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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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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예담] (20) 정진혜 서양화가와 진주 경남도수목원 속 숲길

슬픈 그림을 닮았네, 이름 없는 겨울 숲길
정진혜 작가의 그림처럼 겨울날의 숲길은 슬프지만 아름답다
무성했던 잎이 떨어져 저 뒤까지 볼 수 있고 풍경은 마음으로 옮겨진다

  • 기사입력 : 2015-12-17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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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살다 보면 슬픔을 온몸으로 받아들여야 할 순간들을 이따금 맞는다. 대체로 보아 무언가를 잃어버린 후나 존재하던 것들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게 될 때, 우리는 슬픔을 느낀다. 슬픔은 자잘한 일상 속에서 큰 파문을 일으키며 간혹 우리 삶을 흔들어 놓기도 한다.

    이런 슬픔을 어떤 말로 형용할 수 있을까? 어떤 말을 붙여도 슬픔이 주는 무겁고 어두운 의미는 달라지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하지만 다른 색깔의 옷을 슬픔에 입히는 사람도 있다.

    “내면의 결핍에서 오는 슬픔을 저는 아름답게 해석해요. 사람들이 슬픈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 삶을 정화하는 것처럼 사람들이 보고 세상에서 가장 슬프다고 느낄 그림을 그리는 게 제 목표입니다. 그래서 제 그림의 작은 주제들은 변할지 모르겠지만 슬픔이 주는 아름다움을 그리는 건 변하지 않아요. 진실의 실마리를 찾는 것과도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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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진혜 서양화가가 진주시 이반성면 경남도수목원 숲길을 걷고 있다./김승권 기자/

    슬픔이 찬란하다고, 우울한 순간이 작품에 몰입할 수 있는 가장 행복한 시간이라고 말하는 정진혜 작가. 그는 자신의 그림을 보고 슬프다는 사람을 보면 반갑다고 한다. ‘내 슬픈 마음도 당신과 같구나’ 하는 마음이 그를 캔버스 앞으로 움직이게 하는 힘이라고 한다. 그의 그림에는 그러나 결코 어둡지 않은 슬픔의 색이 짙게 내려앉아 있다. 그의 작품과 마주해 슬퍼서 반가운 겨울의 초입. 작가의 작품처럼 일관되게 정갈한 경남도수목원 속 숲길을 작가와 함께 걸어봤다.

    창원에서 살며 활동하던 정 작가는 10여 년 전 정수예술촌이 있는 진주 이반성면으로 터전을 옮겼다. 그 이유를 “빽빽하고 무성한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란다. 사람과 건물이 가득가득 들어차 있는 도시의 무성함에는 뒤가 보이지 않기 때문에 위로를 얻지 못한다는 작가. 마찬가지로 예찬하는 자연의 상(狀)도 과연 그답다는 생각이 든다. “무성한 잎이 모두 떨어져 낙엽으로 쌓여야 비로소 멀리 저 뒤까지 보여요. 비어 있고 상처가 있는 듯하지만 이런 시간이 있어야 우리는 위로를 받는 게 아닐까요? 저는 그래서 잎이 모두 떨어져 황망한 이 계절의 수목원이 참 좋아요.” 가냘프지만 고운 그의 음성에 발을 맞추며 올라가는 숲길의 내음도 잔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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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진혜 作 ‘가을연가Ⅰ’


    그는 가을과 겨울의 정수예술촌 주변 경남도수목원으로 향하는 이름 없는 길과 수목원 숲속 산길을 걸으며 위로를 받는다고 한다. 오전 10시. 야생동물관찰원을 향하는 탁 트인 길을 걸어 올라가길 잠시. 이내 전망대로 향하는 ‘이름 없는’ 숲길이 시야에 들어선다. 마침 비온 뒤 낙엽이 저문 숲길은 쓸쓸하지만 하늘은 당연하리만치 높고 푸르다.

    그와 대화를 나누며 걷는 내내 작가가 시인인지 화가인지 착각을 하게 된다. 그러고 보니 작품에 달려 있는 제목, 팸플릿 중간중간 그가 쓴 글에는 그가 줄곧 말하는 슬픔의 아름다움이 묻어나 있다. 그림보다 오히려 더 시각적인 이미지로 스며들기도 한다. ‘빛의 환영’이라는 한 시가 눈에 들어온다.

    환한 햇빛 속에서/울음을 터뜨리는 복사꽃을 보았다/수선화를 보았다/바다를 보았다…//어둠 안에서 울고있을 줄 알았던 꽃과 강물들이/눈부신 햇살 아래서/눈물같은 웃음으로 흔들리고 있었다/내 몸의 끝에서 떨어지고 있는/그림자 자락처럼//오늘 다시 그대를 품어본다/빛이여/바람이여/찬란한 어둠이여//

    새 지저귀는 소리가 나지막하게 들려오는 오전 11시. 숲길을 내려오며 정진혜 작가의 작품에 대해 더 찬찬히 이야기를 나눠본다. 그는 꽃을 사랑한다. 밤에 폈다 아침에 지는 달맞이꽃과 아침에 폈다 밤에 지는 수련이 그의 그림에 자주 등장한다. “이 꽃들로 무엇을 표현하는 건가요?”라고 묻자 특유의 슬픈 눈빛으로 답한다. “꽃 한 송이는 나, 두 송이는 너와 나예요. 꽃은 모두 사람이에요. 제 그림 속 풍경 안에 실은 사람이 들어가 있는 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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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그의 그림에서는 왁자지껄함 뒤의 공허함도 느껴진다. 우울인지 행복인지 구분하기 힘들지만 뜨겁게 차오르는 풍만한 감정이 몸속에 오래 남는다. 그의 그림 속 어둠 아래에는 위로가 깔려 있어서다. 그는 “어두운 색이라 해서 어두운 게 아니기 때문”이라고 한다. 작가는 자신을 “어둠에서 색채를 밝히는 사람”이라고 규정짓는다. 이름 있는 숲 속의 이름 없는 이 길을 걸으며 작가는 ‘네가 어둠을 밝혀주는 존재라고 믿는다. 아무도 없지만, 깜깜하지만 어느 곳에서도 두려움 없이 피어나는 너를 찬미하는 새벽’을 글로 쓰고 그림으로 옮겼다고 한다.

    정오. 해는 정확히 머리 위에서 숲속의 우리를 비추고 있다. 짧은 여행을 끝내는 아쉬움을 남기고 다시 아래로 내려간다. 올라갈 때 보지 못했던 풍경들이 눈에서 마음으로 옮겨진다. 그러자 문득 슬픔도 즐길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가을이 모두 저문 숲속길이 슬퍼도 괜찮다고 나지막하게 속삭인다.

    슬픔에는 힘이 있다. 슬픔으로 슬픔을 맞이해 슬픔을 극복하려 할 때, 다른 성질의 감정으로 애써 벗어나려 하지 않을 때, 그때 찬란한 힘을 발휘한다. 슬픔은 말한다. 무언가를 잃어버렸더라도, 존재하는 것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더라도, 우리의 삶을 흔들어 놓더라도 슬퍼하라고. 혼란스럽고 절망스럽더라도 온전히 그 순간을 슬퍼하고 난 뒤에야 모든 것들은 치유된다고 말이다. 그러니 지금 슬픈 일이 있다면 있는 힘껏 슬퍼하자. 슬퍼하기에 ‘슬프도록 아름다운’ 계절이다.

    도영진 기자 dororo@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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