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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4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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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속으로] 오광대 전수에 청춘 바친 이윤석 고성오광대 회장

“고성오광대 전수관, 경남 전통문화 메카로 만들고파”

  • 기사입력 : 2016-01-15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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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윤석 고성오광대 회장이 고성오광대 보존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제 의붓애비 부르듯이 말뚝아 말뚝아 불러대니, 아니꼬와 못 듣겠네.”

    말뚝이가 구성진 목소리에 양반을 비꼬며 말채로 땅을 치자 종가도령이 놀라 털썩 주저앉는다.

    한국 전통 춤. 춤고을 고성사람들의 흙으로 다듬어진 굵은 남무(南舞). 백년이 넘는 전래 춤사위 오광대를 목숨처럼 사랑하는 사람이 고성군 마암면 도전리 명송마을에 있다. 지난 1975년 강원도 화천에서 군복무를 마치고 고향에 돌아와 24세의 나이에 오광대 짐꾼을 자처하며 인연을 맺은 후 42년. 여덟 명의 예능보유자로부터 고성오광대 전 과정을 전수받고 인생을 고스란히 오광대에 바친 이윤석(66)씨.

    20여 년간의 총무생활을 마치고 1994년 제10회 회장에 오른 후 22년째 회장을 맡고 있는 이씨는 오광대 회장보다는 마암면 농사꾼이기를 원했다. 희로애락과 해학이 숨어 있는 탈을 닮은 사람이다.

    이 회장이 태어나 자란 곳은 고성군 마암면 작은 시골. 당시만 하더라도 설, 정월대보름, 모심기, 추수, 결혼잔치 및 학교운동회 등에도 어김없이 흥을 돋우는 풍물놀이가 있었다. 풍물놀이에 어울릴 수 없는 처녀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총각이 신명나게 노는 것을 담 넘어 엿보고 흠모의 애를 태우는 시절이기도 했다.

    이 회장은 풍물놀이가 펼쳐지면 어른들 뒤를 따라다니며 함께했고 자연스럽게 꽹과리 장구를 배울 수 있었다. 당시 마을에는 허판세 전 회장(6대 회장) 등 고성오광대 예능보유자와 다수의 회원들이 있었고 그분들의 권유로 고성오광대에 입문했다. 좋은 말로는 스태프, 우리말로는 짐꾼이었다. 젊은 사람이 없다 보니 상여나 공연 물품 등이 어른들이 들기에는 무척 무거웠는데 그에게 딱 맞았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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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뚝이 춤을 시연하고 있는 이윤석 회장./경남신문DB/

    그는 고성오광대에 입문한 후 오광대가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문화재가 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졌다. 고성오광대가 전국적 인지도를 가지기 위해서는 우선 지역민들에게 사랑받는 문화단체가 돼야겠다는 생각으로 지난 1990년부터 읍면별로 순회하며 정기공연을 개최했다. 공연 한 번 하려면 준비 과정이 만만치 않았다. 지금이야 체계적인 시스템이 구축돼 있어 공연에만 집중하면 되지만 예전에는 손수 무대를 꾸미고 장비를 나르고, 어려움이 많았다. 그렇게 공연하기를 십수년. 고성오광대는 자연스럽게 고성군의 자랑이 됐고 지역민들이 많은 조언과 격려도 이어졌다.

    이 회장의 꿈은 오광대의 발전이다. 오광대의 현대화를 위해 이 회장은 중요무형문화재 제7호인 전통예술 탈춤을 탈과 춤으로 분리시켰고 춤만 모아 공연을 시작했다.

    지난 1999년 재경 고성향우들을 주요 관객으로 한 서울 예술의 전당 공연을 열었고 대단한 성공을 이뤘다. 이후 2000년 서울, 부산, 2001년 창원 성산아트홀 대극장, 2003년 울산문화회관, 2006년 서울 국립국악원, 2008년 서울 창동 대극장 등 전국 순회공연으로 이어갔다. 이런 노력으로 고성오광대는 전국적인 인지도를 높였고 이를 바탕으로 해외공연에 도전했다. 러시아, 일본, 동남아 등 세계 각지로 공연은 이어졌다. 2001년 11월에는 미국 6개 주(뉴욕, 워싱턴, 필라델피아, LA, 하와이, 샌디에이고)를 순회 공연했고 KBS에서 이를 촬영한 다큐멘터리 ‘아메리카 오광대’를 방영하며 국민들뿐만 아니라 전 세계인들에게 사랑받는 공연이 됐다.

