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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4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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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예담] (21) 김미윤 시인과 걷는 진해 ‘문화공간 흑백’길

시간과 함께 쌓인 예인들의 발걸음
100여년 전 지어진 ‘흑백’ 건물 고 유택렬 화백이 인수받아 1955년부터 문화공간으로 운영
클래식음악 감상실이었지만 지역 예술인들에게 전시·공연 장소로도 내줘

  • 기사입력 : 2016-01-07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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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키 작은 건물들이 얼굴을 맞대고 서 있는 진해는 내게 환상적인 도시다. 지금도 남아 있는 놀이동산의 ‘마법의 성’을 표지판 삼아 진입하는 곳. 분홍 연구름이 한 꺼풀 쓰인 동화 속 나라의 모습으로 머릿속에 이따금 등장한다. 한 건물 내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는 합리와 편리가 우선되는 대도심의 경계 안에 있지만 이곳은 ‘여전해서’다. ‘여전함’의 역사는 길지 않아도, 늘 찾고 싶은 곳으로 각인돼 있다.

    그중에서도 중원로터리 근처에 자리 잡은 ‘문화공간 흑백’을 지나는 길은 더욱 그렇다. 흑백은 1955년부터 클래식음악감상실로 운영돼오면서 지금까지 문화공간으로서의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살아 있는 문화 박물관’이다. 103년 전 지어진 건물로 2015년 11월 창원시 근대건조물로 지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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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미윤 시인이 창원시 진해구 중원로터리 인근 ‘문화공간 흑백’에서 고 유택렬 화백의 딸 유경아 피아니스트와 이야기를 하고 있다./김승권 기자/


    건물 안팎 모습에 잘 어울리는 ‘흑백’이라는 이름은 고 유택렬 화백이 이병걸씨가 운영하던 ‘카르멘’을 인수받으면서 지은 것이다. ‘흑백’은 새로부터 비롯됐다. 반가운 손님들을 맞을 때 우는 까치를 떠올렸으나 클래식음악을 듣는 곳으로는 가볍다 생각했다. 까치는 유 화백의 그림처럼 흑백으로 추상화됐다.

    마땅한 전시·공연 장소가 없던 시절, 흑백은 예인들의 작품혼을 펼쳐보이는 중요한 공간이었다. 흑백이 있는 이 길은 수많은 예인들이 드나들며 걸음을 쌓아왔을 것이다. 도내 원로 문인 가운데 흑백에 대한 추억 하나 없는 사람을 찾기 힘들 정도니까. 그러니 이 벚나무 거리에 있는 흰색 이층 건물을 지날 때는 공룡 발자국 화석에 발을 대어 보듯 한 걸음씩 천천히 내디디며 그간의 투명한 발자국들을 생각해보게 된다.

    장르를 가리지 않는 흑백 예찬 예인들 가운데서도 유난히 흑백을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30년 만에 내는 시집의 제목을 ‘흑백에서’라 지은 김미윤(69) 시인이다. 지난 12월 30일 50년 이상 이 길을 누볐을 그와 걸음을 맞췄다.

    그가 처음 흑백과 인연을 맺게 된 건 고등학교 때인 1965년 무렵. 그러니까 “65년이라고요?” 하고 거드는, 유 화백의 둘째 딸이자 지금 흑백을 운영하고 있는 유경아(50) 피아니스트가 태어난 해부터다. 진해 군항제 백일장을 마치고 문예반 선생님과 시인 선생님들을 따라서였다.

    “어릴 적에는 눈치만 보고 조용히 있다가 감탄만 했지요. 대학 때 본격적으로 찾아온 곳이에요. 대학생이니 우리는 클래식을 좀 들어야 한다며 동기들이랑 같이 자주 왔죠. 당시 미화당, 콘티넨탈 음악실 등이 있었는데 클래식 음악만 트는 곳은 여기밖에 없었어요. 떠드는 사람 하나도 없었죠. 그때부터 유택렬 선생님께 인사도 드렸어요.”

    그러다 대학교 4학년이었던 1975년, MBC PD가 되면서 유 화백과 가깝게 인연을 맺었다. 유 화백의 특집을 세 번이나 만들면서 흑백을 자주 찾았고, 그의 미술세계에 대한 이해가 깊어졌다. 미술을 오래 다루면서 평론을 써보라는 권유를 받았는데, 그때 경남 추상미술 1세대인 유택렬 화백을 다뤄야겠다고 생각했다. 1995년 유 화백의 작품 ‘부적에서’를 중심으로 쓴 ‘본성으로의 회귀와 갈등’으로 문예한국에 등단했다.

    “평론을 쓸 때도 선생님과 대화를 자주 나눴기 때문에 당선될 때 엄청 기뻐해주셨어요. 이후로도 제게 공부가 될 만한 것들을 많이 소개해주시기도 했고요. 건강하셨는데 이렇게 빨리 돌아가실 줄이야….”

