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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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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속으로] 웃음 전도하는 경찰 권재훈 경위

‘근심·우울·비관’ 제압할 강력무기는 ‘웃음’입니다

  • 기사입력 : 2015-12-03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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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의 첫인상은 예상했던 것과는 다소 차이가 있었다. 물론 만나기로 약속한 장소가 여타 어느 곳보다도 삭막할 수 있는 경찰청이었지만, 그래도 주변 사람들을 통해 건너 들었던 얘기로 떠올렸던 이미지는 분명 아니었다.

    ‘익살꾼’이나 ‘미소천사(?)’를 기대한 기자를 맞은 것은 ‘건장한’ 그리고 ‘진중한’, 딱 경찰의 모습이었다.

    “딱히 내가 하는 것도 없는데 무슨 인터뷰를 한단 말이냐”며 포문을 연 그와의 대화에서 확인한 것은 ‘그는 충분히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경찰공무원이 된 지 올해로 22년이 됐다는 경남지방경찰청 생활안전과 소속 권재훈(50) 경위는 청사 내 교육센터 현장순회강사로 평일에는 도내 청소년, 경찰들을 대상으로 흡연예방교육, 112 신고 시 초동대응 등의 강의를 하고, 주말에는 웃음치료에 뜻을 같이하는 멤버를 꾸려 요양병원으로 공연을 나가는 바쁜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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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남지방경찰청 생활안전과 권재훈 경위가 자신의 사무실에서 환한 미소를 짓고 있다./성승건 기자/
    평소엔 경찰·업무 없는 휴일엔 웃음전도사

    “나는 공연에서 사회를 보고 노래를 부르며 어르신들과 어울리는 역할을 주로 한다. 하지만 노래를 잘 부르는 실력도 아니다”면서도 “내 노래와 악단의 공연을 보며 시간을 보내고 즐거워하시는 어르신들을 보면 일상의 피로가 달아나는 느낌이다”고 표현한 권 경위는 일정하진 않지만 업무가 없는 휴일을 이용해 한 달에 네 번 정도 창원 의창구 시티요양병원, 마산회원구 정다운요양병원 등 지역 요양병원을 찾아 유머를 동반한 노래, 악기연주 등 공연을 진행한다. 물론 권 경위와 마음을 같이하는 경찰 동료들, 봉사자들도 함께다.

    현재 봉사단체 ‘사랑의 투폴(POL)봉사회’의 부회장으로 활동 중인 그와 7명의 봉사자들은 요양병원에서 원할 경우, 해당 날짜에 시간이 맞는 사람들을 모아 공연을 한다.

    공연봉사의 시작은 7~8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7년 ‘웃으면 복이 온다’는 웃음치료가 유행할 무렵 권 경위는 마산의 사단법인 한국웃음협회에서 웃음치료를 배웠다. 함께 배우던 23명의 교육생 중 요양병원 사회복지사를 만난 것이 병원 원정 공연의 시작이었다.

    “무조건 ‘웃으십시오’라고 하는 것이 웃음치료가 아니다. 웃음을 유발해 자연스럽게 웃음을 머금도록 하려다 보니 노래와 춤, 유머 등 방법이 있었고, 어르신들의 공감을 끌어내기에는 노래와 악기 연주가 제격이었다.”

    이후 지방청 소속 경찰 동료 5명으로 이뤄진 색소폰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 ‘경남 폴(POL) 색동회’와 함께 공연을 다니며 사회를 봤고 지금에 이르렀다.

    권 경위는 “창원서부경찰서에 최주석 경위가 회장직을 맡으며 뜻을 같이한다. 개인적으로 공연봉사를 다니다 서로의 행적을 알고 그 뒤부터는 함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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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형의 갑작스런 사고에 ‘봉사’를 꿈꾸다

    어떤 방식이든 음악 공연을 한다는 것은 어릴 적 관련된 꿈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의문을 품었더니 권 경위는 “결코 아니다”며 손사래를 쳤다.

    그는 “아주 소심한 아이였다. 지금은 공연 봉사를 통해 소심하고 내성적이었던 성격을 고쳤지만 그 당시 나는 사람들 앞에서 공연은커녕 수업시간에 궁금한 것이 있어도 이목이 두려워 손도 들지 못하는 그런 성격이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권 경위는 원래 영어선생님을 꿈꿨다. 하지만 집안 분위기로 가슴 속 꿈은 이내 잊혔다고.

    “내 기억 속의 아버지는 항상 술을 드셨다. 한 달 중 20일은 취해 있었고, 동네 사람들과의 시비, 어머니를 함부로 대하는 것이 일상이었다”면서 “그렇다 보니 항상 집안 분위기는 칙칙하기 일쑤였고, 형들과 나는 늘 눈치싸움을 하고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는 현실과 동떨어진 이상이었다.”

