 오른쪽)

     
    고흐는 파리에 와서 더욱 우키요에에 빠져들었는데 수백 점의 우키요에를 모아 전시회도 열었다. 그가 우키요에를 얼마나 좋아하는지는 그의 작품인 ‘탕기영감’의 작품을 통해서 알 수 있는데 뒷 배경이 전부 우키요에가 결려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나는 일본인이 그들의 작업에서 모든 것을 극단적으로 분명히 하는 태도가 부러워. 그것은 결코 우둔하지 않고 급히 서두른 것으로 보이지도 않아. 그들의 일은 호흡처럼 단순하고 그들은 마치 단추라도 꿰듯이 간단히 정확한 몇 줄의 선으로 인물을 그려. 아아, 나도 몇 줄의 선으로 인물을 그릴 수 있도록 해야 해..” <반 고흐가 동생인 테오에게 보낸 편지 중>
    메인이미지탕기영감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인상주의자는 바로 모네(Claude Monet, 1840-1926)다. 모네의 작품 중에 가장 대표적으로 일본풍이 반영된 작품은 ‘일본 의상을 입은 여자’로 모네는 애인인 카미유에게 일본의 기모노를 입히고, 벽면도 일본 부채로 가득 채워 놓았다. 바닥엔 돗자리가 깔려 있다. 기모노에서는 일본 사무라이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또 일본의 포즈나 장식적인 의장화의 구도 역시 일본풍인데, 그는 그 후 동양에 대한 감화를 크게 받아 양식적으로 작품에 이를 적용하기도 했다.


    프랑스 작가뿐만 아니라 영국의 대표 미술작가인 제임스 휘슬러(James Abbott McNeill Whistler, 1834-1903)역시 화가의 삶 후반에 우키요에에 깊이 매료돼 작품에 반영하도 했다. 이렇게 수많은 인상주의자들의 작품에 일본풍의 그림이 발견되는 것을 미루어 짐작해보면 당대 얼마나 우키요에의 영향이 컸는지를 알 수 있다.

    메인이미지일본의상의여자(모네)
     

    ◇단순히 작품에 우키요에를 넣기만 한걸까?
    우키요에 작가들은 2차원 평면에 단순한 선과 색으로 새로운 형식의 공간을 창출했디. 이는 새로운 실험을 하려는 인상주의자들에게 깊은 영감을 주었는데 인상주의자들은 우키요에의 명암과 원근법을 무시한 2차원적 평면성, 사물을 보는 방식의 파괴, 대담한 시야와 잘린 화면구성, 일상에서 모티프를 취한 일련의 연작에 열광했다.
    에드가 드가(Edgar Degas, 1834-1917)의 작품을 보면 과감하게 그림을 비대칭적으로 그린다던지 원근법을 이용한 사선 구도, 잘린 그림 등을 보면 우키요에의 작품에서 대거 차용한 특징들을 발견할 수 있다.

    메인이미지발레리나(드가)

    일본인들이 고흐를 비롯한 인상주의 화가들을 좋아한다는 사실은 익히 알려져 있다. 특히 고흐가 그린 몇몇 그림들은 세상에서 가장 비싼 그림들 사이에 순위가 매겨지기도 하는데, 1990년 5월 15일에 그의 ‘가셰 박사의 초상’(첫째판)이 크리스티에서 8250만 달러(한국돈으로 약 580억원)에 일본의 다이쇼와제지 명예회장 사이토 료에이(당시 74세)에게 팔린 것은 유명한 일화다. 이렇듯 일본인들의 고흐 사랑과 인상파 작품을 거금을 주고 모으고 유럽의 각종 미술관과 박물관의 전시회에 불티나게 다니는 데는 어쩌면 인상주의 작품을 통해서 그들의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고휘훈 기자 24k@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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