    이 회장은 ‘전통문화의 전승은 아이들부터’라는 생각을 가지고 초등학생 틈새로 들어갔다. 문화재청에서 지원하는 문화재 활용 프로그램 ‘잠자는 말뚝이를 깨워라’가 3년 연속 전국 최우수 프로그램으로 선정되면서 고성오광대는 탈놀이를 인형극으로 그 폭을 넓혔고 ‘탈 만들기’, ‘탈춤 배우기’, ‘대동놀이’ 등 2시간에 걸쳐 진행되는 체험 위주 프로그램은 고성오광대 어린이 팬을 만들었다.

    이 회장에게는 큰 고민이 있다. 바로 사람이다. 예산 지원도, 좋은 시설도 필요하지만 고성오광대가 더욱 발전하기 위해서 무엇보다 사람이 필요하다. 고성은 농촌지역이라 먹고살기 힘들다 보니 다들 도시로 떠나고 지역에서 함께할 젊은 전승자가 없다는 현실 앞에서 그는 고민을 한다. 전통문화 계승은 평생 작업이지만 오광대만으로는 먹고살 수가 없다는 한계가 있다. 오광대가 좋아 대학에서 전공을 하더라도 귀향이 안 되는 것이다. 젊은 전공자들이 고향으로 돌아와 고향의 문화를 이끌어가야 되는데 참 아쉽다.

    하회탈로 유명한 경북 안동의 경우 연간 관광객이 수백만명이다 보니 안동별신굿 상설공연이 있다. 그곳에서는 전수자들이 넉넉지는 않지만 다른 소일거리를 더해 직업으로 전통문화를 계승하고 있는데 고성의 입장은 다르다. 이의 극복이 이 회장의 큰 과제인 것이다.

    이 회장은 고성오광대 전수관을 경남 전통문화 메카로 만드는 원대한 꿈을 가졌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오늘도 춤으로 땀을 흘린다. 그 꿈을 위한 선결과제는 상설공연. 매월 마지막 주 수요일 문화가 있는 날을 이용해 지역에서 접하기 어려운 다양한 장르의 공연이 개최될 수 있도록 상설화하는 것이 전통 계승의 첩경이라 생각하고 혼신을 쏟고 있다.

    2016년 이 회장의 꿈은 의외로 소박하다. 현재 오광대 탈놀이 전수사업 참여자는 4만여명. 이 덕에 문화인들 사이에 고성은 ‘춤의 고을’로 불리고 있다. 올해도 다양한 전수교육이 계획돼 있고 배우기 위해 찾아오는 학생들을 열심히 가르치겠다는 게 그의 꿈이고 그의 목표이다.

    40여 년 고성오광대 발전이라는 큰 무게를 감당해온 이윤석 회장은 빚진 사람이 많단다. 지난 1975년 남산에 연수회를 만들고 1987년 동외리 무형전수회관으로 옮긴 후 2012년 현재 990㎡ 규모의 전수교육관이 신축될 때까지 도와준 고성군민과 군청 직원들에게 늘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경남은행과 무학 등 메세나 지원 기업에게도 감사함을 잊지 않는다.

    전통문화를 지켜가야 한다는 무거운 말을 하면서도 웃는 얼굴을 유지하고 있는 이윤석 회장. 그 잔잔하고 평온한 얼굴은 오광대 발전을 위해 애를 태웠던 힘든 40년을 가리는 또 다른 탈이었다. 탈을 닮은 사람, 이윤석 회장은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서는 기자에게 “전수관 식당 밥 맛있어요. 자주 오세요”라는 말과 함께 다시 한 번 전통문화의 보존을 위해 정부와 기업체 그리고 국민이 관심을 갖게 잘 보도해 달라는 부탁을 덧붙였다.

    글·사진= 김진현 기자 sports@knnews.co.kr

    ☞이윤석 회장은 △1950년 출생 △안동 국제탈춤 페스티벌 자문위원 △한국종합예술학교 겸임교수 △경남무형문화재 연합회 회장 역임 △고성오광대 보존회 이사장△현 고성오광대 회장(1994년~) △고성군민상(2002년) △민주평통자문위원 대통령상 표창(201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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