    벗어날 수 없는 현실에다 아무도 손 내밀어주는 사람이 없어 그는 세상을 포기하려는 부정적인 생각도 했다.

    그는 “비관적인 생각은 안 좋은 결과를 낳았다. 하다 못해 운전면허도 일곱 번 떨어지고 여덟 번 도전해 겨우 붙었다”면서 “운전면허 취득은 ‘뭐든 하면 된다’는 자신감으로 이어졌고, 경찰시험 준비 3개월 만에 좋은 결과를 냈다”고 했다.

    경찰이 된 그를 봉사맨으로 바꾼 것은 겪고 싶지 않았던 불의의 사고였다. 경찰이 되던 그해 작은형이 교통사고로 급작스레 세상을 떠나게 된 것. 30대 초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등진 형을 떠나 보내며 그는 ‘형의 몫까지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했다고.

    “형의 아까운 인생을 내가 더 뜻깊게 보내야겠다는 생각도 컸고, 어릴 적 어려운 환경 속에서 존재가치를 찾을 수 없었던 기억이 남을 도우면서 치유된다는 것도 봉사를 하게 된 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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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재훈 경위가 요양병원을 찾아 공연을 하고 있다.


    전국 씨름왕 출신…씨름 활용한 호신술 개발

    키 179㎝, 몸무게 104㎏. 건장한 체격에 어울리는 이색적인 이력도 갖추고 있다. 바로 전국 씨름왕 출신이라는 것.

    지난 2010년 연말 그는 경찰 신분으로 전국 아마추어 씨름왕에 등극했다. 1989년 취미로 씨름을 시작한 후 수년간의 꾸준한 연습을 통해 7전8기의 정신으로 도전한 결과다. 올해에는 대통령배 구미대회에 출전해 전국 2등의 성적을 냈다.

    이에 앞서 지난 2004년부터 2007년까지는 중년부 경남 씨름왕에 올랐고, 2008년에는 생활체육 전국연합회 주관 대통령배 전국씨름왕 선발대회 3위를 거머쥔 바 있다.

    씨름을 전문적으로 훈련한 것 아니냐는 질문에 그는 “전문적 트레이닝을 받은 적은 없다. 다만 한때 레슬링 선수로 활약했던 작은형으로부터 상대를 제압하는 기술을 배운 것이 도움이 된 것 같다”며 “25년 전 마산지역 씨름동호회에 가입한 것도 영향을 미친 것 같다”고 말했다.

    권 경위는 “나이 오십이 넘어서 전국대회 1·2등을 거머쥔 것이 하루아침에 된 일은 아니다. 씨름을 통해 꾸준히 도전하면 어떤 꿈이든 이룰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나아가 청소년들에게 일깨워주고 싶었다”고 했다.

    최근 그는 자신의 특기인 씨름기술을 활용한 ‘호신체포술’을 개발 중이다. 기존 호신술의 경우 주로 태권도를 기반으로 하는데 발차기 등 상대를 다치게 할 수 있는 우려가 있어 호신술이 과민대응 혹은 분쟁의 소지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했다.

    권 경위는 “지난 1996년 경찰무도대회 출전 때 유도관장을 지내고 지역대학에 경찰행정학과 외래 교수로 나가는 지인을 만나면서 씨름과 유도의 유사성을 발견했고, 이를 활용하기로 했다. 씨름의 경우 안아서 넘어뜨리기, 발 걸어 제압하기 등 상대가 크게 다치는 동작이 없다”고 말했다.



    흡연예방 등 청소년 대상 현장강사

    그는 지역 초·중·고등학생들에게 흡연예방교육과 인성교육, 쓰레기 분리배출운동도 하는 지방청 소속 현직 강사다.

    권 경위는 “옛날에 꿈꿨던 선생님을 이렇게나마 이룬 것 같다”면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흡연예방 등 강의를 하다 보면 내가 그랬던 것처럼 자신의 존재가치를 찾지 못하는 아이들이나 쉽게 포기하는 아이들을 자주 본다. 이들이 내 인생을 발판 삼아 노력은 결코 배반하지 않는다는 것, 개개인 모두는 소중하다는 것을 느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또 “어린 시절 암울했던 내 지난날은 어느 순간 마음가짐을 달리한 뒤 밝은 희망의 빛이 스며들었다. 세상을 살아가는 젊은이들이 긍정적인 마음으로, 하고자 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꼭 끝이 올 것이다”고 덧붙였다.

    김현미 기자 hmm@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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