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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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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포럼] 한 해 농사의 막바지에서- 고증식(시인)

  • 기사입력 : 2015-12-08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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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능 끝난 고3 교실은 태풍이 휩쓸고 간 달동네 모습이다. 폐허와 고요와 복구의 몸부림이 적당히 뒤섞인 모습까지 많이도 닮아 있다.

    일부는 폐허처럼 널브러져 있고, 일부는 넘치는 에너지를 어쩌지 못해 펄떡거리며 일부는 휴대폰이나 노트북에 머리를 박은 채 나름의 삼매에 빠져 있다. 어쩌다 책을 잡고 있는 녀석이 보일 때도 있으나 극소수다. 재미있는 얘기라도 해줄까 하고 물어보면 ‘그냥 놔둬주심 안 돼요?’라는 대답이 대세라 지들 하던 대로 내버려둘 수밖에 없다.

    경제교육이네 교양교육이네 가끔 초청강연 자리도 마련해보지만 건성으로 앉아 있거나 시간 때우기에 지쳐 하품이나 해대기 일쑤다. 일찍 집에 보낼 수나 있으면 신경전이나 덜하련만 수업시수 때문에 그럴 수도 없으니 그저 늦게까지 잘 붙잡고 있다가 풀어주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밖에서 보는 것과는 다르게 1학기 기말고사가 끝나고 학생부 정리가 마무리되는 2학기 개학 무렵쯤 되면 절반 이상의 학생들은 수능 공부에서 손을 놓는다. 거의 칠십 퍼센트에 이르는 대학의 수시원서 접수가 9~10월에 몰려 있고 많은 대학들은 수능점수가 필요 없기 때문이다.

    사실은 이때가 고3 학생이나 교사들에게는 가장 바쁘고 힘들게 돌아가는 시간이다. 여섯 곳이나 쓸 수 있는 대학의 입시상담은 물론 수시원서 접수에 필요한 각종 서류들을 챙기고, 대학마다 천차만별인 면접 준비까지 해야 하는 일은 생각보다 복잡하고 힘들다.

    시월 중순까지 이렇게 한바탕 전쟁을 치르고 나면 수능이 코앞이다. 하지만 수능 전 고3 교실이라 해서 긴장과 공부의 열기가 넘쳐나는 건 아니다. 수능은 정시를 준비하거나 수능 최저 등급을 맞춰야 하는, 한 반에 삼분의 일 정도 학생에게만 해당되는 얘기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수업에 손을 놓고 있는 아이들의 시간이 너무 길다.

    다들 알 만한 이런 사정을 교육 행정가들만 잘 모르고 있는 것 같다. 그들은 지당하신 말씀과 판에 박은 공문으로 수능 이후의 원칙적 학사 운영을 강조하지만 학교현장의 실상과는 많이 동떨어져 있다. 한 예로 수능 이후에도 체험활동을 한다거나 개인적으로 교외 활동을 하는 일은 금지되어 있다.

    심지어 음대나 미대, 체대 같은 예체능 입시를 위해 매달려야 하는 학원 수강도 일과 중에는 금지되어 있어 그 분야의 입시를 준비해야 하는 학생들은 무단결석을 감수한 채 길을 찾아야 하는 형편이다. 이것저것 고려해야 할 부분이 많겠지만 지혜롭게 고민해봐야 할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또 아무리 인문계고교의 역할이 대입수험생 양성소 같은 곳이라 할지라도 많은 교사들은 지금의 대입전형과정에 문제가 많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전형 시기도 그렇고 전형서류 같은 것들도 너무 대학의 입시편의주의에 맞춰져 있다고 지적한다. 이미 학생부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는 내용들을 자기소개서로 확인하고 그것도 모자라 교사 추천서까지 일일이 받아 챙기는 일은 교사들을 너무 부려먹으려는 발상이다.

    뿐인가. 일차 걸러낸 상태에서 인성면접에 심층면접, 전공면접에 이르기까지 전형을 통과하기 위해 학생이나 교사가 치러야 하는 대가가 끝이 없다. 어떻게든 간소화시켜 줄 필요가 있다. 따지고 보면 수요자 쪽은 대학이고 아쉬운 쪽 또한 대학이 아닌가.

    교육 문제 하나를 바로잡는 일이 얼마나 지난한 일인 줄 모르는 바 아니다. 그렇기에 교육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은 아무리 해도 지나치지 않는 법이다. 그러잖아도 앞날에 걱정이 많은 아이들이다. 고교시절의 마무리가 새로운 청춘을 여는 활력으로 넘쳐날 수 있도록 도와줬으면 좋겠다.

    고증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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