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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롱] 고운맘 되기 (19) 12월생의 비애

  • 기사입력 : 2016-01-08 13:4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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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기 계획성 없는 엄마들은 다 모여 있네."
    2013년 12월 중순 어느날 창원의 한 산후조리원 식당, 나를 비롯한 막 출산을 한 산모들이 한 바탕 웃었다.
     
    임신을 계획하는 부부들은 통상적으로 3~5월생을 겨냥(?)한다. 하반기에 태어난 아이들은 또래(상반기 출생) 아이들에 비해 발달이나 발육에서 뒤쳐지기 때문에 학교생활에서 불리할 수 있다는 걱정 때문이다. 그 중 12월생은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선생님들도 기피한다며, 초등학교 때 산만하거나 미숙한 아이는 대부분 12월생이라는 이야기도 들었었다.

    그래서 12월생의 출생신고를 1월로 늦추는 부모들도 있다고 했다. (병원에서 출산했더라도 가정 분만했다고 신고하면 출생일을 바꿀 수 있다 했고, 실제 매년 1월에 가정출산 신고율이 높다는 기사도 있었다. 이건 불법이고 처벌을 받는다.)
     
    자식의 삶이 남 보다 뒤쳐지지 않고 보다 수월하게 생활하길 바라지 않는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솔직히 말하면 우리 부부도 잠깐 이런 불법을 잠깐 고민했었다. 물론 아이가 태어난 것부터 거짓으로 시작할 수 없다는 뻔하지만 당연한 이유로 접었다.
     
    걱정은 됐지만 크게 개의치 않기로 했다. 아니, 사실 그런 생각을 못 할 정도로 정신없는 육아기였기도 했다. 1년 육아휴직 기간 만났던 친구의 아이들(또래)과 발달에 꽤 차이가 났지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딸은 상반기 출생 또래 친구들에게 오빠나 언니라 불렀지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다.시간이 지나면 언젠가는 비슷해지는 시기가 올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문제는 어린이집에서 터졌다. 그동안 발달이 늦어서 한 살 어린 동생들과 함께 생활하다, 최근 딸이 또래반으로 옮긴 후 이상(?) 행동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등원 거부가 시작됐다. 아침에 눈을 뜨면 어린이집에 가기 싫다는 말부터 했고, 어린이집 현관 앞에서 대성통곡을 해야 끝이 나는 등원 전쟁이 시작됐다. 아이의 울음소리를 뒤로 한 출근길의 걸음이 무거웠다.
     
    집에서도 이상 행동을 보였다. 밥을 먹다가 아무 곳에나 뱉어버리고, 자신의 물건에 대한 애착(집착?)이 심해졌다. 어린이집 이야기를 물어보면 대답을 하지 않거나, 뾰루퉁한 표정을 지었다. 어린이집 원장선생님과 면담을 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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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가 덩치가 작아서 친구들에게 늘 장난감을 빼앗기는 일이 잦고 발달이 늦어서 친구들을 따라 생활하는데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다고 했다. 아이가 최근 밥을 뱉는 것도 스트레스 때문인 것 같다고, 이러한 스트레스는 몸집이 작은 아이들이 겪는 고충(?)이고, 시기가 지나면 오히려 더 빨리 발달단계를 거친다며 지켜보자고 이야기 했다.
     
    막연한 불안감이 현실이 되자 화가 났다. 이런 화살은 나에게 가장 먼저 돌아온다. 왜 아이를 12월에 낳았을까, 왜 아이를 크게 키우지 못 했을까, 왜 어린이집을 개월수를 고려해서 세심하게 고르지 않았을까. 분노는 어린이집과 아이 친구들에게 향했다. 왜 어린이집 선생님은 아이가 장난감을 빼았기는 걸 보고만 있었을까. 그 친구들은 왜 작은 아이를 배려하지 못하는 걸까.
     
    자꾸 감정적으로 격해졌다. 그때 옆에서 이야기를 듣던 후배가 말했다. '선배, 언젠가는 아이가 거쳐야 될 과정 아닌가요?.' 정확한 지적이었다. 이런 문제는 앞으로 한 두번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그래서 더 속상하지만) 딸의 생일이 바뀌거나 발달이 역전될 일은 없다. 딸이 살아내야 할 삶이고, 극복은 딸의 몫이다. 이제 딸이 내 품을 벗어났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얼마 전 우연히 만난 12월생 선배맘의 충고를 떠올린다. '아유, 아이가 12월생이에요? 그럼 초등학교 3학년까지는 마음을 비우셔야 해요. 확실히 늦고 뒤쳐져요.(호호) 그래도 기다려주면 4학년부터는 비슷해져요.'
     
    걱정한다고 달라지진 않는다는 걸 안다. 시간이 해결해줄 것이란 것도 안다. 그럼에도 불안함과 속상함이 줄어들진 않는다. 다만 아이가 덩치와 발육이 빠른 또래들 사이에서 나름의 무기를 만들어 나갈 수 있도록 지지하고 격려하는 수 밖에.
     
    어쨋든 그날 이후 딸의 밥그릇은 두배 큰 걸로 바뀌었다. 가족들은 모두 시시때때로 딸에게 무언가를 먹이고, 딸의 배는 늘 올챙이마냥 볼록하다. 남편의 홍삼 타령, 할머니의 보약 타령도 시작됐다. 많이 먹고 쑥쑥 크길 바라는 온 가족의 일심단결 현장이랄까. 음식을 많이 먹는다고 딸 아이의 키나 덩치가 당장 또래보다 커지진 않을 것이다. 다만 이러한 가족들의 넘치는 사랑으로 남들보다 더 크고 넓은 마음이 키워질 순 있지 않을까 싶은 요즘이다. 조고운 기자 lucky@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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