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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4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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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꽃- 김명인

  • 기사입력 : 2015-11-26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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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등꽃 필 때 비로소 그대 만나

    벙그는 꽃봉오리 속에 누워 설핏 풋잠 들었다

    지는 꽃비에 놀라 화들짝 깨어나면

    어깨에서 가슴께로

    선명하게 무늬진 꽃자국 무심코 본다

    달디달았던 보랏빛 침잠, 짧았던 사랑

    업을 얻고 업을 배고 업을 낳아서

    내 한 겹 날개마저 분분한 낙화 져 내리면

    환하게 아픈 땡볕 여름 알몸으로 건너가느니

    ☞ 생의 봄 지나 여름 깊숙이 걸어갈수록 드러나는 생의 알몸은 마른 바위, 집 없는 달팽이 알몸으로 기어가는 끓는 바위. 지금 내리쬐는 시간에는 그늘 한 점 없고, 다가올 시간에도 그늘 한 점 없다.



    염천지옥 기어가는 그대여, 다시 눈 감고 들어가 잠시 깃들여 쉴 수 있는, 지나간 시간 한 채 있나요? 흥건히 젖었다 깬 꿈 한 채 있나요? 아직 그 살 냄새 가시지 않은 눈먼 죄 한 채 있나요? 들어가 잠시 누워 풋잠 들 수 있는, 풋내 나는 봄 한 채 있나요? 분분히 낙화 져 흘러가 버린 시간 한 채 있나요? 집 없는 달팽이처럼 생의 즙 짜내 길 하나 만들며 염천지옥 마른 바위 기어가는 그대여…. 이중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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