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어린이집에서 터졌다. 그동안 발달이 늦어서 한 살 어린 동생들과 함께 생활하다, 최근 딸이 또래반으로 옮긴 후 이상(?) 행동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등원 거부가 시작됐다. 아침에 눈을 뜨면 어린이집에 가기 싫다는 말부터 했고, 어린이집 현관 앞에서 대성통곡을 해야 끝이 나는 등원 전쟁이 시작됐다. 아이의 울음소리를 뒤로 한 출근길의 걸음이 무거웠다.
집에서도 이상 행동을 보였다. 밥을 먹다가 아무 곳에나 뱉어버리고, 자신의 물건에 대한 애착(집착?)이 심해졌다. 어린이집 이야기를 물어보면 대답을 하지 않거나, 뾰루퉁한 표정을 지었다. 어린이집 원장선생님과 면담을 하기로 했다.
아이가 덩치가 작아서 친구들에게 늘 장난감을 빼앗기는 일이 잦고 발달이 늦어서 친구들을 따라 생활하는데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다고 했다. 아이가 최근 밥을 뱉는 것도 스트레스 때문인 것 같다고, 이러한 스트레스는 몸집이 작은 아이들이 겪는 고충(?)이고, 시기가 지나면 오히려 더 빨리 발달단계를 거친다며 지켜보자고 이야기 했다.
막연한 불안감이 현실이 되자 화가 났다. 이런 화살은 나에게 가장 먼저 돌아온다. 왜 아이를 12월에 낳았을까, 왜 아이를 크게 키우지 못 했을까, 왜 어린이집을 개월수를 고려해서 세심하게 고르지 않았을까. 분노는 어린이집과 아이 친구들에게 향했다. 왜 어린이집 선생님은 아이가 장난감을 빼았기는 걸 보고만 있었을까. 그 친구들은 왜 작은 아이를 배려하지 못하는 걸까.
자꾸 감정적으로 격해졌다. 그때 옆에서 이야기를 듣던 후배가 말했다. '선배, 언젠가는 아이가 거쳐야 될 과정 아닌가요?.' 정확한 지적이었다. 이런 문제는 앞으로 한 두번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그래서 더 속상하지만) 딸의 생일이 바뀌거나 발달이 역전될 일은 없다. 딸이 살아내야 할 삶이고, 극복은 딸의 몫이다. 이제 딸이 내 품을 벗어났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얼마 전 우연히 만난 12월생 선배맘의 충고를 떠올린다. '아유, 아이가 12월생이에요? 그럼 초등학교 3학년까지는 마음을 비우셔야 해요. 확실히 늦고 뒤쳐져요.(호호) 그래도 기다려주면 4학년부터는 비슷해져요.'
걱정한다고 달라지진 않는다는 걸 안다. 시간이 해결해줄 것이란 것도 안다. 그럼에도 불안함과 속상함이 줄어들진 않는다. 다만 아이가 덩치와 발육이 빠른 또래들 사이에서 나름의 무기를 만들어 나갈 수 있도록 지지하고 격려하는 수 밖에.
어쨋든 그날 이후 딸의 밥그릇은 두배 큰 걸로 바뀌었다. 가족들은 모두 시시때때로 딸에게 무언가를 먹이고, 딸의 배는 늘 올챙이마냥 볼록하다. 남편의 홍삼 타령, 할머니의 보약 타령도 시작됐다. 많이 먹고 쑥쑥 크길 바라는 온 가족의 일심단결 현장이랄까. 음식을 많이 먹는다고 딸 아이의 키나 덩치가 당장 또래보다 커지진 않을 것이다. 다만 이러한 가족들의 넘치는 사랑으로 남들보다 더 크고 넓은 마음이 키워질 순 있지 않을까 싶은 요즘이다. 조고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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