    지난 1999년 심근경색으로 세상을 떠난 유 화백을 그리는 마음은 15주기가 되던 2014년, 몇 줄의 시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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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람의 낮은 음계 계시처럼 다가와

    지워버린 세월도 풍경으로 바뀐 곳

    대천동 개울가 봄햇살을 잘게 빻아

    신들림이 풀어낸 오방색 부적이여

    떠나고 남는 것 또한 쉬운 일 아닌데

    목청껏 부를 수 없어 그리움은 멀고

    바랜 인연끼리 흑백 사진첩에 얽혀

    추억따라 시린 마음 되어 쌓일 때면

    색인생 살다간 북청 사나이 떠올라

    내 허기진 그곳엔 종일 벚꽃이 진다

    - ‘흑백에서’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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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미윤 시인과 유경아 피아니스트가 흑백 앞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 시를 완성하고는 곧장 유경아 피아니스트에게 문자로 보냈다. 30분이 지나 답이 왔다. 완성된 노래 하나가 덧붙여져 있었다. 유 피아니스트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그때 제가 김미윤 선생님께 소름이 돋는다고 했어요. 두 번을 내리 읽었는데 너무 좋아서 그 순간 멜로디 라인이 떠올라 바로 곡을 써내렸거든요. 귀신이 들린 기분이었죠. 다시 진정하고 보자며 다음 날 봤을 때도 고치지 않았어요. 정말 신기한 경험이었지요.”

    2014년 9월 첫선을 보인 노래 ‘흑백에서’는 이제는 유 화백의 추모곡이 됐다. 실례일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듣고 싶은 마음에 연주를 거듭 요청하자, 흑백의 피아니스트가 피아노에 앉았다. 이내 건반을 무겁게 눌렀다. 아버지를 위한 진혼곡 ‘흑백에서’가 흑백을 메웠다. 피아노 곁에 김 시인이 섰다. 흑백과 유 화백을 끔찍이 아끼는 작사가와 작곡가가 흑백에서 연주하고 흥얼거리는, ‘흑백에서’를 듣는 일이란…. 오랜 시간 흑백의 공간을 채우며 사람들의 앉음새를 기억하는 푹 꺼진 의자는 몸을 아래로 아래로 끌어다 과거로 데려다줄 것만 같이 한 사람을 음악에 빠트렸다. 연분홍빛 꽃빛과 더불어 하나의 환상적인 영상이 덧대어졌다.

    흑백을 찾은 다른 손님들의 기척에 정신을 차리고 밖으로 나와 찬바람을 맞았다. 이어 두 예인이 걸어나왔다. 한 사람과 한 공간을 아끼는 마음이 통해 각별한 두 사람은 사진을 찍는다는 말에 팔짱을 끼며 흑백 앞을 지난다. 근대건조물 인증 금속판과 그 오른쪽에 선 흑백의 안내판을 함께 들여다보는 모습에서 같은 생기가 느껴진다.

    “음악을 듣는 여기서 시화전도 열리고, 미술전시도 하고 그랬죠. 온 예술이 합쳐진 공간이었어요.” 김 시인이 말을 잇는다. “걷기 좋잖아요, 이 길. 참 많이 걷고 막걸리도 많이 마셨는데 말예요.”

    둘은 이 공간과 길을 지키기 위해 문화공간흑백운영위원회에 속하면서 흑백을 지켜나가는 데 애쓰고 있다. 원형을 살리는 리모델링으로 유택렬 미술관을 만들어 잠자고 있는 유 화백의 작품들을 소개하려 한다. 많은 이들이 기억하고 찾아주기를 바라면서.

    나무와 건물의 키가 알맞은 다정한 이 길을 혼자 걸었다. ‘흑백에서’에 이어 들은 유경아 피아니스트의 곡 ‘노을’과 ‘사랑한다는 건’이 줄이어 귀에 감겼다. 벚꽃이 지고 가지만 앙상해도 그리 추워 보이지 않는 거리. 벽을 이루는 반들한 타일들이 빛을 나누고 있다. 글과 음악, 그림을 나눴던 유택렬 화백과 그를 사랑하는 두 사람처럼. 화려하지 않은 길, 화려하지 않은 공간이 사람들을 더 오래 머물게 했을지 모를 일이다.

    몇 개월 뒤 피어날 꽃들을 손꼽아 기다린다. 얼마 지나지 않은 2016년 새해에, 작가 김연수가 말한 ‘벚꽃 새해’를 생각한다. 벚꽃이 수수한 이 길을 구름처럼 덮을 때 다시 이 길을 걸어보려 한다. 기다릴 동안 꿈속에서는 희미한 분홍빛과 체스 판을 닮은 흑백의 천장이 겹치며 번져나갈 것이다.

    이슬기 기자 good@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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