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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6) 의강능약(倚凌弱) - 강한 것에 의거해 약한 것을 업신여기다

허권수의 한자로 보는 세상

  • 기사입력 : 2016-01-12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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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5일 의료혁신투쟁위원회에서 각 신문에 ‘이제는 한방 폐지를 논할 때다’라는 광고를 게재했다. 그 밑에 부제(副題)로 ‘박근혜 대통령께서는 한방에 더 이상 속지 말고 한방의 현대의료기기 사용을 직접 막아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했다. 광고문에는 ‘이미 용도 폐기된 한방의학’, ‘엉터리 의료’, ‘대한민국 의료계를 완전히 망쳐버리려 하는 시점’, ‘중국산 전래요법’, ‘민족의학이 아니며’, ‘엉터리 비과학적 한의학’, ‘한의학 폐지’ 등 도를 넘은 과격한 말들이 있다.

    이들의 주장대로라면 한의학은 그 자체가 중국에서 들어온 것이고, 아무런 과학적 근거도 없는 사람을 속이는 엉터리라는 것이다. 설령 자신들의 주장이 십분 맞더라도 이렇게 함부로 남의 분야를 심하게 능멸하며 매도하는 태도는 정말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의학은 중국의 것을 참조한 면도 있지만, 우리 민족의 체질과 우리 땅에서 나는 약초를 바탕으로 우리나라 실정에 맞게 개선해서 만든 전통의학이다.

    1950년대 진주에 최명환(崔明煥)이라는 유명한 한의원이 있었다. 성균관 부관장을 지낸 하유집(河有楫) 선생이 30대 초반 몸에 힘이 없고 기침이 나서 최명환씨에게 갔더니 맥을 짚어 보고 “자네 허파에 엽전만한 구멍이 났네. 내 약 두 제만 먹으면 낫겠네”라고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한의학을 별로 신뢰하지 않던 하 선생은 약을 짓지 않고 그 길로 진주에서 4시간 기차를 타고 부산대학병원에 가서 엑스레이를 찍어 봤다. 과연 폐결핵으로 허파에 구멍이 나 있었다. 부산대학병원에서 약을 한 보자기 주었다. 대학병원 약을 먹느냐? 한약을 먹느냐 고민하다가 다시 최 의원을 찾아 갔더니 “대학병원 약을 먹으면 낫기는 낫지만 다른 장기에 매우 안 좋으니 알아서 하라”라고 하기에, 한약을 먹기로 결정하고 두 제 먹었다.

    6개월 뒤에 갔더니, 최 의원이 “이제 다 나았다”라고 했다. 하 선생은 또 “한약 두 제 먹고 어떻게 폐병이 낫겠는가?”라는 의문이 들어 다시 엑스레이를 찍어 봤더니, 과연 말끔히 나았다. 하 선생은 지금 생존해 계시고 내가 직접 본인에게 들은 이야기다.

    한의학을 만병통치인 양 과대광고를 하고, 한의원에서 비싼 보약이나 팔려고 하면 안 되지만, 좋은 점이 있는 것은 인정하고, 최신의학에서 못 하는 점을 도와주는 상호보완적인 역할을 하면 얼마든지 오늘날 되살릴 수 있다.

    중국의 모든 병원은 최신의학과 한방이 협진을 하는 체제로 돼 있다. 교과과정에 의사들도 어느 정도 한방을 공부하게 하고, 한의사들도 신의학을 공부하게 돼 있다. 비단 의사뿐만 아니라 자신이 남의 분야를 잘 모르면서 함부로 단언을 하거나 무시하는 경우가 자주 있다. 자신이 강자의 입장에 서서 그 힘으로 약자를 업신여겨 함부로 말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자신의 것이 중요하고 가치가 있다고 여긴다면, 남의 것도 중요하고 가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倚 : 기댈 의. * : 강할 강.

    * 凌 : 업신여길 릉. * 弱 : 약할 약.

    경상대 한문학과 교수

    ※소통마당에 실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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